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
1997년03월27일 제 150호 한겨레21

박찬호·선동열의 97시즌 승부수

(사진/일본진출 2년째를 맞는 한국야구의 자존심 선동열은 나고야의 태양으로 떠오를 것인가. 그는 투구폼을 바꾸는 등 재기에 절치부심하고 있다.)

“올 시즌엔 더 잘 할 수 있을까?”

본격적인 국내외 프로야구 시즌 개막을 앞두고, 야구팬들의 시선이 벌써 부터 밖으로 몰리고 있다. 한국 최초의 메이저리거인 박찬호(24·LA 다저 스)와 ‘국보급 투수’라는 선동열(34·주니치 드래곤즈)의 올 시즌 활약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야구 본고장인 미국과 일본에서 지난해 박찬호와 선동열의 활약은 그 성 패여부에 관계없이 ‘우물안의 개구리’격인 국내 야구팬들의 지평을 넓 혀주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한국야구의 자존심이라는 선동열의 부진은 팬들을 무척이나 실망시켰고, 선발 진입의 목전에서 끝내 중간계투요원에 머무른 박찬호는 더욱 팬들을 안타깝게 했다.

한국야구의 현주소와 잠재력을 검증받는 계기를 만들고 있는 이들은 과연 올 시즌 지난해의 부진을 털고 일어나, 야구 선진국의 높은 장벽을 뚫을 수 있을 것인가. 팬들로서는 국내경기 못지 않게 궁금하기 그지 없는 사 항이다.


못다한 투혼 발휘하는 ‘국보급 투수’

일본 진출 2년째를 맞은 선동열이 97시즌을 맞는 감회는 남다르다. 지난 해 구겨진 자존심을 어떻게든 만회해야만 할 처지이기 때문이다. 그는 지 난해보다 훨씬 많은 훈련을 소화하면서 재기를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다. 선동열은 평소 자신의 일정보다 한달 가량 빠르게 훈련에 돌입했다. 일본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어를 사용하는 등 좋은 성적을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한다는 각오로 임하고 있다. 그가 훈련에 몰두하고 있는 경기장 에는 지난해와 달리 일본 기자들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그때와 달라 진 선동열의 위상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선동열은 오키나와 전지훈련에서 커브와 ‘퀵모션’(Quick Motion)을 배 우느라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라스트’를 되풀이해 외치는 코치의 요 구에도 묵묵히 공을 던지곤 한다. 지난해 호시노 감독의 훈련일정이 마음 에 들지 않아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던 모습과는 전혀 딴판이다. 올해는 사실 입이 열개라도 할말이 없는 셈이다.

올시즌을 앞두고 있는 선동열의 3월 현재 체중은 86kg 정도. 국내에 있을 때의 94kg에 비해 8kg이나 줄어들어 홀쭉해졌다. 시즌이 시작되면 2kg은 더 빠질 것이라는 게 그의 말이다. 머리도 햇볕에 변색돼 노랗게 됐다. 스스로의 평가대로 선동열은 일단 지난 95년 수준의 구위를 회복한 것으 로 보인다. “일본 타자들은 투스트라이크 이후 공을 걷어내는 기술이 좋 다. 한국 타자보다는 잔기술이 나은 것은 분명하다.” 그는 이렇게 평가 하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직구와 슬라이더 위주의 단조로운 구질에서 벗어나 커브를 새로 익히고 완급 조절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 일 본에서도 통하는 포크볼은 손가락이 굵고 짧아 쉽지 않다. 또 국내에서 통하던 투구자세도 다른 잣대를 갖고 있는 일본에서는 제동이 걸림에 따 라 투구폼을 고쳐 퀵모션을 익히고 있다.

선동열은 지난 3월14일 벌어진 일본 햄과의 시범경기서 7 대 5로 앞서던 9회 등판해 무안타 무실점으로 막아 가능성을 보였다. 이에 앞서 9일과 1 0일에도 두 경기연속 1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았다. ‘퀵모션’으로 던 지지는 않았지만 출발은 좋은 셈이다. 그러나 여전히 몸쪽보다는 바깥쪽 으로 승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선동열이 국내에서만큼의 구위를 뽐낸다고 해서 성공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그만큼 한-일간의 수준차는 있는 셈이다. 그러나 “올해가 선수 생활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뛴다”는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자신감 을 가지고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뽑아내는 수밖에 없다.


