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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1997년03월27일 제 1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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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붙잡힌 인터걸들. 지난해 10월 관광비자로 입국한 뒤 내국인들을 상대로 윤락행위를 해오다 검거된 러시아 출신 여대생들이 얼굴을 가리고 있다.)
부산 사하구 괴정동 ㅇ성인나이트클럽은 밤마다 불야성을 이룬다. 평일에 도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오후 7시만 넘으면 몰려드는 단체손님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다. 불경기라 술집 장사도 안 된다는 세간의 말이 무색할 정도다. 이런 호황의 마술은 클럽 앞에서부터 시작한다. 클럽 앞에는 ‘ 러시아 국립무용단, 매일 6회 연속공연’이라는 입간판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러시아 국립무용단?
클럽 안에 들어서면 화려한 춤판이 펼쳐진다. 3백여평에 이르는 홀의 한 복판 무대에서 형형색색의 수영복만 걸친 러시아 무희들이 군무를 춘다. 현란한 조명 아래 열정적으로 몸을 흔든다. 고고에서 디스코, 마카레나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몸짓이 무대를 장식한다. 금발의 이국 아가씨들이 동 양의 한 항구에서 춤을 파는 것이다. 율동은 어설프고, 조잡하지만 열기 는 뜨겁다.
격렬한 군무가 끝나면 이번엔 하얀 이브닝 가운을 입은 러시아 무희들이 무대에 오른다. 이전의 무희들에 비해 키도 크고 몸매도 풍만하다. 블루 스와 발라드풍의 조용한 음악에 맞춰 몸을 흐느적댄다. 공연 도중 갑자기 DJ(디스크 자키)가 오늘 생일을 맞은 손님의 이름을 외치자, 손님이 있는 테이블을 향해 나란히 서서 캉캉춤을 춘다. 무희들은 일제히 손으로 키스 를 전한다.
누구도 그들을 러시아 국립무용단이라고 믿지 않는다. 국내 여느 성인나 이트클럽에서 하는 쇼에서 사람만 바뀐 꼴이다. 춤 자체는 오히려 세련미 가 떨어진다. 그래도 손님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휘파람을 불어댄다 한 손 님은 “러시아 여자를 보러왔지, 춤을 보러온 게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 한다.
부산 유흥가에 러시아 여성들의 바람이 거세다. 처음엔 선원들을 중심으 로 이른바 보따리장수가 상륙하더니, 최근엔 유흥가에 뛰어드는 여성들이 부쩍 늘었다. 웬만한 클럽에는 그들이 한두명씩 꼭 끼어 있다. 이들은 무 대에서 춤을 추거나, 술을 접대하면서 돈을 번다. 한 러시아 무희는 “돈 을 벌러 한국에 왔다”고 거리낌없이 말한다. 한국 유흥가의 세계화가 이 뤄지고 있는 셈이다.
한국인 업주들이 그들에게 단순히 댄서의 구실을 기대하는 게 아님은 분 명하다. 이들을 고용한 대형 클럽에 들어서면 테이블 곳곳에서 컴컴한 조 명 아래 한국인들과 어울리는 러시아 무희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짧은 영 어에 손짓을 섞어 펼쳐지는 이들의 술자리 대화는 그 자체로 진풍경이다. 일부 손님들은 무희들과 함께 무대 위로 올라가 춤을 추기도 한다. “언 제든지 마음에 드는 아가씨가 있으면 웨이터에게 말씀만 하십시오. 즐거 운 시간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쩌렁쩌렁한 록 음악을 뚫고 들려오는 DJ의 목소리가 은근하다.
밤 10시가 넘어서면서 클럽 웨이터들의 발걸음이 바빠진다. 취기가 오른 손님들이 곳곳에서 러시아 여성들을 불러대기 때문이다. 2교대로 공연되 는 쇼가 끝날 때마다 무대에서 내려오는 러시아 여성들의 손을 잡아끄는 손님들도 많다. “아가씨를 부르려면 1인당 4만원을 주셔야 합니다. 팁 2 만원과 주스값 2만원이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몇명을 원하십니까?” 웨이 터들의 호객행위가 절정에 이른다. 일부 손님들은 무슨 주스값이 2만원씩 이나 하느냐며 다소 의아해하지만 곧바로 수그러든다. 대부분의 손님들은 “러시아 미녀와 술을 마시는 데 그 정도 비용은 비싼 게 아니다”고 말 한다.
러시아 여성들을 고용한 업소는 보통 10여명이 들어갈 수 있는 대형 룸을 10여개 씩 갖추고 있다. 3~4명이 들어가는 특실도 있지만, 지배인이나 고 참 웨이터와 교감이 있지 않으면 사용이 힘들다. 일부 손님들은 이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갈 수 있느냐고 묻기도 한다. 웨이터들은 이 대목에선 손님들이 아무리 많은 팁을 건네도 정중하게 “그것만은 안 된다”며 거 절한다. 외국인 매춘이 적발될 경우 자칫 영업중단 내지 사법처리 등의 불이익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한 업소 주인은 “러시아 무희들은 모두 서울의 한 기획사가 현지에서 모집한 무용수들이며, 취업비자가 허용하는 기간 동안 단체행동을 하기 때문에 개인적인 매춘행위는 절대 있을 수 없 다”고 강조한다.
과연 매춘을 포기할까
하지만 이들의 출입국 동향을 파악하고 있는 경찰이나 안기부의 분석은 이와 다르다. 러시아 여성들은 대부분 관광비자로 입국하고 있으며, 생계 를 위해 이국땅에 온 만큼 짧은 기간에 큰돈을 벌 수 있는 매춘을 포기하 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한 경찰 간부는 “러시아 여성들이 유흥업소를 통 해 매춘을 한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비밀”이라고까지 단언한다. 다만 워낙 교묘히 거래가 이뤄지기 때문에 현장을 붙잡지 못할 뿐이라는 것이 다. 실제 한 클럽 종업원은 “인력관리상 외출을 못하게 하지만 단골이나 큰 손님에 한해서는 예외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한다. 이들에겐 4 백달러 가량의 화대가 주어진다고 한다.
러시아 여성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문제는 단순치 않다. 그저 술집이나 클 럽에서 춤추고 팁을 챙기거나, 매춘을 한다는 차원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특정한 구역에서 주도권을 장악해가고 있다. 인력의 신진대 사도 활발하다.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들이 드나든다. 지금까지 한국여성 들이 유흥가에서 차지하고 있던 자리를 빠르게 잠식해가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의 블랙나이트가 부산항을 덮어간다.
부산=최익림 기자/ 한겨레 사회2부
© 한겨레신문사 1997년03월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