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적 |
1997년03월27일 제 150호
|
|---|
(사진/`한겨레21'은 3년전부터 김헌철씨와 외롭게 싸워왔다. 현철씨의 이권개입 의혹과 박태중씨 미스터리 등은 `한겨레21' 94년부터 꾸준히 보도했던 내용이다. 당시 침묵했던 상당수 언론들은 지금 와서야 이것을 새삼스러운 일인 양 재탕하고 있는 셈이다.)
“아무리 그가 개혁의 밀사를 자처하더라도 성역시되고 있는 현실을 제대 로 설명할 수 없다. 성역에 항상 따라붙는 각종 추문과 의혹도 용납받을 수 없다. 특히 언론이나 국회의원에게 침묵을 요구하는 행위는 납득할 수 없다. 바로 이런 이유로 그는 불행하게도 6공의 황태자 박철언 의원에 비 유되곤 한다. 신화 속에서 밀납의 날개를 달고 태양을 향해 돌진했던 이 카루스가 이제 박 의원의 상표가 돼버린 현실은 현철씨를 포함해 현 정권 담당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94년 3월24일자 <한겨레21> 창간호 특집기사‘김현철은 새정부 최후의 성역인가’는 이렇게 끝맺고 있다.
꼭 3년이 지난 현재 대통령 아들 현철씨를 포함해 현 정권담당자들에게 이 기사의 완곡한 결론은 ‘불행하게도’ 정확한 예언이 돼가고 있다.
이미 3년 전, 짚을 건 다 짚었다
지난 3년 동안 한국언론으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수차례에 걸쳐, 당시 현 철씨의 ‘위세’에 굴하지 않고 그의 문제를 정면에서 제기해온 <한겨레2 1> 취재진으로서는 지금의 사태를 ‘사필귀정’으로 냉정하게 평가하기 앞서 일말의 아쉬움을 감출 수 없다. 현철씨가 적어도 <한겨레21>의 지적 이 제기됐을 때에라도 자신을 중심으로 전개된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더 라면 이 지경에까지 이르는 것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왜 냐하면 현철씨의 불행은 결코 개인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오늘날 벌어지 는 사태가 보여주듯 그것은 국가적 불행이기 때문이다.
박경식씨의 폭로 이후 검찰은 마침내 김현철씨의 국정개입 의혹에 본격적 수사에 들어갔다. 문민정부의 도덕성을 내부에서 갉아먹어온 이른바 ‘현 철게이트’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신호다. 이제 그동안 성역 속에 감춰져온 각종 추문과 의혹이 뜨거운 태양빛을 받고 있다. 이번 검 찰수사가 현철씨에게 의혹을 털고 일어설 기회가 될 것인지, 아니면 대통 령의 아들로서 전대미문의 비극적 결과를 낳을 것인지는 더 두고볼 일이 다. 그러나 현재까지 드러난 현철씨의 무모한 인사개입 등 각종 의혹과 국민들의 불신 정도를 볼 때 사태는 이미 파국에 이르고 있음이 거의 분 명해 보인다.
현철씨 문제를 줄곧 제기해온 <한겨레21>은 검찰이 어렵게나마 수사에 나 선 이상 현철씨를 둘러싸고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정확한 진실을 밝혀내기를 기대한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한겨레21>이 보도했던 ‘현철 게이트’의 주요 내용을 되짚어보는 것도 진실규명에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현재 ‘현철게이트’ 의혹의 대상으로 제기된 점들은 박경식씨가 폭로한
<한겨레21>이 지난 3년 사이에 보도한 현철씨 관련 기사는 10여건. 이 가
운데 현 사태와 관련이 깊은 주요 기사는 창간호 특집기사(94.3.24), 제8
호(94.5.12) 커버스토리 ‘대통령 아들 김현철은 돈을 받았는가’, 제9호
(94.5.19) ‘추적 김현철 인맥과 파워’, 제102호(96.4.4) 커버스토리 ‘
박태중 미스터리’ 등이다.
먼저 김영삼 정부 출범 뒤 ‘민자당 총재 자제분’ ‘현 정권 실세 김씨
’로 별칭되며 성역화된 현철씨 문제를 한국 언론 최초로 본격제기한 창
간호 기사에는 이미 3년 뒤 벌어지고 있는 현 사태의 핵심적 실체를 드러
내 보여주고 있다.
