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1997년03월27일 제 150호 한겨레21

‘여의주’ 민주계를 잡아라

(사진/김 고문이 곧 이회창 후보추대위원회를 구성할 것이라는 `설'이 그럴듯하게 퍼져 있다. )

“더이상 ‘김심’은 없다.”

신한국당이 ‘내전상태’로 들어서고 있다. 권력의 중심을 잡고 있던 김 영삼 대통령의 영향력이 현저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더이상 김 대통령 의 지명권 행사도 힘을 얻기 힘들어졌다. 대통령의 지명권이라는 말 자체 가 현실성을 상실했다는 얘기다. 이제는 이긴 자만이 여권의 새로운 핵심 이 되는 셈이다. 그만큼 대선후보 쟁탈전을 향한 ‘용들의 전쟁’이 치열 해질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당권과 대권후보 선출은 다르다

내전상태로 접어든 ‘용들의 전쟁’은 일단 이회창 대표를 중심으로 새로 운 전선이 형성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 대표가 당권을 장악함에 따라 다 른 후보들보다 유리한 위치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경쟁상대들로서는 입지 강화를 위한 세구축 작업이 더욱 시급한 상황이다. 경선준비를 위한 시간 도 그리 넉넉한 편이 아니다. 정가의 관측대로 6월 말~7월 초에 경선을 한다면 이 대표의 뒤를 쫓아야 하는 경쟁자들로서는 잠시도 쉴 시간이 없 다. 따라서 신한국당은 새롭게 구축된 전선을 축으로 다양한 합종연횡이 모색되고 있다.

그러나 한발만 삐끗하면 추락이다. ‘반이회창 진영’으로서는 이합집산 에 지나친 시간을 소비하다가는 추격의 고삐조차 잡지도 못하고 탈락할 수도 있다. 또 차별적인 상품성을 과시하지 못하면 대의원들로부터 외면 당하기 십상이다. 신한국당으로서는 당내경쟁 못지 않게 ‘민심이반’을 추스릴 수 있는 획기적인 ‘대안상품’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 다.

반대로 이 대표도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탈락의 덫’을 조심해야 할 입 장이다. 정치 초년생이라는 미숙함이 이 대표를 실족케 만들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넘어야 할 산은 ‘김현철 추문’에서부터 경선의 공정성 시비 등 다양하다. 또 신한국당을 떠난 민심을 되돌려야 한다는 부담도 있다. 당내 화합보다 자신의 대선행보에만 치우친다면 그 또한 스스로의 발목을 붙잡을 수도 있다. 따라서 이 대표는 비록 당권은 선점했지만 갖가지 덫 으로 둘러싸여 ‘호랑이 등에 올라탄 모양새’와 다름없다고도 볼 수 있 다. 결코 유리한 싸움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바야흐로 신한국당의 후보경 쟁은 특정 후보의 유·불리를 떠나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얘기가 정확할 듯싶다.

특히 신한국당의 후보경쟁을 바라보는 관전자의 입장에서는 지금부터가 더욱 역동적인 대결을 지켜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군’과 ‘적군 ’이 수시로 뒤바뀌는 합종연횡이 물밑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수면 위에서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동안 여권 내부에서 논의돼온 합종연 횡의 갖가지 가능성을 미리 검토해두면 좀더 흥미로운 관전이 될 듯싶다.


이한동, 박찬종 고문 막판연합으로 승부수

먼저 여권에서 기본 상수처럼 보는 연합관계부터 보자. 그것은 애초 ‘9 룡’ 가운데 한명이었던 김윤환 고문의 거취다. 김 고문은 자신의 트레이 드마크와도 같은 ‘킹 메이커’ 구실을 이번에도 최대의 상품으로 내세우 고 있다. 그는 이 대표와 이미 일찌감치 유대관계를 유지해 왔다. 여권 안에서는 김 고문이 곧 ‘이회창 후보추대위원회’를 구성할 것이라는 ‘ 설’이 그렇듯하게 퍼져 있다. 이-김 연합은 더이상 가능성의 변수가 아 니고 기본 상수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예상되는 합종연횡 의 시나리오는 ‘이-김’이 한 축을 이루는 것을 기본으로 진행된다.

