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경제
1997년03월27일 제 150호 한겨레21

경기부양, 만능키 아니다

유진수/ 숙명여대 교수·경제학

우리나라 경제가 불황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다. 1996년도 무역수지 적자 는 2백6억달러에 달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현재 실업률은 2.4%대를 기록하고 있으며, 기업들의 시설투자도 최근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심지 어는 국내 기업 여건이 나쁘다고 보고 생산기지를 해외로 이전시키는 기 업들도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중소기업뿐만 아니라 우성, 한보 등 30 대 안에 드는 굵직굵직한 대규모 기업들마저 쓰러지면서 그 부도 여파가 경제 전체를 멍들게 하고 있다.


기술개발없이 투기열중했던 재벌

이와 같이 악화된 경제상황을 바탕으로 최근 우리나라 경제에 대한 비관 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현재의 경제적 어려움을 총체적 위기로 규 정하는가 하면, 경제예측기관들은 올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대폭적으로 하 향 수정하고 나섰다. 경제공황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는 기업들도 있고, 심지어는 경상수지 적자의 확대 및 경제에 대한 불안감 증폭으로 인해 몇 년 전의 멕시코사태와 비슷한 외화의 대량유출 사태를 걱정하는 목소리까 지 일부에서 들리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따라 인위적인 경기부양책에 대한 기업들의 요구도 거세지고 있다. 심지어는 지하자금을 양성화하여 경제회복을 위한 산업자본으로 활용하자 는 금융실명제 보완론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과연 경기부양에 경제정책의 초점이 맞추어져야 할지에 대한 해답 은 현재 경제난국의 근본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진지하게 생각해본 뒤 나와야 한다. 지금의 경제적 어려움이 단순한 경기순환에 의한 것이라면 인위적인 경기부양책이 경제를 위해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의 경제적 어려움이 기업의 국제경쟁력 약화와 우리 경제구조의 후진성에 기 인하는 것이라면, 근본원인에 대한 해결 없는 경기부양책은 우리 경제의 체질을 약화시키는 부작용만 낳게 돼 있다.

기업의 국제경쟁력 부재 등 우리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 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와 같은 문제들이 또다시 부각되고 있다면, 그것 은 많은 경제주체들이 지나치게 조급하여 근본적인 문제해결은 도외시한 채 사소한 문제의 해결에만 관심을 가져온 때문은 아닐까?

과거 기업들은 선진국의 문턱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구조조정과 기술개 발을 통한 국제경쟁력 강화보다는 단기적인 이익극대화를 위한 문어발식 확장이나 재테크, 부동산투자 등에 열중했던 것이 사실이다. 정부도 경제 정책의 선진화를 주장하면서도 실제로는 장기적인 정책목표의 부재로 인 한 경제정책의 일관성 결여라는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규제 완화의 경우도 규제완화가 지속적이고 일관성 있게 이루어지기보다는 몇 천건의 규제완화를 몇달 안에 해치우고 마는 한번의 정치적 쇼로 전락하 고 말았던 면이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장기적 안목에서 경제활동을

국민들도 벼락부자, 일확천금의 꿈에 사로잡혀 성실히 일해서 돈을 벌기 보다는 쉽게 돈을 버는 데 관심을 가져온 것이 사실이다. 부동산투기, 도 박의 만연 등 그 예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으며, 뇌물 등 부패가 사회적 으로 만연하는 것도 바로 이와 같은 조급증 때문일 수 있다. 국회에서 법 안 날치기 통과나 물리적 충돌이 번번히 일어나고 있는 것 또한 인내심이 요구되는 대화보다는 무조건 빨리 해치우자는 급한 마음 때문이기도 한 것이다.

경제난국의 한가운데 서 있는 지금, 이 어려움을 기회로 하여 한층 더 성 숙한 경제를 만들기 위해 정부, 기업, 국민 모두가 과거의 조급증에서 벗 어나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경제활동에 임하기를 기대해 본다. 정부는 단 기적이고 대증요법적인 정책에서 벗어나 장기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일관 성 있는 정책을 추구하기를 기대해 본다. 금융개혁 등 앞으로 이루어질 개혁들은 깜짝쇼가 아닌 지속적인 정책으로 추진되기를 기대해 본다. 기 업은 재테크 등 단기적인 이익극대화에서 벗어나 미래지향적인 안목을 갖 고 21세기 이후에도 국제경쟁력을 갖고 살아남을 수 있는 분야를 찾아 지 금부터 준비하기를 기대해 본다. 일반 국민들도 벼락부자의 꿈에서 벗어 나 작은 것부터 절약하며 저축하는 자세를 갖기를 기대해 본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3월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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