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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
1997년03월27일 제 1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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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사이의 밀월관계와는 달리 북-일 사이에는 싸늘한 냉기류가 흐르고 있어 의아함을 자아내고 있다. 우선 일본 정부는 북한에 쌀 지원하는 것 을 신중하게 대처하고 있다. 지난 2월 중순 세계식량계획(WFP)에서 전세 계에 호소한 긴급 대북한 쌀 지원 요청도 거부했다. 집권 자민당의 정조 회장인 아마자키 다쿠는 2월18일 일본 후지TV와의 회견에서 “북한에 식 량지원을 확대할 경우 김정일 체제 아래에 있는 북한의 고립주의를 더욱 강화시켜주는 꼴이 될 것”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후 일본 총리, 관방장관, 외무성 관리 등의 입을 통해 알려진 일본의 대북한 쌀 지원 입장은 북한이 일본에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으면 쌀 지원은 한국과 미국의 조처와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신중하게 대처하겠다 는 것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이러한 일본 정부의 태도에 대해 “일본 정부는 북한에의 쌀 지원 문제를 인도적인 문제가 아닌 정치적인 문제로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쌀 지원은 인도적인 문제가 아니다
일본 정부의 입장이 왜 이렇게 강경해진 것일까. 일본 정부는 표면적으로 북한이 4자회담을 위한 3자설명회 참석 거부 등 남한과의 관계개선에 주 저하고 있고 황장엽 노동당 비서의 망명사태가 불거져 나오는 등 한반도 정세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도쿄 내 정부 소식통은 “솔직히 북한 당국의 처사가 극히 불만스럽다”면서 “북한이 도대체 뭘 믿고 이렇게 일본 정부에 큰 소리를 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더구나 일본 정부는 김정일 비서와 거의 접촉을 하지 못했으며 지난 95년 일본이 북한에 쌀 50만t을 보낸 뒤에 한번도 고맙다는 인사를 받지 못한 것에 대 해서도 크게 섭섭해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은 지난 95년 북한 에 50만t의 쌀을 직접 제공하고 유엔을 통해 50만달러를 공여했으며 작년 에도 유엔의 요청에 따라 북한에 6백만달러를 제공했다.
이러한 와중에 돌연 불거져 나온 ‘일본 니이가타 여중생 납치사건’은 일본 정부의 대북 강경입장을 더욱 확고히 하는 빌미가 된다. 황장엽 비 서가 일본에 체류하고 있던 2월3일 <산케이신문>이 지난 77년 일본 니이 가타현에서 실종된 여중학생 요코타 메구미(당시 13세)가 북한 기관원에 납치됐을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보도한 뒤 일본 열도는 북한을 성토하는 분위기로 돌변했다. 일본의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도 같은 날 중의원 예산 위원회의 답변을 통해 “메구미사건과 관련, 북한과 국교 정상화 교섭이 재개되면 이 문제를 정식으로 제기하겠다”면서 “메구미양의 납치의혹 사건을 수사토록 수사당국에 지시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어 사흘 뒤인 6 일에는 구니마쯔 다카지 경찰청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메구미가 납치된 것과 관련해 우리 수사당국도 비슷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대북한 쌀 지원 요청에 나섰던 황비서가 일본 집권 자민당 또는 정부관료 들을 만나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일본의 북한 소식통도 “메구미 납치사건을 둘러싸고 격앙된 분위기에서 어떤 정치인이라도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는 데 나선다는 것은 정치적인 생명을 내놓는 것과 다름이 없었을 것이다”고 전하면서 “북한 당국이 이 사건에 대해 납득할 만한 해명을 하지 못할 경우 일본 정부는 대북한 쌀 지원을 비롯해 관계개선에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고 진단했 다.
메구미사건 쟁점화 배후에 한국이 있다?
한편 일본 정부는 오랫동안 묻혀져 있던 이 사건이 갑자기 세상에 드러난 것에 대해 한국 정보기관에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 다. 한국의 정보기관에서 메구미와 관련된 정보를 일본 언론에 흘려 일본 국민을 자극, 북한에의 쌀 지원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기 위한 것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 정부는 메구미사건이 드러나기 전에도 이 런저런 이유로 북한 당국에 불만이 있었으나 미국의 적극적인 요청에 의 해 은밀히 북한에의 쌀 지원을 구체적으로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 러나 북한 귀순자의 증언을 인용해 일본 언론에 흘려진 메구미사건은 일 본 정부의 북한 쌀 지원 움직임에 쐐기를 박는 구실을 한 것이다. 더욱이 최근 일본의 신진당은 지난 70년대 초부터 잇따라 발생했던 북한 공작원 에 의한 일본인 납북협의 사건들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자민당 의원들 을 포함한 ‘일본인 납치사건을 규명하는 국회위원회’를 결성할 방침까 지 세웠다.
