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1997년03월27일 제 150호 한겨레21

‘수입여성’ 문제 심각해진다

외국여성들이 몰려오고 있다. 공장을 비롯해 식당, 가정에 이르기까지 그 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 드물다. 그들은 그곳에서 노동자로, 종업원 으로, 파출부로 일한다. 최근엔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상품화하는 곳으로 진출하는 양상이 뚜렷하다. 기지촌에서 유흥가, 마침내 밤거리에까지 세 력을 뻗쳤다. 그들은 그곳에서 댄서로, 쇼걸로, 매춘부로 통한다. 광고나 영화, 가요계에서도 그들의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몇몇을 제외하 곤 싸구려 모델, 배우라는 딱지가 붙는다. 직업적 능력보다는 저렴하게 동원할 수 있는 육체적 매력이 그들의 상표다.

우리나라의 외국인노동자는 20만여명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30% 가량 이 여성이다. 6만여명에 이르는 숫자다. 20대 초반에서 30대 중반까지의 연령층이 주를 이룬다. 이 연령층만 떼놓고 보면 여성의 비율이 남성의 비율과 거의 맞먹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애초 있어야 할 곳을 벗어난 이 들이나, 관광목적으로 들어왔다 그냥 눌러앉은 이들까지 치면 어디까지 숫자가 불어날지도 모른다.

어느 나라고 외국여성이 일할 수 있는 곳은 한정돼 있다. 그들이 대부분 사회의 밑바닥을 떠돌며, 성과 관련된 직종에 몰리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일본이 그런 경우다. 일본은 80년대 들어 필리핀 여성들이 댄서나 가수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80년대 후반부터는 타이의 여성들이 홍등가로 흘러들 었다. 지금은 러시아나 동유럽의 여성들이 거리를 배회한다.

우리라고 예외는 아니다. 기지촌은 이미 필리핀 여성들에게 잠식당하고 있다. 기지촌이 우리 사회의 여성들에게 가장 낮은 곳으로 통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그들이 밑바닥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러시아 여성 들의 진출도 눈에 띈다. 이들 은 클럽의 댄서로, 거리의 매춘부로 은밀히 세력을 넓히고 있다. 광고나 영화, 가요계에 외국여성이 등장한 것은 어 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국교회여성연합회 외국인여성노동자 상담소 김 낙경(32) 간사는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면서, 하층에 생긴 공백을 외국여성들이 메우고 있다”고 말한다.

여러 요인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크게 보면 외국노동자들이 한국을 찾는 까닭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들은 돈을 벌고자 하고, 우리는 싼값으로 그들을 부리려 한다. 실제 한국의 외국여성들은 한결같이 “돈을 벌러 왔 다”고 하고, 그들을 고용한 업주들은 “임금이 싸다”고 말한다. 외국여 성들은 여기에 여성으로서의 문제까지 껴안아야 한다. 매춘, 낙태, 혼혈 아 출산 등의 문제가 겹친다.

그러나 이런 실태를 보여줄 구체적인 자료를 찾기란 힘들다. 사실 지금까 지 외국여성의 문제는 관심권 밖에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외국노동자라 는 틀 속에 묻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이들의 실태를 파악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김씨는 “기지촌을 중심 으로 현재 외국여성의 실태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말한다.

지난해 8월 서울에서 열린 제2차 동아시아여성포럼에서 일본의 시민활동 가 마키시타 노리코는 이렇게 지적했다. “현재 일본에는 15만~20만명의 외국여성노동자가 들어와 있다. 그들은 압도적으로 성 관련 산업에 몰려 있다. 이처럼 성적으로 외국여성을 필요로 하는 배경에는 사회의 가부장 적 전통, 매춘을 용인하는 풍토, 남성의 장시간 노동 등이 깔려 있다. 외 국여성들은 이런 사회적 스트레스의 배출구 구실을 한다.” 우리 사회도 그들을 필요로 할 만한 조건을 이미 갖추고 있는 것이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3월27일


커버스토리 포커스 문화시대 특집 지난호 전체보기 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