“메이저리그서 대성 가능성 보인다”

(사진/한국 최초의 메이저리거인 박찬호는 현재 둘쭉날쭉했던 제구력을 보완해 선발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지난 96시즌 전만 해도 메이저리그 진입이 목표였던 박찬호는 한해 사이 에 훌쩍 커버렸다. 지난 시즌 내내 메이저리그에 머물러 1차목표를 달성 한 그는 올해 선발진입을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다저스 구단 내 사정은 박찬호에게 상당히 유리하다. 선발투수의 한명인 톰 캔디오티가 다저스를 떠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캔디오 티가 빠진다고 해서 그 기회가 박찬호에게 굴러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 난해 다저스에서 중간계투로 활약을 보인 왼손잡이 마크 거드리가 현재 강력한 맞수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삼진만큼이나 많은 볼넷을 허용했던 박찬호는 올해엔 눈에 띄게 그 약점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그동안 시범경기에서 팀내 방어율 1위를 기록했던 박찬호는 3월13일 플로리다 마린스와 경기서 2와 1/3이닝 동안 2점홈런을 포함해 5안타 3실점을 내줘 여전히 제구력이 변수임을 드러냈 다.

1~2이닝만 던지는 중간계투가 아니라 5회까지 책임지는 선발로 뛸 경우 타자들은 박찬호의 빠른 공에 익숙해질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문제는 제 구력과 완급조절이다.

박찬호는 그동안 5일 간격으로 등판하는 선발투수진에 진입했을 경우에 대비해 체력훈련을 충실히 해왔다. 다저스구단이 그를 스카우트할 당시 튼튼한 하체를 보고 성장 가능성을 점쳤을 정도로 그는 체력적인 바탕을 갖췄다.

박찬호는 그러나 아직도 체력훈련에 커다란 비중을 두고 있다. 플로리다 전지훈련에서도 하루 세차례씩 달리기를 했다. 아침 일찍 개인훈련과 아 침식사 이후 팀훈련, 저녁 일과 뒤 개인훈련 등으로 하루 10여km를 달렸 다. 국내에서도 시차가 존재하는 미국에서 꾸준한 성적의 바탕은 체력에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야구 전문가들은 박찬호의 장래성에 대해 낙관한다. “박찬호는 자질이 뛰어나다. 올해 선발 진입여부와 관계없이 언젠가는 메이저리그에서 큰 활약을 펼칠 것”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이런 진단은 미국에서도 내려지고 있다. 미국 메이저리그의 한 스카우터 는 “박찬호의 구질은 그 어떤 투수의 것보다 좋다”며 “그의 선발투수 진 합류는 오로지 시간문제”라고 평가한다.

한편 일본 최고 명문 프로야구팀인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진출한 조성민은 아직까지 1군 진입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국내에서 최고구속 1백53km까지 기록하며 아마를 대표하는 투수로 평가받았던 그는 지난해 입단 뒤 아직 까지도 이렇다 할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조성민은 기본적인 투구폼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을 받은 데다가, 프로선 수 생활을 감당못할 체력이라는 진단을 받아 2군에서 한해를 보내야 했다 . 투구폼도 여러 차례 수술을 거쳐 새롭게 탈바꿈해야만 했다. 그도 빠른 공을 갖고 있는 투수들의 공통점인 제구력에서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조성민 ‘1군 진입’ 제구력에 달려 있다

올해 일본 프로야구 외국인선수 등록규정이 종전 6월30일까지 1회만 허용 하던 것이 매달 1회로 바뀌어, 조성민은 시즌 중에라도 언제든지 1군에 진입할 기회를 갖게 됐다. 그럼에도 요미우리 구단에는 일류 선수들이 즐 비한 만큼 여기에서 살아 남으려면 넘어야 할 벽이 아직 많다.

선동열의 경우 한국야구가 생산한 완성품으로, 변신이 어렵다면 박찬호와 조성민은 미완성으로 건너가 각각 야구 본고장인 미국과 우리보다 한단계 앞선 일본야구에 의해 새롭게 재생산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올 시즌 이들의 활약 여부는 이들이 한국야구의 자존심과 꿈나무라는 점 에서, 지난해처럼 국내 프로야구 못지 않게 시즌 내내 팬들의 관심을 받 기에 충분하다.

이찬영 기자/ 한겨레 스포츠레저부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3월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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