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야기
1997년03월27일 제 150호 한겨레21

네 자매의 ‘행복한 왕자’ 만들기

피아노학원으로, 태권도장으로, 미술학원으로…. 배우는 게 너무 많아 차 분히 책 한권 읽기도 힘든 게 요즘 아이들의 모습이다. 만화나 컴퓨터게 임에는 밤잠을 설치며 몰입하지만, 책을 즐겨 읽는 아이들은 드물다. 책 은 재미없고 따분하다는 게 이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이런 아이들을 책 속으로 끌어들이겠다고 네 자매가 손을 잡았다.

심금숙(41), 경숙(35), 현숙(33), 현정(30)씨. 이들은 지난해 11월 일산 신도시 대화전철역 근처에 어린이 전용도서관 ‘행복한 왕자’를 열었다. 자매가 공동의 이름으로 소유한 3층짜리 건물 지하 40평을 도서관으로 바 꾼 것이다. 금숙씨와 현숙씨가 주로 비용을 대고, 경숙씨와 현정씨는 일 손을 보탰다. 건물에는 네 자매의 가족애가 배어 있다. 철이 들면서 각 자 생활을 좇아 흩어져 살던 이들은 함께 살아보자며 일산으로 모여들었 다. 사는 곳은 다르지만 엎어지면 코가 닿을만한 거리에 떨어져 살면서 훈훈한 동기애를 키운다.

도서관에는 만화책이나 오락용 CD-ROM 등 밤낮 아이들의 눈과 귀를 혹하 게 할 만한 게 없다. 대신 <생명의 역사> <반갑다 논리야> 같이, 아이들 의 생각을 넓히고 편견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되는 4천여권의 책과 유익한 CD-ROM이 가득하다. 책 가운데는 금숙씨의 손때가 묻은 낡은 동화책도 끼 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책은 자매가 주머니를 털어 사들인 신간들이다 . 한켠에는 어른들이 읽을 수 있는 책도 마련돼 있다. 부모가 아이들이 읽는 책에 관심을 갖고 함께 찾아달라는 뜻이다.

“요즘 아이들은 오락용 CD-ROM이나 만화책에 중독돼 있어요. 기껏해야 동화책 정도나 읽는 게 다죠.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려고 고민하는 부모님 들도 전집류 아동 도서 몇권 사주는 게 고작이고요. ”

금숙씨는 “아이를 키우는 데 책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책을 읽지 않 은 아이는 정신적 영양실조에 걸린다는 것이다. 두 딸을 키우며 몸으로 터득한 지헤이기도 하다. “어릴 적부터 책을 가까이 하지 않으면, 초등 학교 3학년이 돼도 뭘 읽어야 할지 모르게 되고, 중학교에 들어가면 교과 서 말고는 아예 책과 담을 쌓게 됩니다. 그만큼 사고의 폭이 줄어드는 거 죠.”

도서관은 회원제로 운영된다. 회원들은 6개월에 1만원의 회비를 내야 한 다. 현재 1백80명 정도가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고 한다. 자매들의 인건비 가 겨우 빠지는 수입이다. 요즘 주변에 흔한 책대여점 사정과 크게 다르 지 않다. 금숙씨는 “회원이 적어도 3백명은 돼야 살림이 튼튼해질 것 같 다”며 웃는다.

하지만 도서관은 단순히 책대여점으로 끝나지 않는다. 도서관에는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열람시설과 유익한 CD-ROM이나 비디오를 볼 수 있는 시설이 갖춰져 있다. 네 자매는 이를 위해 1억원 가까운 돈을 모아 투자 했다. 최근에는 회원 학부모들을 위한 ‘영어교실’과 ‘어머니 독서교실 ’도 열고 있다. 금숙씨가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던 게 도움이 된단다 . “영어교실이 호응을 받고 있어요. 초등학생 때부터 학교에서 영어를 배우는 시대라, 학부모들도 걱정이 많았나봐요.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면 서 영어를 배우는 모습이 무척 진지합니다.”

3층 건물 전체를 책향기가 그윽한 문화공간으로 만들고 싶다는 네 자매. 학부모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아이가 자라 쓸모 없어진 책은, 모든 어 린이가 돌려 읽을 수 있도록 도서관에 보내주세요.” (문의: 0344-917-03 23)

신승근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3월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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