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시대
1997년03월27일 제 150호 한겨레21

스타시스템이 빚는 가요계의 비극

(사진/최고의 10대 우상으로 떠오른 H.O.T는 음반기획사에서 철저하게 만들어진 스타다.)

잼, 미스터 투, 투투, 마로니에, US, E.O.S, 하이디, 방세옥.

1년 전만 해도 한창 가요인기 순위를 누비던 가수(그룹)들이다. 지금 이 들이 무얼 하고 있는지 알기란 꽤 어렵다. 지난해 여름엔 아이돌, 콜라, UP 등이 꽤 높은 인기를 누렸고, 지금은 H.O.T, 영턱스, 쿨을 비롯해 구 피, 하모하모, 벅, 스크림, 스타일, 코스트 코스트, 언타이틀, 마운틴, 루키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스포츠신문이나 연예잡지에 연일 등 장하고 있다. 하지만 1년 뒤, 아니 6개월 뒤 이중 몇 그룹이나 살아남을 지는 아무도 모른다.


1년을 버티지 못하는 ‘10대의 우상’

우리나라 가수 가운데 1년을 넘기면 일단 성공한 축에 속한다. 한때 방송 국을 누비며 한창 잘 나가던 이들도 마치 바람 빠진 풍선처럼 하루아침에 사라지기도 하는 곳이 가요계다. 그나마 몇번 방송이라도 타고, 잠깐이지 만 이름이 알려졌다면 다행이다. 그보다 훨씬 많은 숫자가 ‘반짝’도 못 한 채 그냥 스러지고 만다.

이렇게 가수들이 하루살이로 전락하는 이유는? 그건 가수들이 스타매니저 시스템에 의해 철저하게 만들어질 뿐 자생력이 없다는 데 있다. 얼굴 잘 생기고 춤 좀 추는 애들(?)이 모여 만들어진 팀, ‘텔레비전에 몇번 나가 면 성공이 가능하다’는 안일한 생각이 가수 단명시대를 이끌고 있다. 이 들은 밑천이 바닥 나 더이상 보여줄 게 없으면 한순간에 ‘날개잃은 천사 ’가 되고 마는 ‘운명’을 타고났다. 그들을 끌어내리고 그 자리에 오르 려는 또다른 이들이 끊임없이 치고 올라오기 때문이다. 또 팬들의 환호에 취해 섣부른 스타의식을 발휘하며 기획사를 상대로 더 많은 요구를 할 때 기획사는 열심히 주판알을 두드린다. 그리고 또다른 새 팀을 만드는 경우 와 기존 팀에 더 많은 지분을 줄 때와의 손익을 따진 뒤 결단을 내린다. 가수지망생은 무궁무진하니까. 최근 R.ef, 터보 등이 기획사쪽과 마찰을 빚는 것도 이런 경우다. 이 경우 이들은 다른 곳으로 가지도 못한다. 이 른바 노비문서라는 3~5년의 가수계약서가 이들을 옥죄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획사, 방송사 관계자 등 가요 생산자들은 수명단축의 이유를 팬 들에게 돌리기도 한다. 라인기획 김광한 상무는 “가수들의 수명이 짧은 이유는 가창력, 실력이 떨어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10대 소비층들이 계 속 새로움을 요구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공급이 수요량을 훨씬 초과 하기 때문에 단명가수란 당연한 현상일지도 모른다.

국내에 1백여개가 넘는 가요기획사에는 하루에 1~2개에서 수십개씩의 데 모테이프가 늘 쇄도한다. 서태지도 <난 알아요> 데모테이프를 들고 수모 를 겪어가며 여러 기획·음반사를 쏘다녀야 했고 패닉도 데모테이프로 가 수가 된 경우이긴 하다. 최근엔 전문녹음실에서 믹싱까지 끝낸 CD로 가져 오는 지망생도 많다. 이 경우 데모CD 제작비만 몇백만원 든다. 오디션을 받겠다고 직접 찾아오는 이도 많다. 요즘엔 연령층이 점점 낮아져 중학교 2~3학년에서 초등학생들까지 기획사 사무실을 기웃거리고 있다. 대형기획 사들은 음악디렉터를 별도로 두고 데모테이프만을 전문으로 듣게 하기도 하지만 ‘시간낭비’라는 게 기획사 관계자들의 일반적인 평이다. 데모테 이프를 들고 다닌다는 자체가 이미 여러 곳을 전전했다는 반증이라는 것 이다.


