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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
1997년03월27일 제 1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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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전에 대한 국역작업이 활기차다. 국고 지원 아래 민족문화추진회 중심으로 일부 뜻있는 출판사들이 어렵사리 꾸려온 고전국역사업에 뜻을 같이하는 여러 출판사들이 나서고 있다. 지난해 붐을 이룬 우리 역사와 사상에 대한 높은 관심도 이런 작업의 소중한 결실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올해는 좀더 깊이있고 다양한 우리 고전이 새롭게 번역되거나 재번역되어 속속 출간되고 있다. 이 가운데 솔출판사의 `나랏말쌈(아래아)' 시리즈, 현암사의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옛글 백가지', 동연의 `조선과거 실록' 창작과비평사의 `역주 백호전집' 등이 눈길을 끄는 국역본들이다. 민족문화추진회와 고전국역총서 재발간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솔출판사의 `나랏말쌈' 시리즈는 98년까지 모두 97권을 낼 예정인데, 우선 1차분으로 6종이 나왔다. 5월까지 2차분 14종을 더 낼 계획이다. 1차분은 `삼국유사 ' `다산문선' `열하일기' `성호사설' `용재총화' `산림경제' 등으로 민족 문화추진회가 편찬했다.
일연이 쓴 `삼국유사'는 우리 고전 중의 고전. 이번 국역본은 한학자 이 재호(78) 부산대 명예교수가 30여년에 걸쳐 수정·교정을 거친 노작으로, 출판사쪽은 기존 판본의 오역, 오·탈자, 졸속 편집 등을 일소한 결정본 임을 자신하고 있다.
`다산문선'은 다산 정약용의 시문 중 그의 인간적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유배생활의 글 가운데 선별했다. `열하일기'는 실학자 연암 박지원이 중 국을 여행하고 돌아와 서양의 신학문을 수용한 청조 문물을 받아들여 이 용후생의 학문과 제도를 펼 것을 주장한 명저. 원저의 총 26편 중 `압록 강을 건너며' `성경잡지' `역마를 달리며 적은 수필' 등 3편을 실었다. 조선후기 실학자 성호 이익의 `성호사설'은 당대의 사회상과 문물 제도 풍습을 전해주는 짧은 단편모음으로 10권 분량 9백90편 중 풍부한 지식과 상상력을 일깨우는 명단편 1백28편을 가려뽑았다. 조선 초 문신 성현이 쓴 `용재총화'에는 고려부터 성종조에 이르기까지 형성·변화된 민간풍속 문물제도 문화 역사 지리 문학 서화 음악 등이 두루 실려 있다. 유명인들 의 일화나 해학담 등을 채록한 이 책은 민속학이나 구비문학 연구에 중요 한 자료다. 유중림의 `증보 산림경제'는 홍만선의 `산림경제'를 증보한 농서로 이 중 ‘집안 건사하기’ ‘대잇기’ ‘아이키우기’ 등 세편을 골라 국역했다. 현대 한국인에게도 건강한 생활의 지혜를 전해준다.
현암사에서 나온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옛글 백가지'(조면희 옮김 )는 신라시대 최치원에서부터 조선시대 영조대왕이 이르는 시기의 명문 1 백편을 실었다. ‘죽부인전’ ‘공방전’ 등 가전체 소설에서 애첩의 죽 음을 슬퍼하는 제문, 일본국왕에 답하는 국서, 가벼운 수필과 상소문, 기 행문, 묘지문 등 선조들의 삶과 정서를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장르의 글을 “금 속에서 금을 고르듯” 뽑아 한자리에 모았다.
동연의 `조선과거실록'(지두환 옮김)은 조선시대 과거시험의 최종문제와 답안지인 책문과 대책을 통해 당대의 시대상과 문제의식을 살펴볼 수 있 도록 한 드문 책이다.
으레 과거는 경전을 외워 쓰고 시문을 짓는 것이라고 생각해온 우리에게 이 책은 ‘충격’이다. 당대의 가장 핵심적이고 시급한 국가적 문제에 대 해 묻고 답하는 과거시험은 단지 관리를 뽑는 데 그치지 않고 재야의 학 자, 경세가들에게 널리 나라의 대책을 듣는 자리였던 것이다. 특히 “나 라의 가장 시급한 일이 무엇인가”를 묻는 시제에 “정신 못 차리는 임금 이 가장 시급한 문제”라는 목숨을 건 답변은 오늘의 우리 정치현실에 확 다가온다. 이 답안을 낸 임숙영은 왕의 노여움과 이를 겁낸 시관들 때문 에 꼴찌로 과거에 합격했지만, 그 기개만큼은 장원급제 이상이라고 할 것 이다. 이 밖에 ‘법의 폐단을 구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각기 답한 성삼문, 신숙주의 대책 등과 조광조 하위지 김일손 송시열 오 달제 등 당대 최고수준의 선비들의 명답안을 읽을 수 있다.
창비의 `역주 백호전집'(신호열·임형택 함께 옮김)은 우리 문학사에서 가장 낭만적인 일화를 남긴 천재 문인 백호 임제의 호방한 정신세계를 한 자리에 모은 책이다. 임제는 평안도 도사(道事)로 부임하는 길에 황진이 묘를 지나가다, “청초 우거진 골에…”로 시작하는 유명한 시를 짓고 제 사를 지낸 일로 탄핵을 받은 일과, 죽음에 이르러서는 “한번도 황제를 칭해보지 못한 누추한 나라에 살다가는데 죽음을 애석해 할 것 없다”고 유언한 일화 등으로 유명하다. 한 시대를 무애의 경지로 살다간 백호의 문학이 이제서야 완역된 것은 오히려 때늦은 느낌이 들 정도다.
이인우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3월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