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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시대 |
1997년03월27일 제 1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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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탁한 가요계에도 장수를 누리는 가수들이 없 진 않다. 음반을 낼 때마다 1백만장을 웃도는 빅히트를 터뜨리며 우열을 다투는 김건모와 신승훈이 있고 라이브의 왕자 이승철, 이승환, 조관우, 한국 록의 대표 넥스트, 김종서, 재즈 뮤지션 김현철, 영원한 오빠 이문 세, 데뷔 20주년의 산울림 등이 그들이다. 여자가수로는 이선희가 있다. 그리고 데뷔 초기의 일반적 예상과는 달리 김완선과 강수지도 자기만의 컬러를 발휘하며 지금껏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들이 장수를 누리는 이유는 의의로 간단(?)하다. 라이브 무대를 소화해 낼 수 있는 뛰어난 가창력이 있거나, 자작곡 능력을 갖춘 싱어송 라이터 이거나, 이도저도 아니면 독특한 이미지 관리로 팬들을 항상 묶어둘 수 있는 매력이 있든가 등이다. 특히 최근 들어 립싱크 배격과 라이브 선호 분위기 탓에 라이브가 가능한 이들의 주가는 더욱 올라가고 있다.
현존 가수들 중 별똥별처럼 한번 깜박이고 꺼져버리는 이들과 달리 수년 동안 오버그라운드 무대를 장악하고 있는 이가 김건모와 신승훈이다. 김 건모는 명실공히 이 시대의 가수다. 92년 9월 <잠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 >로 데뷔한 그는 텔레비전에 모습을 비친 뒤 그 까만 외모 탓에 오히려 음반판매량이 떨어지는 황당한 경험을 겪기도 했지만 오히려 자신의 단점 을 장점으로 바꿨다. 신비감을 불러일으키는 스타들과는 달리 그는 친근 함으로 다가갔다. 노래뿐 아니라 보여주는 면에서도 그는 탁월하다. 흑인 음색이 섞인 듯한 그의 목소리는 솔, 발라드에선 흐느끼는 듯 허스키하게 들리지만 <스피드>와 같은 댄스곡에선 광대기질을 한껏 발휘한다. 지난 9 5년 계약금 10억원에 도레미레코드와 음반계약을 체결, 몸값 최고를 과시 하기도 했다.
장르가 다름에도 김건모의 유일한 라이벌로 인식되고 있는 신승훈도 가창 력에선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5집까지 단 한장도 빠지지 않고 모두 1백만장을 넘어섰다. 5집 `나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니가 있을 뿐' 은 2백만장에 육박해 지난해 음반 판매량 1위를 기록했다. 대학시절 고향 인 대전의 카페에서 통기타를 치며 오랜 기간 내공을 쌓던 시절이 오늘의 그를 낳은 자양분이다.
두차례에 걸친 마약 관련 사건으로 활동을 중단하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선 이승철의 재기가 가능했던 이유는 그가 지닌 뛰 어난 가창력과 음악에 대한 열정 때문이다. 넓은 음역을 자유자재로 소화 하는 능력, 앳된 얼굴에 흐르는 우수 어린 분위기가 그의 매력이다. 부활 의 멤버로 89년 솔로로 독립한 그는 힘이 있으면서도 애절한 감성이 가득 한 목소리가 특징이다. 일반 쇼프로에서 제마음대로 애드립을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가수 중 하나다. ‘라이브의 황제’라는 별칭이 말해주듯 라 이브 무대에선 더욱 힘을 발휘한다.
얼마전 나란히 성황리에 전국 순회공연을 가진 이승환과 조관우도 각자의 개성을 방송보단 라이브 무대에서 펼치는 이들이다. 이승환은 지난 9년간 나름의 일관된 음악 색깔을 유지해 왔고 조관우는 95년 말 발표한 리메이 크곡 <님은 먼곳에>로 1년 내내 차트 상위를 기록했다. 남자가수로는 도 저히 믿기 어려운 고음을 회화적인 이미지로 엮어내는 게 그의 특기다. 넥스트와 김종서는 언더그라운드의 이미지를 유지한 채 방송국 바깥 대부 분을 장악한 현존 한국 록의 선두주자들이다. 신해철이라는 탁월한 뮤지 션이 이끄는 넥스트는 매번 실험적인 크로스오버를 추구하면서 넥스트 특 유의 음악을 만들어왔다. 약간 부족한 듯 보이는 그의 가창력도 워낙 강 력하게 내뿜는 카리스마와 음악성 덕분에 불만을 표하는 이는 아무도 없 다. 김종서의 노래를 듣고 있자면 머리카락이 쭈삣쭈삣 선다. 가성을 쓰 지 않고도 성층권의 음역을 오르내리는 그는 진정한 록커다. 국내에서 ‘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 '를 제대로 부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가수다.
재즈뮤지션을 표방하는 김현철은 작사, 작곡, 연주, 노래 등에 모두 큰 재능을 갖췄다. 기실 노래는 그렇게 잘한다고까진 할 순 없으나 중학교 때부터 작곡을 할 정도의 천부적 음악실력이 그의 바탕이다. 20세였던 89 년 첫 앨범을 발표함으로써 대중음악계에 신동의 탄생을 알렸고 영화 `그 대 안의 블루' 사운드트랙을 1주일 만에 만드는 순발력까지 과시했다. 그 리고 이때 이소라를 발굴하기도 했다. 발랄한 멜로디, 사색적 노랫말, 세 련된 창법, 실험성과 대중성의 정교한 균형을 아는 그는 천재의 범주에 속한다. 사라진 ‘별밤지기’ 이문세는 70년대 통기타 세대의 막내둥이다 . 사십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젊은 감각을 잃지 않고 있으며 노래 잘한다 고 손꼽히는 가수다.
여기에 20년의 관록이 거인처럼 다가오는 산울림, 매번 무대 마지막에서 용암을 터뜨리듯 `아름다운 강산'을 열창하는 이선희. 이들이 있기에 그 래도 우리 가요계에 희망을 걸 수 있다. 장수가수는 또 한명 있다. 지금 은 은퇴한 ‘서태지와 아이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3월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