먼저 ‘이-김’-‘민주계 단일후보’-‘여타 연합군’의 3자 대결이 가능 하다. 여기서 주의깊게 눈여겨 봐야 할 후보가 ‘여타 연합군’이다. 이 대표 체제가 출범하면서 다소 기세가 꺾인 이한동, 박찬종 고문이 어떤 입장을 취하는가에 따라 그 파괴력이 결정나기 때문이다. 또 일단 후보군 에는 편입됐으나 독자적인 행동을 하기 어려운 이홍구 전 대표와 이수성 전 총리의 거취도 ‘여타 연합군’의 ±α 구실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최근 이한동, 박찬종 고문의 단독회동과 같은 움직임은 시사 하는 바가 크다. 두 가지 측면에서 주목을 끈다. 이 고문이 주도하고 있 는 ‘반이회창 진영’의 세불리기라는 점에서 그 결과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것이다. 일단 이 대표를 압박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확고히 하려는 정치적인 행보로 풀이할 수 있다. 특히 이들은 이날 회동에서 공 정한 경선장치 보장을 위해 공동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데 의견을 모은 것 으로 알려졌다. ‘반이회창 공동전선’을 구축할 공감대 형성에는 성공한 셈이다. 이들의 움직임은 또 이러한 공감대를 기반으로 민주계를 비롯해 ‘3그룹 후보’들에게도 연합의 손짓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엿보겠다는 의 도를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도 풀이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 박 고문 모두 아직까지 ‘대권의 꿈’을 버리지 않고 있기 때문에 완전한 연합군을 성사시키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따 라서 이들의 실질적인 연합은 경선과정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더 높다는게 여권 관계자들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예컨대 경선에 모두 출마하더라도 결선투표 등 마지막 단계에서 한쪽으로 결합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경선 까지는 4자 대결 양상을 보이다가 마지막 단계에서 3자 대결로 압축될 것 이라는 예상인 것이다.

이 대결에서는 민주계의 반격도 주의깊게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최형우 고문이 뇌졸중으로 쓰러져 계파의 결집력이 다소 흐트러지기는 했지만 경 선까지는 전열을 가다듬고 재도전의 기회를 다질 것으로 관측되기 때문이 다. 현재까지는 김덕룡 의원이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특히 민주계는 대의원 장악도에서 60~70%를 과시하고 있어 계파결집력만 훼손 되지 않는다면 ‘이-김’진영의 ‘대세론’은 쉽게 경선에서 누를 수 있 을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또 민주계쪽은 박 고문의 참여도 점치고 있다. 박 고문은 비록 높은 여론의 지지를 업고는 있지만 당내 세력이 거의 없 다는 점 때문이다. 결국 ‘반이회창’분위기에 따라 범민주계로 포함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민주계, 이수성이냐 박찬종이냐

또다른 경선구도로는 ‘이-김’-‘이수성’-‘3그룹 단일후보’, 또는 ‘ 이-김’-‘박찬종’-‘3그룹 단일후보’ 대결이 가능하다. 민주계가 독자 후보를 포기하고 ‘킹 메이커’로 돌아설 경우를 전제로 한 것이다. 민주 계가 계파결집력이 느슨해진 상태에서 단일후보를 내는 데 실패했을 경우 계파의 대리전을 모색할 것이라는 분석에 따른 것이다. 다시 말해 민주계 가 ‘이수성, 또는 박찬종 카드’ 가운데 하나를 꺼내들고 당내 최대계파 의 몫을 지키려 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민주계로서는 어찌 보면 마지막 카드에 가깝다.

이 가능성에 대해 여권의 관계자들은 민주계가 ‘이수성 카드’에 눈길을 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민주계쪽 인사들이 “이 전 총리와는 정서적으 로 가깝다”고 언급해온 점을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3그룹’에서는 여 전히 이한동 고문이 가장 유력한 출마 예상자로 꼽히고 있다. 이 대결에 서 ‘3그룹’에 포함되는 예비 후보 가운데서는 이 고문이 당내 세력을 비교적 탄탄히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민주계의 공중분해로 새롭게 전개될 경선구도다. 정치권은 두 가 지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아직까지 강한 경선출마 의지를 보이고 있는 김덕룡 의원의 거취에 따른 구분이다.

첫째는 김 의원의 독자 출마 결심에 따른 경선구도다. ‘이-김’-‘박찬 종-민주계 일부’-‘이한동-민주계 일부’-‘김덕룡 독자 출마’ 대결이 예상된다. 둘째는 민주계가 완전히 ‘헤쳐모여’식으로 흩어진 경우다. ‘이-김+민주계 일부’-‘박찬종-민주계 일부’-‘이한동-민주계 일부’ 대결이다. 그러나 최근 드러난 현철씨의 ‘정권재창출 계획’에서 나타나 듯이 민주계는 그동안 현철씨로 대표되는 여권핵심의 관심사 밖으로 밀려 나 있었다. 따라서 더이상 ‘김심’이 경선구도에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 게 됨에 따라 거꾸로 민주계의 응집력은 더욱 강해질 것이라는게 민주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민주계가 헤쳐모이는 식의 공중분해는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사실 민주계 내부에서는 중진회의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목소리 가 힘을 얻고 있다. 그만큼 계파 추스리기 움직임도 활발하다. 따라서 마 지막 경선구도는 당분간 논의 밖에 있을 것이라는 게 여권의 일반적인 관 측이다.