북한이 지난해 9월 발생한 잠수함사건에 ‘깊은 유감’을 표명한 뒤 북- 미 사이의 접촉이 잦아지는 것을 빌미로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설 움직임을 보였던 일본 정부로서는 또하나의 만만치 않은 난관에 부 딪친 셈이다. 과거 8차례에 걸친 북-일 국교정상화 교섭에서도 북한 기관 원에 의해 납북돼 대외 공작원의 일본어 교사로 일해온 것으로 알려진 일 본인 이은혜 문제가 제기돼 회담 결렬의 주요인으로 작용해온 전례를 감 안하면 더욱 그렇다.
한편 북한은 일본의 이러한 움직임과 관련해 지난 3월12일 “일본 정부가 우리(북한)에 대해 테러국가라는 오명을 씌움으로써 북한의 국제적 영상 을 흐리려 하는 데 있다”면서 일본인의 납치를 전면 부인하면서도 일본 이 북-일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4자회담 실현과 남북관계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는 데 대해 비난, 당분간 일본과 관계개선을 위 한 협상에 나서지 않을 것임을 내비쳤다.
그러나 단 한톨의 쌀이 절실한 북한으로서는 실질적으로 최대 쌀 지원국 인 일본과의 관계가 뒤틀려버린 것이 치명적일 수도 있다는 지적이 많다. 미국과 국제기구의 주도에 의한 대북한 식량지원이 명백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식량을 무상으로 지원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의회의 승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가 의회의 승인과 관계없이 독자적 으로 지원할 수 있는 금액은 5천만달러를 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 다. 세계식량계획(WFP) 등 국제기구의 북한에의 식량지원도 최대 10만t을 넘지 못한다. 북한의 한해 식량 부족분이 1백80만t에서 2백만t임을 감안 하면 북한이 결국 기댈 곳은 일본과 한국뿐이다. 일본은 현재 쌀의 적정 재고량인 1백50만t을 훨씬 넘는 3백만t을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중 상당량은 창고가 아닌 바깥에 야적돼 있어 우기에 접어들 경 우 쌀이 젖어 가까운 바다에 내다 버려야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재고 쌀 버려도 그냥은 안 준다
앞으로의 최대 관심사는 북한이 4자회담에 참석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는 데도 일본 정부가 격앙된 국민 여론을 가라앉히지 않은 상태에서 북한에 쌀을 보낼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북한이 남북한, 미국과 중국이 참여하 는 4자회담을 받아들일 경우 미국과 한국은 북한에 쌀을 지원하겠다고 약 속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일관계 전문가 사이에서는 “일본 정부와 국민들의 감정이 많 이 손상돼 있기 때문에 북한이 일본 정부에 좀더 솔직하고 전향적인 관계 개선의 신호를 보내지 않을 경우 일본 정부가 대북한 쌀 지원에 쉽게 움 직이지 않을 것이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현재의 일본 정부는 한국 못지 않게 북한의 진지한 태도변화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임을출 기자
<관련 주요일지>
1월중 북한-일본 체육교류 협의
1월15일 한일외무장관회의(이케다 유키히코 외상)
1월 25-26일 한일정상회담(벳푸) 하시모토 류타로 일본총리
1월 30일 황장엽 일본 나리타공항 도착(2월 10일까지)
2월10일 황 비서,이토 시게루 사민당 간사장과 회담
*2월12일 오전 10시 망명신청
2월15일 일본산케이 일본정부 대북식량지원계획 동결발표
2월16일 아마사키 다쿠 자민당 정조회장, 후지TV와의 회담, 2월 19일, 미 국무부, 니컬러스 번스 대변인 “미국은 유엔식량계획의 대북 식량난 지 원호소에 부응, 1천만달러의 인도적 원조를 제공키로 결정했다”-미 공법 48조, 한국과 일본정부와 협의를 거쳐 결정된 것
2월21일 일본총리 기자회견 “유엔의 요청이 없는한 우리가 결정을 내리 기는 어렵다”고 말해 유엔인도지원국의 3월 요청이 있은 뒤 결정을 내릴 것임을 시사
2월24일 일정부 대변인 가지야마 세이로쿠 관방장관, “인도적 견지에서 한일및 일북한관계가 원만한 방향으로 진전된다면 쌀 지원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해 쌀 지원가능성을 강력히 시사
2월28일 서울, 한일과장급 비공식회담 벳쇼 고로 외무성 동북아시아 과장 외무부,통일원 실무관계자와 회담
-대북 식량지원문제와 관련해 , 북한의 설명회 연기와 77년 실종된 요코 타 메구미씨 사건 등으로 일본이 세계식량계획의 대북지원에 참여하지 않 았음을 설명하고
이달말이나 내달초 시작될 유엔인도지원국(UNDHA)대북 식량지원에는 동참 할 방침을 시사
© 한겨레신문사 1997년03월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