수억원 투자해도 ‘대박’만 터지면…

기획사들은 오는 이들을 만나기보단 찾아나서는 쪽을 선호한다. 최근까지 댄스가수가 되는 방법으로 널리 알려졌던 장소가 나이트클럽이었다. 개성 있는 외모와 빼어난 춤실력을 갖춘 이를 선발하기 위해 매니저들이 직접 나이트클럽을 방문하고 가수지망생들은 또 매니저들이 자주 들른다는 곳 을 수소문해 찾아간다. 자연스럽게 장이 형성되는 것이다. 얼마전까지 이 태원이 주무대였다. 양현석, 현진영, 룰라, 디제이 덕 등이 이태원 ‘문 워크’ 출신이다. 최근엔 힐탑호텔 지하 ‘아발론’ 등 강남지역이 각광 받고 있다. 하지만 일부 매니저들은 이런 나이트 춤꾼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예당음향의 한 매니저는 “나이트클럽의 경우 신분을 알 수 없어 위험부담이 많다. 힘든 가수활동을 견뎌낼려면 ‘끼’ 외에도 성실성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노는 분위기에만 젖어 있는 사람일 경우 통제가 어렵 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가수가 되는 가장 흔한 루트는 역시 연줄을 통한 소개에 의해서다. 일단 가수지망생을 뽑고 나면 1년 정도의 수습기 간을 갖고 기초발성부터 가르치는 이른바 ‘스타만들기’가 시작되고 음 반작업이 진행된다. 음반을 만들 때 기획사는 음반사로부터 보통 음반 한 장당 1천5백원 정도 받는다. 또다른 형태로, 선급금 형식의 ‘마이킹’을 받는데 적게는 3천만원에서 많게는 1억원까지 받는다. 음반 제작비용은 싸게는 몇천만원에서 몇억원까지 천차만별이지만 이 ‘마이킹’ 가격을 지나치게 초과해서는 안 되는 건 당연하다.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한 기획사의 매니저가 밝힌 스타만들기 비용을 살펴보자.

“곡 비용이 1곡당 1백~2백만원. 타이틀곡은 1천만원까지. 돈을 들이면 한 앨범에 작곡비만 3천만원이다. 작사료도 곡당 70~80만원에서 3백~4백 만원. 또 녹음실 비용이 1프로(3시간30분)당 40만원인데, 한번에 처음부 터 끝까지 부를 수 있는 애들이 거의 없어 녹음실 비용이 많이 든다. 대 개 1백프로 정도 소요된다. 여기에 녹음기사(엔지니어)에게도 1프로당 1 만원씩 줘야 한다. 그리고 재킷 사진에 2백~4백만원, 뮤직비디오 1천~3천 만원, 코디네이터 비용 하루 40~50만원. 이를 다 합하면 몇억이다. 하지 만 앨범을 만든 건 시작일 뿐, 앨범 제작비가 1억이면, 홍보비도 1억을 들여야 한다는 게 이 바닥의 룰이다. 하지만 이런 앨범은 정성을 들인 것 이고 싼값에 만들 때는 5천만원 이하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대개 들인 만큼 결과가 나오게 마련이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없진 않아 요행을 노린 다. 특히 영세기획사는 앨범 3개만 연속 실패하면 문을 닫아야 하기 때문 에 비용을 무작정 들일 수 없다. 그래서 앨범비용의 대부분을 가수지망생 이 대는 경우도 있다. 신인은 3만장이면 ‘똔똔’이다. 하지만 앨범을 낸 이후 방송에 단 한번도 나오지 않고 그대로 사라지는 음반이 부지기수다. 하루에도 몇개씩의 음반이 나오지만 10만장 이상의 음반은 손에 꼽을 정 도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가요음반이 연간 5백여개다. 이중 90%가 밑지는 장사 다. 그럼에도 기획사들이 끊임없이 스타를 발굴하고 음반을 내는 이유는 ‘대박’이 터지기만 하면 수억에서 수십억원이 한꺼번에 굴러들어오기 때문이다. 마치 슬롯머신과도 같은 삶이다.


‘스타만들기’의 전형적인 작품 H.O.T

지난해 최고의 ‘대박’을 터뜨린 스타는 H.O.T(High-Five of Teenager) 다. 10대 5명으로 구성된 이 댄스그룹은 데뷔 1백여일 만에 1백만장에 육 박하는 앨범을 판매하는 돌풍을 불러일으켰다. H.O.T는 철저하게 만들어 진 스타다. 95년 가을 가수 이수만이 설립한 SM기획은 새로운 그룹을 구 상했다. 10대들의 왕성한 음반 구매력을 감안해 10대팀을 생각했다. 먼저 공개오디션, 헌팅, 소개 등 모든 경로를 총동원했다. 1차로 문희준, 강타 , 이재원 등 고교생 3명을 뽑았고 장우혁과 재미교포 토니 안을 추가해 5 명을 채웠다. 다음은 교육. 춤은 호텔무용수 출신의 박재준, 노래는 작곡 가 유영진, 의상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코디네이터였던 고경민이 맡았 다. 춤은 단순하면서도 강렬하게, 노래는 10대들의 정서에 맞게, 의상은 힙합풍에 유아적 이미지를 결합시켰다. 그리고 각각의 고유 캐릭터를 만 들었다. 남성(강타), 미소년(이재원), 반항(장우혁), 지성(토니 안), 유 머(문희준)라는 이미지를 덧입혔고 초록, 파랑, 주황, 노랑, 빨강 등 고 유색도 줬다. 그리고 10대의 관심거리인 학교폭력을 다룬 갱스터 랩 <천 사의 후예>를 타이틀곡으로 내세웠다. 사회적 이슈와 자연스럽게 맞아떨 어졌고 서태지 이후 뚜렷한 10대 우상이 없던 시기에 5명의 10대가 무대 에서 종횡무진하는 장면은 쇼프로로선 만점이었기에 이들은 텔레비전에 자주 등장할 수 있었고 이른바 ‘뜨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곡이 표절 시비에 휘말리자 H.O.T는 아무런 해명도 없이 이번엔 슬그머니 <천사의 후예>를 접고 <캔디>를 들고 나왔다. 헐렁한 운동복과 털모자, 큰 벙어리 장갑 등을 덮어쓰고 나와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앙증맞은 애기의 모습이었 다. 그들은 10대팬들의 환호에 휩싸여 있고 지금은 선배들처럼 재충전 운 운하며 잠정적인 활동중단 상태다. 이들은 2집에선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 른 모습으로 다시 나타날 것이다. 서태지가 그러했던 것처럼.