물론 이러한 대결구도는 이회창 대표체제 출범과 민주계의 ‘좌장’격인 최형우 고문의 뇌졸중이라는 최근까지의 상황을 종합한 여권내부의 논의 들이다. 그러나 앞으로 예상되는 돌출변수들은 얼마든지 있다. 먼저 이 대표가 정치적으로 불의의 일격을 받아 실족했을 경우다. 이 대표는 여권 내 다른 후보들을 비롯해 야권으로부터도 집중 공격을 받고 있다. 가장 커다란 시험대는 ‘김현철 추문’ 처리 문제다. 이 대표는 이미 취임과 함께 “법대로!”를 천명한 바가 있다. 그러나 이 대표가 말한대로의 ‘ 법대로’가 어디까지인지는 그 누구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이회창 대표 김현철 ‘법대로’에 한계

특히 여권 일부에서 지적하고 있는대로 이 대표조차도 ‘김현철과의 관계 ’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데 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이 대표가 신한국당에 입당하게 된 과정에서 현철씨가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 로 알고 있다”며 ‘이회창-김현철’관계가 보통 이상일 것이라고 분석했 다. 이 관계자는 “청와대의 한 고위 관계자가 입당을 권유해도 줄곧 거 부하던 이 대표가 현철씨의 한마디에 입당을 결정했다는 얘기가 있다”며 이 대표의 입당과정과 관련된 뒷얘기를 전했다. 이 대표가 김씨 처리에 어느 정도 한계를 갖고 있지 않겠느냐는 전망인 것이다.

특히 다수 민주계 의원들은 “김 대통령을 묵사발 만들면서까지 현철씨 문제를 처리한다면 가만 있지 않겠다”고 벼르고 있는 형편이다. 민주계 가 절대다수의 대의원표를 확보하고 있다는 점을 차치하더라도 이 대표의 처신에는 걸림돌이 널려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두루뭉실하게 김씨 문제 를 넘어갈 수는 없는 상황까지 다다른 시점에서 이 대표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자칫 ‘실족’의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또 당헌당규 개정과정에서 ‘반이회창 진영’의 세결집을 촉발할 수도 있 다. 이 대표로서는 현재 5천명 이내로 규정돼 있는 전당대회 대의원수를 어떻게든 늘려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다. 기존 대의원 구조는 민주계가 주 도권을 확실히 쥐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 대표쪽은 또 투표방식도 고쳐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1차 투표에서 1, 2위를 차지한 후보들 간의 결선투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럴 경우 경선과정 에서 마지막 연합을 꾀할 수 있는 ‘3그룹’의 입지가 상당히 위축된다. 따라서 관철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도 이 대표쪽이 개정을 고집할 경우 ‘반이회창 진영’의 이합집산을 재촉하게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경우에 따라서는 응집력도 강하게 만들어 줄 수도 있다. 경선구 도가 새롭게 전개될 가능성을 안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 후보 가운데 일부가 신한국당을 이탈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물론 여권 속성상 스스로 탈당해 야권으로 가는 ‘가시밭길’을 선택하 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따라서 그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그러나 일단 이탈의 가능성을 내비치는 움직임이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한동 고문은 지난 3월14일 ‘당면 정국현안에 대한 입장’이라는 문건을 통해 아리송한 표현을 사용해 정치권의 여러 가지 해석을 낳았다. 이 고문은 “이번 (김현철)파문을 보면서 권력집중과 합리적인 국정운영 문제, 국가 와 당의 민주화 방향 등에 관하여 심각하게 고뇌하지 않을 수 없다”고 문제제기를 했다. 그는 이어 “나는 앞으로 정국수습과 국가발전을 위해 온몸을 던져 노력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 당내외는 물론 각계각층의 인사 등 누구와도 만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이한동 고문 “당 떠나 국민심판 받겠다”

이 고문의 이러한 언급에 대해 경선과정이 여의치 않으면 당을 떠날 수도 있을 것이라는 해석이 여권 일부에서 나오고 있다. 특히 이 고문의 측근 조차 “누구는 당 대표와 경선출마가 가능하고 누구는 안 된다는 식의 당 운영이 용납된다면 이 고문으로서는 아예 당을 떠나 홀가분하게 국민의 심판을 받는 게 최선이 아니겠느냐”고 불만을 터뜨려 이러한 해석에 힘 을 실어주고 있는 실정이다. 당 상황이 이 정도라면 이 고문 등 일부 후 보의 탈당이 전혀 불가능한 것만도 아닐 것이라는 해석이 더욱 그럴듯하 게 들리게 된다.

결국 여권의 내전상태가 본격화한 만큼 차기 후보 가시화는 그리 오래 가 지 않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지적이다. 그리고 주된 관심은 이 대표가 곳곳에 깔린 지뢰를 어떻게 비켜가느냐이다. 한번의 실족이 자신의 향후 정치생명을 좌우할 만큼 폭발력이 크기 때문이다.

김용성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3월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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