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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
1997년03월27일 제 1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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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생활 30년 만에 이런 끔찍한 대화를 나누게 될 줄이야.
“우리 큰 애 하나만 낳아 복제를 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둘째가 첫 째보다 성적이 부족해서 속은 좀 썩혔지만, 판단력 좋고 사근사근한 게 뚱한 제 형에다 대면 둘째가 꼭 있었어야지.” “그건 그래, 복제품보다 는 다양한 게 더 낫지.”
짧은 대화였다. 그렇지만 도대체 이런 생각을 잠시라도 해봤다는 사실 자 체가 한동안 꺼림칙하게 머리에 남았다. 둘째에게 공연히 미안했고.
영국에서 양을 복제한 뉴스는 인간복제의 가능성을 확실하게 해주면서, B 오늘을 사는 지구촌 사람들에게 무서운 충격을 던지고 있다. 앞으로 어떤 재앙이 닥치고, 그 재앙을 피하는 길은 무엇인가를 둘러싸고 뜨거운 논쟁 이 일고 있다.
인간복제까지 갈 것도 없다. 이제는 문명사회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 는 인공수정만 해도 별의별 문제를 다 일으키고 있다. 다른 남자의 정자 를 이용하여 인공수정하는 경우, 아버지가 누구냐 하는 문제가 그 시발이 다. 또다른 여자의 난자를 이용하여 아이를 낳은 경우, 예컨대 남편의 정 자를 올케에게 인공수정으로 착상시켜 아이를 낳을 경우 어머니는 처인가 외숙모인가. 건강하고 잘 생긴 운동선수의 정자와 예쁜 여자 탤런트의 난 자와의 체외수정란을 제삼의 대리모에게 착상시켜 아이를 낳아 돈 많은 어떤 부부가 기른다면 도대체 부모는 누구인가. 법률적으로 생물학적으로 본다면 기르는 부모, 정자난자를 제공한 운동선수, 탤런트, 대리모 등도 모두 부모임을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인공수정병원과 정자제공자가 한정되는 상황에서는 여기를 이용하여 출생 한 인공수정아들 사이에서 형제자매간의 근친혼마저 일어날 수 있게 된다 . 또 생전에 정자은행에 정자를 냉동 예치한 사람이 죽은 지 10년 뒤에, 미망인이 그 정자를 이용하여 아이를 낳을 수도 있다. 남편 죽은 지 10년 뒤에 남편아이를 낳은 과부가 있다니. 그뿐인가. 아이 못 낳는 딸을 위하 여 어머니가 대리모노릇을 했다면, 그 어머니는 낳은 아이의 어머니인가 할머니인가.
이처럼 이제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인공수정만으로도 그 뒤치다꺼리에 법률가들의 머리가 혼돈스러울 지경이다. 그리고 너무나 미묘한 사례가 많아서 나라마다 조금씩 다른 처방들을 하고 있다.
인공수정이 이런 실정인데 하물며 복제인간에 들어서면 엄청나게 복잡해 진다. 복잡할 정도가 아니라 현존하는 그 ‘관계’들을 해결할 방법이 없 을 것이다. 예컨대 자신을 복제한다면 ‘그것’은 자신인가, 자식인가, 제3의 타인인가. 촌수는 어떻게 되는가. ‘그것’을 부양해야 할 의무는 누구에게 있는 것인가. 인간은 ‘출생’에 의하여 권리능력자가 되고 친 지관계 등이 인정되는 것인데 복제를 ‘출생’으로 볼 수 있는가. 법률상 ‘출생’으로 인정되지 않는 ‘그것’을 살해했다면 살인죄가 되는가. 마 음에 쏙 드는 큰아들을 복제해서 아들을 하나 더 만들었다면 ‘그것’은 큰아들인가, 작은아들인가, 또 이들은 형제인가.
이쯤 생각해보고도 머리가 복잡해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단연 존 경감이다. 윤리가 어떻고 하나님의 섭리를 거스르는 일이 어떻고를 따지 기 전에 우선 내 가족의 문제로 끌어들여 판단해 본다면 답이 나오게 마 련이다. 처음부터 ‘그것’에 X표를 크게 그어 버려야 한다. 양이나 원숭 이까지만 허용하고, 인간은 안 된다 어쩌구해서는 필경은 인간복제까지 이르고 말 것이다. 복제실험 덕에 우유를 좀더 싸게 먹고, 장기를 이식하 여 좀더 오래 산다고 할지라도, 근원적인 인류의 재앙에 비길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성숙/ 숭실대 법과대학장
© 한겨레신문사 1997년03월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