이들은 10대 최고 우상으로 우뚝 솟아 ‘서태지와 아이들’에 비유되기도 하지만 ‘서태지와 아이들’의 경우 서태지 본인이 팀을 조직하고 곡을 만들고 자신들의 이미지를 창출한 것과 비교하면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다 . 이들이 언제까지 가수활동을 할진 모르지만 이들은 한낱 만들어진 부속 인일 뿐 개체로서는 존립이 불가능한 진짜 우상(偶像)일 뿐이다. 시험관 아기나 복제인간 같은 이들의 재롱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팔에 끈이 달린 꼭두각시 또는 무뇌아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대체인력 무궁무진… 한물 가면 회복 불능

아무리 뜨는 가수라도 스캔들이나 표절시비 등에 휘말리면 기획사는 활동 을 중단시킨다. 기획사는 이를 대비해 항상 스페어팀을 준비해놓고 있다. 언제든지 대체가 가능한 것이다. 일단 한물 간 가수가 재기에 성공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특히 실력없이 만들어진 스타일 경우 그 확률은 0%에 가깝다. 음악적 자질이 있다면 제작자나 기획자로 나서기도 하지만 그런 능력이 없으면 주변만 빙빙 돌 뿐 ‘이너 서클’로 들어오지 못하는 불쌍 한 신세가 되고 만다. 그렇다고 가수 이전의 생활로 돌아가기도 쉽지 않 다. 마약과도 같은 무대를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는 것이다. 특히 외모가 중요한 요소인 여자가수들의 경우 그 비참함은 더하다.

이런 현상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하다. 10대들은 누구나 연예 인을 꿈꾸고 자신의 실력과는 상관없이 문을 두드린다. 그들의 생각은 간 단하다. “쟤는 나보다 못한데 떴다”다. 실력이 아닌 요행수가 점점 퍼 져나가고, 그러니 인기를 못 끌 때도 자신의 실력을 탓하기보단 운때를 탓하게 마련이다.

여기에 또하나 립싱크 문화가 우리 가요계를 더욱 파행적으로 만든다. 립 싱크가 없었다면 단명가수도 없었을 것이다. 입만 벙긋거릴 수밖에 없는 그들이 가련하기도 하지만 이런 립싱크 문화는 우리 사회에 거짓문화를 퍼뜨리는 선구자 구실을 한다. 노래도 부르지 않는데 헤드마이크를 쓴 이 유는 도대체 뭔지. 립싱크를 한다는 건지, 안 한다는 건지. ‘눈 가리고 아웅’식의 허위와 위선에 우린 어느새 익숙해져 버리고 말았다. 가요계 엔 이런 ‘허리케인 블루’가 넘쳐난다.

외국의 경우 가수는 음반을 내면 곧바로 라이브에 들어간다. 팬들은 음반 과 뮤직비디오를 통해 노래를 즐기고 라이브 무대에서 그들과 만난다. 실 전경험을 통해 배출되는 마이클 잭슨, 마돈나, 머라이어 캐리, 휘트니 휴 스턴을 우리 가요계에선 쉽게 찾아볼 수 없다.


립싱크 사라져야 진정한 스타 탄생

대중음악평론가들은 우리 가요계의 이런 파행상의 해결책을 결국 라이브 무대 활성화에서 찾는다. 라이브 무대가 활성화되면 자연 실력있는 가수 만이 살아남을 수 있고 장르의 다양화도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다는 것 이다. 최근 립싱크 문화에 대한 배격바람이 거세지면서 라이브 무대가 새 롭게 각광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얼마전 혜성처럼 등장한 신인 양파, 리 아 등이 다른 여자가수들과는 달리 상당한 가창력을 지녔다는 사실이 이 를 뒷받침한다.

앞으로 우리 가요계에서 언제쯤 가수다운 가수가 나오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끝난다, 끝난다’하면서도 텔레비전을 장악하고 있는 게 댄스 뮤직이고, 만들어진 스타들이었기 때문이다. 가수는 가수다워야 한다. 노 래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가수는 아무나 하는 건 아니니까. 무대는 노래 방이 아니다.

권태호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3월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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