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997년03월27일 제 150호 한겨레21

파고

감독 조엘 코엔/출연 프렌시스 맥도먼드, 스티브 부세미, 월리엄 H. 메이시

김정룡/ 영화평론가

그냥 뿌연 빛이다. 영화가 시작한 뒤 화면은 한참을 그러고 있을 뿐이다. 자세히 보면 하늘 같다. 새가 한마리 휙 날아가면, 또 땅 같기도 하다. 몇 분이 지난 다음에야 화면 저 멀리서 가물거리며 움직이는 빛이 등장한 다. 자동차 헤드라이트다. 그러고도 조금 더 기다려야 차가 눈과 안개로 뒤덮인 고개마루를 느리게 넘어오고 있음을 알게 된다. 카메라가 자리를 바꾸면, 차는 두 대다. 차량 한 대가 다른 차를 끌고 온다. 차에 끌려가 는 차, 상징적인 크레딧 장면이다. <파고>는 코 앞을 내다볼 수 없으리만 치 타락한 미국 혹은 현대의 세태를 풍자한 영화다. 시계는 어둡고 흐릿 하며 관객은 어느 것 하나 예상하지 못한다. 사건은 엉뚱한 방향에서 꼬 리를 물고 천천히 관객을 향해 진격해 온다.

자동차 세일즈맨인 제리 룬더가드는 갈수록 늘어나는 빚 때문에 아내를 납치시킬 궁리를 한다. 장인더러 청부업자에게 줄 돈을 내놓으라고 사정 한 다음 슬쩍 챙길 심산인 것이다. 그러나 이 불투명한 세상에서는 뜻대 로 투명하게 진행되는 일이 없다. 모든 등장인물의 계획은 근본에서 뒤엉 킨다. 계약은 처음부터 어긋나며 살인은 돌림병처럼 걷잡을 수 없이 전염 된다. 납치범은 고속도로에서 경찰을 죽이고, 장인은 직접 돈을 전달하려 다 죽는다. 아내는 인질 상태에서 죽으며, 거액을 빼돌린 칼은 차값 몇 푼을 떼먹으려다 아예 목숨을 잃고, 도끼로 칼을 살해한 게어는 광기에 사로잡혀 그의 시체마저 유기하던 중 경찰에 체포된다. 형제 감독은 돈과 폭력, 이기심의 노예가 된 현대인의 초상을 이 잔인하고, 어리석고, 우울 한 꼬락서니들을 통해 비쳐주고 있다.

영화는 예측하기 힘든 세계의 모습을 치밀하게 다듬어진 스타일로 양각해 나간다. 성에를 뒤집어 쓴 차창, 복면을 뒤집어 쓴 머리처럼 시야를 차단 하는 시각 모티프 도 눈길을 끌지만, 백미는 단연 미장센(화면구성)이다 . 정교하게 고안된 2인 쇼트(Two Shot)와 3인 쇼트들은 영화의 주제를 세 련되게 함축한다. 노회하고 대범한 장인과 어리석고 겁많은 사위, 음흉한 남편과 순진한 아내, 수다쟁이 전과자와 무표정한 사이코, 또는 경찰서장 과 세일즈맨, 서장과 창녀, 창녀와 칼, 칼과 인도네시아인, 게어와 제리 의 아내, 칼과 게어…. 카메라는 대립과 소통 불능의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 이들을 한 장면 안에 밀어넣는다. 장면 안에서, 프레임 안에서 그들 은 주변으로 부딪히거나 약간씩 어긋난 채로 서로를 스쳐 지나간다. 어이 없을 때든 의아할 때든, 아니면 긍정할 때든간에 습관적으로 “야아(Ya) ”하고 대답하면서(이 어처구니 없는 “야”들은 대화의 사이를 횡단하면 서 인물의 다양한 처지와 상태를 부각시키는 익살스런 구실을 하고 있다) .

그 중에서 아예 대답을 안 하거나 지나치게 과장된 억양으로 대답하는 이 가 둘 있다. 게어와 미지의 동양인 친구가 그들이다. 게어는 정체불명의 정점에 서 있는 자고 동양인은 가장 유순한 인상을 한 자다. 그들이 저렇 게 미친 존재들일 줄을 누가 알았으랴.

결말은 얼핏 따뜻해 보인다. 사건은 해결됐고 남편은 숙원인 우표 디자인 공모전에 입상했다. 경찰서장은 다시 임신한 아내로 돌아왔고 연노랑 스 탠드 불빛은 이 가정을 따사롭게 꾸며주는 데 일조한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방은 여전히 어둡다. 그 위에 깔리는 음악은 씁쓸하고 전망할 수 있 는 일은 사실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노엘의 도안이 3센트짜리 우표용으 로 채택되기는 했는데, 과연 언제쯤에나 우표값이 오를지….

© 한겨레신문사 1997년03월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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