커버스토리
1997년05월29일 제 159호 한겨레21

통곡의 조선-중국 국경

(사진/강건너 지척에 딸을 두고 식량을 건넬 길을 찾는 조선족 할머니. 곡물반출이 제한되는 바람에 준비한 쌀 일부만을 전했다.)

“수진아, 수진아~. 배고파서 어쩌나. 굶어서 어쩌나.”

지난 5월2일 푸른 백향목 나무들이 봄의 향기를 쏟아내는 한 조중 교두( 국경초소)에서는 허리가 굽은 할머니 한분이 강 너머를 향해 하염없이 손 짓을 하고 있었다. 할머니 옆에는 쌀가마니 일곱푸대가 수북이 쌓여 있었 고, 강 건너 북한에는 20년 만에 얼굴을 대하는 딸이 와 있었다.

“앉아라~. 못 먹어서 맥없다. 앉아라~ 앉아라~.”


딸에게 전할 쌀 쌓아놓고 통곡만

77세의 이 할머니가 강 건너 딸을 걱정하며 연신 손수건을 흔들고 있었다 . 할머니는 20년 만의 상봉이 두만강을 사이에 둔 채 이뤄지지 못하는 게 서러운지 그예 눈물을 흘렸다.

“내 딸 수진이가 저쪽에 와 있소. 굶어가며 걸어걸어 여기까지 왔다니 얼마나 배가 고플까. 그런데 여기 초소에 오니 일흔 넘은 할매는 저쪽에 넘어갈 수 없다고 하요. 나를 보내주지 않아요. 배가 고파 벼뿌리까지 먹 었다는데….”

할머니가 17세 된 딸을 북에 공부하러 보낸 게 벌써 40년 가까이 돼간다. 직접 본 지는 20년도 넘었지만 그래도 지난해 11월까지는 간혹 편지가 왔 었다. 그런데 북한의 식량난이 심각하다는 소식과 함께 딸의 편지가 끊겼 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그 몇달 동안 얼마나 애가 탔는지 모른다. 그런데 며칠 전 북한에 들어갔던 동네사람편에 딸이 편지를 보내왔다.

“바로 이 교두에서 근 20일째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 식량과 돈을 준비해 서 오라는 거요.”

할머니는 딸에게 주기 위해 지난해 할아버지(84)와 함께 고추를 팔아 모 아뒀던 돈을 가지고 쌀 7백근(1백근=60kg)을 준비했다. 그런데 세관에서 는 2백50kg이상 보내지 못한다고 했다. 또 무던히도 애를 썼지만 국경다 리를 건널 수가 없었다. 경비병이 한눈을 파는 사이 굽은 허리로 다리 위 를 뛰어보기도 했지만 5백m 다리의 절반도 못가 다시 끌려와야만 했다. 결국 허탈해진 할머니는 국경초소 옆 강변에서 딸을 애절히 부르고 있는 것이다. 할머니는 북쪽 경비병이 딸을 안으로 데려간 뒤에야 울어서 힘이 빠진 몸을 움직여 집으로 향했다.

북녘의 딸을 위해 마련한 식량을 다 못 전하고 눈물만 흘리는 사례는 비 단 이 할머니만이 아니다. 최근 중국 동북 3성 이곳저곳에서 번지는 ‘조 선동포 돕기운동’이 여러 가지 제약에 막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탈북자들을 돕다가는 범법자 되기 십상이라는 사실을 제쳐두더라도, 연변 지역에만도 50%를 넘는 한족들의 눈길까지 피해야 한다.


국경통제 강화로 동포돕기도 만만찮아

또 최근 북한 당국이 국경 통제를 강화한 것도 친지 돕기에 새로운 걸림 돌이 되고 있다. 할머니의 경우처럼 원조 곡물의 제한량에 걸리는 경우도 많고, 방문조건도 매우 까다로워졌다. 조선족들은 이런 변화가 너무 어려 운 상황이 외부로 알려지는 게 두려운 북한 당국 때문일 거라고 짐작만 하는 정도다. 조중국경을 무대로 활개치는 밀무역자들도 북쪽의 문을 좁 혀논 한 요인이다. 이들 밀무역자들은 인신매매, 골동품 반출, 폭리를 취 하는 상거래 등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북한 사회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 어 왔다.

하지만 조선족 사회가 북한 동포를 돕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은 이들에게 지속적으로 북한 친지를 도와줄 여력이 없다는 점이다. 이렇게 주머니를 털다가는 멀지 않아 얼마 되지 않는 이들의 쌀독마저 비어버릴지도 모른 다. 그래서 더욱 ‘잘사는 남한’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은 차갑다.

“한번도 가보지 않았지만 남한이 아주 잘 산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남 한 당국은 굶주리는 조선동포를 왜 돕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미워도 고 와도 내동포 내형제인데요. 한족이 돕겠습니까? 우리 조선민족이 도와야 지요.”

이날 교두에서 만난 조선족 오씨의 말이다. 그는 얼마 전 북한 친지로부 터 도움을 부탁하는 편지를 받았다. 식량이 부족해서 다죽게 됐다는 내용 이었다. 그래서 식량을 전달하기 위해 국경까지 나왔지만 그가 가지고 온 ‘얼마 안 되는 쌀’이 북한 친지의 목숨을 얼마나 이어줄지는 그 자신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고 빠듯한 살림의 오씨에게 무슨 뾰족수가 있는 것 도 아니다.

“남한사람들에게 부탁하고 싶습니다. 그래도 큰 형님격인데 너그러운 마 음으로 우리 조선족들뿐만 아니라 북조선 형제들을 도와달라구요.”


“남한 사람들, 동포가 맞느냐”

역시 오씨와 마찬가지로 사촌여동생을 만나기 위해 교두에 나온 조선족 김씨가 말을 거들었다. 김씨는 며칠 전 동네사람으로부터 여동생이 조선 쪽 경비초소에 16일째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조중을 왕래 하는 무역업자를 찾기 위해 나와 있는 중이었다. 왕래통행증을 만드는 단 며칠도 기다릴 수 없을 정도로 여동생의 처지가 절박하다고 생각해 무역 업자를 통해 빨리 쌀을 보내주기 위해서였다.

강 건너 조선족 친지의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며 새까맣게 모여 있는 북한 주민들을 바라보며 던진 김씨의 한마디는 그대로 비수처럼 가슴에 다가왔다.

“우리는 지난 몇십년을 이렇게 알음알음 조선의 친지들을 도왔습니다. 그것을 다 합치면 현재 남한 당국이 주네마네 하는 양을 훨씬 넘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남한 당국은 그나마 그것을 ‘무기’로 삼고 있다고 합 디다. 정말 그들이 우리 동포들인가요.”

조중국경=이상민/ 북한문제 전문 자유기고가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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