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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1997년03월27일 제 1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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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최형우 고문의 입원으로 민주계는 구심을 잃었지만 대선후보 경쟁에서 여전히 최대변수다.)
신한국당 최대 주주인 민주계는 대선후보 선출 전당대회에서 ‘캐스팅 보 트’를 행사할 수 있을 것인가.
최형우 고문의 입원과 이회창 대표의 취임으로 격랑이 일고 있는 신한국 당 대선후보 경쟁에서 민주계의 행보가 최대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민주계는 현재 대의원 60~70%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산술적 으로는 대선후보에 대한 결정권을 이들이 독점하고 있는 것이다.
이회창 대표 임명은 민주계 대재앙
그렇지만 민주계 내부에는 최근 두 가지 힘이 서로 팽팽히 대립하고 있다 . 하나는 위기를 맞아 계파의 결속력을 강화하려는 ‘구심력’이고, 또다 른 하나는 이회창 대표를 비롯한 대선주자들이 민주계 의원들을 개별적으 로 흡수하기 시작하면서 발생하는 ‘원심력’이다.
물리학적으로 원심력이 구심력보다 강하면 그 물체는 결국 해체된다.
이회창 대표 임명 사실이 알려진 지난 3월13일 아침 여의도 의원회관에서 는 민주계 의원들의 긴급 모임이 있었다. 이틀 뒤 사무총장에 임명된 박 관용 의원과 부산 지역구 5선인 김정수 의원, 그리고 민주계 초·재선 의 원들이 김정수 의원의 방에 모여 갑작스런 이 대표 취임에 따른 향후 민 주계의 진로에 대해 토론을 한 것이다.
전날까지만 해도 당 대표에는 이한동 고문이 임명될 것이라는 관측이 유 력했다. ‘이한동 대표’는 민주계의 장래에 전혀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 었다. 하지만 유력한 대선주자인 이회창 상임고문의 당 대표 진입은 민 주계로서는 하나의 정치적 재앙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민주계 의원들이 ‘이회창 대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 정도로 외부상황이 한가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였다. 의원들은 “당장은 이회창 대표를 중심으로 당을 구하는 일이 최우선 과제”라고 의견을 모 았다. 이회창 대표가 좋아서가 아니라 여권 전체의 몰락을 막기 위해 어 쩔 수 없이 김 대통령의 선택을 ‘추인’한 셈이다.
민주계 의원들은 이날 이후에도 향후 계파의 진로를 논의하기 위해 연일 모임을 갖고 있는데 심각한 위기감 때문인지 결속력이 전보다 오히려 강 화되고 있다는 것이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한 관계자는 “민주계는 유신 치하에서 민주화투쟁을 하면서 형성된 정치집단”이라며 “몇 사람이 영 입주자들에게 투항한다고 해도 민주계 전체의 동질성을 원형 그대로 유지 할 자신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민주계가 계파 안팎으로 직면해 있는 해결과제는 말 그대로 첩첩 산중이다.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바로 계파의 ‘수장’인 김 대통령의 몰 락이다.
안기부법·노동법 날치기에 따른 노동계와 시민들의 강력한 저항, 한보그 룹 사태와 뒤이은 홍인길 의원 등 민주계의 잇단 구속, 증폭되는 현철씨 의 한보개입설등으로 김 대통령은 이미 기진맥진해 있었다. 거기다가 <한 겨레>의 김현철씨 ‘연합텔레비전뉴스(YTN)’ 및 국방부 장관 인사개입 보도로 시작된 현철씨의 광범위한 국정개입이 사실로 속속 밝혀지면서 김 대통령은 일종의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져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형우 없는 민주계 구심이 없다
지난 3월13일 오후 전국위원회를 지켜본 민주계 의원들은 김 대통령의 초 라한 모습에서 대부분 충격을 받았다. 단상에 선 김 대통령의 모습은 굳 어 있었고 한없이 초라하기만 했다. ‘오만’한 것으로 종종 평가된 특유 의 자신감은 그의 얼굴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신임 이회창 대표 가 연설하는 동안 청중석에서는 4~5차례 박수가 터져 나왔지만 김 대통령 의 연설에는 박수가 거의 나오지 않았다.
민주계의 한 고참 보좌관은 “YS가 정치적 생존을 위해 이회창 대표에게 줄을 섰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며 “그가 이회창 대표를 의도적으로 정치적 시험대에 올려 놓았을지도 모른다는 우리의 추측은 완전히 빗나갔 다”고 ‘고백’했다.
