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1997년04월03일 제 151호 한겨레21

양심선언, 찌꺼기는 남았다

(사진/눈물의 사죄로 경실련을 떠난 유재현 전 사무총장. 거듭된 해명과 기자회견에도 의혹은 사라지지 않았다.)

경실련의 비극은 지난 3월10일, `한겨레'가 김현철씨의 `연합텔레비전뉴 스'(YTN) 사장 임명개입 의혹을 특종보도하면서 싹텄다. 이날 김현철씨 비리의혹과 관련해 성명을 준비하던 경실련 정책실은 같은날 석간신문에 “경실련도 `한겨레' 보도내용과 똑같은 내용이 담긴 테이프를 갖고 있다 ”는 박경식(46·G남성클리닉 원장)씨의 인터뷰가 실리면서 당황하기 시 작했다. 숨가쁜 내부 확인작업이 시작됐다. 그러나 사태의 전말을 아는 사람은 유재현 당시 사무총장과 부정부패추방운동본부 양대석 당시 사무 국장(39) 두 사람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성급한 해명이 의혹만 키워

유 총장은 이날 오후 4시30분께 황급히 동대문서 기자실을 찾아 “2월19~ 21일께 양 국장이 ㅂ씨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보고했는데 내용이 `한겨레' 보도내용과 똑같다”고 해명했지만, 오히려 의혹만 증폭시켰다. 경실련이 갖고 있는 테이프가 비디오 녹화테이프인지, 녹음테이프인지도 확실히 설 명하지 못한데다, 공개를 미룬 이유를 “진짜 김현철씨 목소리인지 확인 중이었다”고 얼버무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 총장은 기자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나중에 밝혀진 일이 지만 유 총장은 이미 지난 2월26일 양 국장한테서 현철씨의 인사개입 내 용이 담긴 테이프를 비롯해 4개의 테이프를 전달받았고, 그 내용이 ‘정 국의 `핵폭탄’이 될 수도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다음날인 3월11일 오전 양대석 국장도 기자실을 찾아왔다. 그는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녹음테이프와 `비디오 녹화테이프를 분리하는 방법을 선 택했다. `녹음테이프는 “지난해 12월 말께 20대의 젊은 여자가 경실련 사무실로 찾아와 건네줬다”는 것이고, 녹화테이프는 “지난달 박 원장의 병원에서 들고 왔다”는 것이다. 공개를 하지 않은 이유를 “눈뜨고 볼 수 없는 내용이 많아 박씨의 인간성에 회의가 든 나머지 모두 `‘파기’ 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양 국장의 해명 역시 의심만 눈덩이처럼 불려 놓았다. 왜 지난해 12월 말 입수한 녹음테이프를 3개월 동안이나 공개하지 않았는가. 녹화테 이프가 `눈뜨고 볼 수 없는 내용이었다면 녹음테이프라도 먼저 공개했어 야 되는 것 아닌가… .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경실련 사무국의 젊은 실무간사들이 술렁 이기 시작했다.

사건의 내막을 알고 있는 사람은 유 총장과 양 국장 두 사람뿐인데 두 사 람의 진술은 `전혀 납득이 안된다는 것이었다. “권력층과 유착해 엿바꿔 먹은 것이 아닌가” “양 국장이 옛날에 민추협 시절 최형우 신한국당 고 문의 캠프에 있었다던데” 등의 이야기들이 흘러나왔다.

마침내 3월12일 박경식씨의 기자회견으로 경실련 실무자들은 분노하기 시 작했다. 박씨가 기자회견을 통해 양 국장이 테이프를 “훔쳐갔다”고 주 장하고 있는 판에 도대체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 었다.

사태가 걷잡을 수 확대되자 유 총장과 몇몇 실·국장들은 3월12일 밤 모 든 것을 투명하게 밝혀야 경실련이 산다는 데 공감하고 다음날 양 국장이 파기했다고 말했던 녹화테이프를 되찾아내 공개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거듭되는 진술의 번복, 절취 논란, 테이프 파기 여부에 대한 논란, 권력과의 거래 의혹, 아직도 미공개 부분이 있을 것이라는 의혹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권력과 모종의 유착’ 의혹도 제기

결국 경실련은 3월19일 오후 기자회견을 통해 “유 전 총장이 18일 상임 집행위원회를 마치고 경실련쪽에 전달했다”며 녹화테이프 3개를 추가로 공개했다. 양 국장은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해 “지난 2월말께 김현철씨 관련 녹화테이프와 박 원장의 양심선언이 담긴 녹화테이프 3개를 유 총장 에게 전달했다”며 “유 총장을 신뢰할 수 없어 사본을 줬고, 만약에 유 총장이 테이프를 공개하지 않을 경우 별도의 장소에서 공개할 예정이었다 ”고 주장했다. 이는 유 총장이 적어도 2월말께는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 고 있었으며, 양 국장과 유 총장이 상당한 갈등관계에 있었음을 내비치는 대목이다.

거듭된 해명과 기자회견에도 경실련은 의혹을 완전히 해소하지는 못했다. 도대체 유 총장은 무슨 이유로 테이프를 전달받고 공개를 미뤘을까. `정 말 그의 말대로 한 개인의 사생활과 `국민의 알권리 사이에서, ‘절취행 위’와 `‘진실규명’ 사이에서 고민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권력과의 충 돌에 따를 부담을 지나치게 의식했던 탓일까. 또는 일부에서 의심하는 것 처럼 ‘권력과 모종의 유착’이 있었던 것일까.

이용인 기자/ 한겨레 민권사회1부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4월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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