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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경의 우리맛기행 |
1997년03월27일 제 1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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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음식 중 봄의 한정식만큼 풍미 가득한 상차림도 드물다. 파란 들나 물과 산채를 비롯해 제철 어패류와 해초류가 상에 꽉 차고 넘치도록 담겨 나오는 모습이란 환상적이기까지 하다. 말 그대로 계절의 성찬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봄이 한창 무르익는 5월 초순까지는 그 내용이 계절만큼이나 화려하게 이어진다.
흰 껍질에 노란 조갯살이 꽃처럼 수놓아지는 향긋한 쑥국, 초록 바탕에 하얀 뿌리가 도드라지는 냉이무침, 달래가 들어가 산뜻한 맛의 된장찌개, 윤기가 반지르르 도는 미나리생채, 여기에 취나물과 얼레지국까지 곁들이 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이다.
상차림의 내용은 그 고장의 지세와 특산물, 관습이나 지역 인심에 따라서 도 달라진다. 해안에 접한 곳은 자연히 상 한가운데 싱싱한 회나 매운탕 같은 것이 오르고, 내륙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육회나 갈비구이 또는 더덕 구이나 전골 등이 상의 중심을 이룬다.
그래서 그 중간에 위치한 도회지를 중심으로 이런 특성들을 균형있게 살 려내 한정식이 크게 뿌리내린 곳들이 있다. 호남지방의 해남과 전주, 영 남의 진주와 양산 등이 그렇고, 이곳 대부분은 지금 오찬이 무려 30~40가 지 이상 오를 정도다.
이러한 상차림을 놓고 최근 이런저런 문제점들을 들고 나오기도 한다. 그 래서 한정식 전문집들에서도 방법을 찾아냈다. 예전에 머릿수로 가격을 매기던 것에서 벗어나 4인기준으로 한상에 2만5천원에서 8만원까지 대부 분 상값으로 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전화로 미리 값을 확인한 뒤, 한 두명 더 끼어가면 밥만 몇 그릇 더 추가하면 아까운 찬을 버리지 않고 좀 더 현실적인 값으로 맛을 즐길 수 있다.
제대로 차린 봄의 한정식은 그 가짓수만큼이나 다양한 맛과 영양가가 실 로 손색없는 계절식이다. 특히 들나물인 냉이와 쑥, 달래 그리고 미나리 와 하우스를 벗어난 봄 야채 등은 생기 가득한 생명체들이다. ‘식(食)은 곧 약(藥)’이라는 말을 실감할 만하다.
봄이면 이유없이 피곤해지고, 입맛이 없는 것을 가리켜 ‘봄을 탄다’고 하는데, 이럴 때 지체 말고 가족을 동반하거나 함께 둘러앉아 즐거운 사 람들끼리 잘 차리는 한정식집을 찾아가면 된다.
이름난 영호남부터 살펴보면 맛고장으로 알려진 강진의 명동식당(0638-33 -2147)은 강진만 갯벌의 다양한 어패류와 냉이국, 달래무침이 곁들여 맛 을 돋운다. 전주의 전라회관(0652-88-3033)은 30가지가 넘는 상차림에 5~ 6가지의 봄나물과 봄 조개가 골고루 나온다. 또 정읍 내장산 내의 맛집들 도 봄내음이 가득하다. 특히 태극회관(0681-31-8145)은 ‘고수’를 생으 로 무쳐내 특색있고, 순창으로 넘어가 새집(0674-53-2271)에서는 겨우내 익은 장아찌와 고추장이 입맛을 한결 더 돋워준다. 남원 지산장(0671-625 -2294)도 상 한가운데 한우 불고기가 푸짐하게 얹히고, 쑥국을 끓일 때 쑥에 가루를 입혀 국물이 더욱 짙고 깊은 맛을 내 입맛이 새롭다.
영남 역시 해안가에 치우쳐 있는 고성의 성은정(0558-74-2870)은 남해바 다의 싱싱한 횟감들이 한상 가득 나오는데, 반주를 한잔 걸친 뒤에 봄나 물이 들어간 된장찌개를 곁들인 식사가 나와 상을 마무리한다. 반대로 내 륙인 팔공산 동화사 앞 산채식당(053-985-4082)은 30여 가지의 찬이 거의 주변 산야에서 나는 푸성귀로, 그중 향긋한 미나리생채가 일품이다.
중부내륙에 들어와 보은의 신라식당(0433-44-2869)은 산간 내륙답게 봄나 물 가짓수가 더욱 다채롭다. 그 밖에 동해안의 강릉 옛날집(0391-646-862 4)은 해안가로 동해의 명물인 새치구이가 빠지지 않고, 들나물과 햇미역 등 생기가 가득 넘친다.
대관령을 넘어 진부의 부일식당(0374-35-7232)을 찾으면 아직은 묵나물이 주축을 이루지만, 4월로 접어들면 두릅이며 산채, 들나물이 파란채로 오 른다고 한다.
서울에서 가까운 양평군 일대도 조선시대부터 서울 장안에 알려진 나물의 명소다. 그중 용문산 산채는 특산물로 꼽힌다. 매표소 앞 용문산식당(033 8-73-3433)의 상차림은 10여 가지 햇나물과 쌈이 곁들여져 더욱 먹을 만 하다.
온몸의 활력 돋우는 봄나물
봄나물이 계절식으로 뛰어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맛과 분위 기에서 냉이와 달래, 쑥은 우리 정서 속에 봄을 상징하는 먹거리로 소박 하기 이를 데 없는 자연식품들이다. 또 보기만 해도 봄을 느끼게 되며, 독특한 향은 입맛과 위액 분비를 자극해 소화력을 회생시켜준다. 영양가 에서도 비타민A와 C가 무엇보다 많아 몸의 활력소가 되어준다. 그 밖에 단백질과 철분, 칼슘 등이 충분히 들어 있어 겨울 동안 흐트러졌던 영양 의 균형을 잡아주고,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해주는 묘약과도 같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3월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