김 대통령이 이런 상태에서 기력을 영영 회복하지 못한다면 민주계의 앞 날이 험난한 것은 당연하다. ‘1인 보스’를 중심으로 뭉쳐 있는 우리나 라 정치계보의 특성상 보스의 몰락은 계파 전체의 몰락으로 종종 이어지 기 때문이다.
민주계 중진들의 사정도 심각하다. 쓰러진 최형우 고문은 그동안 대선주 자로서는 하위그룹에 속해 있었지만 김 대통령 취임 이후에 민주계의 ‘ 맏형’ 노릇을 톡톡히 해온 것이 사실이다. 최근 민주계 의원들 중에서 “최형우가 없으면 나는 민주계 안 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 니다.
최 고문에 이어 민주계를 ‘관리’해야 할 일차적 책임은 김덕룡 의원과 서석재 의원 몫이다. 하지만 두 사람이 민주계의 구심점 구실을 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다.
김덕룡 의원은 민주계 대선주자로서 최 고문과 경쟁관계에 있었다. 상식 적으로 최 의원이 쓰러졌다면 김 의원쪽으로 힘이 몰려야 한다. 그러나 최근 민주계 안에서 김 의원이 부상하고 있다고 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 김 의원은 전북 사람이다. 다른 민주계 중진들과 달리 그는 진보노선을 지향해 재야인사들과 가까운 편이다. ‘영남지역의 보수·중산층’이 주 류를 이루는 민주계 인맥에서 김 의원이 세를 확보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또 김 의원에 대한 김 대통령의 신임이 어느 정도인지 의심을 하 는 사람들도 많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 사무총장 한 번과 정무장관 두 번밖에 정치적 ‘기회’를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민주계의 ‘저변’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서석재 의원도 ‘기 치’를 들 수 있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는 최근 민주계 의원들의 요청에 도 당직을 극구 고사했다. 문민정부를 계승하는 정권을 재창출하기 위해 서는 전면에 나서는 것보다 뒤에서 도와주는 것이 훨씬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논리다.
사무총장을 맡은 박관용 의원은 민주계 중진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민주계 정통성을 갖고 있지는 못하다. 그는 이기택 민주당 총재의 보좌관으로 정 치에 입문해 11대 민한당 공천으로 국회에 들어온 사람이다. 굳이 분류하 자면 ‘방계’인 셈이다.
이런 복잡한 내부사정에 따라 민주계 의원들은 ‘대안’으로 ‘집단지도 체제’같은 새로운 시스템 구축을 시도하고 있다. 김덕룡, 서석재, 박관 용, 김명윤, 김수한 의원 등 민주계 중진들을 한데 묶어 민주계를 관리하 도록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구상도 약간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 5명 사이에 의견의 일치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어쨌든 이들 ‘5인방’이 앞 으로 민주계의 논의를 주도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민주계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결속력을 유지하면서 이회창 대표와 적절한 관계를 설정하는 일이다. 한 재선의원은 “민주계가 이회창 대표를 신한 국당의 확실한 대선후보로 인정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라며 “당장의 위 기를 극복하기 위해 그를 중심으로 당 전체가 단합해야 한다는 것”이라 고 말했다.
이에 따라 민주계는 이회창 대표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가면서 이 대표 의 정치력을 냉정히 관찰하는 태도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계의 최우 선 관심사는 두 말할 것도 없이 현철씨 문제다.
김 대통령 상처 내면 안 참는다?
부산출신의 한 의원은 “김 대통령을 ‘묵사발’로 만들면서 현철씨 문제 를 처리하는 것은 이 대표가 아니라도 누구나 할 수 있다”며 “그가 현 철씨 처리과정에서 김 대통령에게 지나친 상처를 입히게 되면 당내 경선 에서 민주계의 지지를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고 은근히 ‘협박’을 했다 .
앞으로 민주계는 독자적인 대선후보를 내세우거나 ‘킹 메이커 집단’으 로서 재집권에 결정적으로 기여하는 두 가지 진로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 리라는 것이 대체적인 전망이다. 독자적인 후보로는 김덕룡 의원을 내세 울 가능성이 많고, ‘킹 메이커’를 할 때는 영입파 가운데 대리주자를 선택할 가능성이 좀더 높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경선과정에서 사분오열돼 계파자체가 해체되는 상황을 맞을지도 모 른다. 하지만 어느 경우든 민주계의 향후 선택이 신한국당의 대선후보 경 쟁구도와 여야가 맞서는 연말 대선 판세에 결정적 영향을 끼칠 것은 분명 해 보인다.
성한용 기자/ 한겨레 정치부
© 한겨레신문사 1997년03월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