이 기사는 문민정부 출범 뒤 현철씨가 장관 여러명을 추천했다는 정가의
소문을 비롯한 인사개입 의혹과, 이의 공개를 막기 위한 여권의 회유와
압력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또 현재 검찰의 수사선상에 오르내리고
있는 유선방송사업자 선정관련 의혹설, 그린벨트 해제관련 이권개입설,
인사청탁관련 금품수수설, 파친코업자 관련설 등 문민정부 2년의 청와대
물을 흐리게 만든 각종 ‘설’을 성역 밖으로 끌어냈다.
물론 이 기사에 대해 김씨 주변과 청와대 등은 사실무근이란 주장을 되풀
이했고 유선방송사업자 선정문제와 관련해 장아무개씨가 1억원의 손해배
상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 소송은 94년 5월3일 김현철씨가 ‘무자격
한약업사 로비의혹’ 사건을 단독보도한 <한겨레>에 대해 20억원의 손해
배상 소송을 청구한 바로 다음날에 제기돼 ‘자의에 의한 소송’인지 의
문을 남겼다. 그러나 장씨는 1년10개월 만에 별다른 이유없이 자진해 소
송을 취하했다.
제8호 커버스토리 ‘대통령 아들 김현철은 돈을 받았는가’는 여전히 의
혹으로 남아있는 한약업사 로비의혹과 김현철씨의 직접 관련 여부를 추적
보도한 것이었다. 김현철씨가 비록 <한겨레>를 상대로 한 소송을 취하했
지만, 진실규명 차원에서 당시 현철씨 측근인 이충범 변호사가 받았다 돌
려준 1억2천만원이 과연 단순한 변호사수임료인지 무자격 한약업자 구제
를 조건으로 한 정치자금인지는 지금이라도 재수사를 통해 명백히 밝혀야
할 부분이다.
특히 5월19일자 제9호 ‘추적 김현철 인맥과 파워’는 현철씨로 인한 여
권 인사의 파행을 지적한 것으로 현철씨의 인사개입 의혹과 관련해 중요
한 문제제기를 했다. 이 기사는 전병민씨 등 당시 국정에 깊숙이 개입한
현철씨의 핵심측근들을 거론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는 최근 현철씨 의혹
과 관련해 면직된 전 안기부 기획조정실장 김기섭씨가 처음으로 공개 거
론됐다. 또 현철씨 사조직인 임팩트 코리아, 영소사이어티그룹, 청년사업
단, 전병민씨가 주도한 국정개혁프로그램팀을 분석하고 있다. 이 ‘비선
조직’은 막대한 예산을 쓰며 현철씨 인맥을 생산하고 관리한 것으로 추
정돼 역시 ‘현철게이트’ 핵심에 이를 수 있는 진실규명 대상이다.
또한 이 기사는 현철씨의 위세를 업고 출세해보려는 고위인사들의 한심스
런 작태도 소개하고 있다. 92년 대선을 전후해 한 현직 장관은 아들뻘되
는 현철씨를 어렵사리 만나자마자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왜 이러시느냐
고 현철씨가 만류하자 그는 “허리디스크가 있어 이게 편합니다”라며 한
사코 꿇은 무릎을 펴지 않았다고 한다. ‘현철게이트’가 현철씨 주변의
무모한 정치욕뿐만 아니라 현철씨를 팔아 득세하려는 이른바 고위층 인사
들이란 자들의 비굴한 욕망이 한 몸체를 이루고 있음을 보여주는 씁쓸한
사례이다.
한편 96년 4월4일자 102호 커버스토리중 ‘박태중 미스터리’는 현재 현
철씨의 자금관리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현철씨 친구 박태중씨의 ‘역할’
과 ‘돈줄’을 추적해 독자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이 기사의 출발은 당시 김영삼 후보 사조직으로 가동됐던 나라사랑실천본
부 사무국장이 거액의 재산을 관리하고 있다는 소문을 추적하면서부터.
박씨는 (주)심우 회장 직함으로 나사본 선거자금 출납을 맡았으며, 이후
강남구 역삼동에 수십억대의 고급음식점을 운영하는 등 거액을 주무르고
있다는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박씨는 당시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
지만, 현재 현철씨의 인맥과 활동자금 조달 문제 등과 관련해 핵심적인
인물로 지목돼 출국금지 조처를 받고 검찰의 핵심수사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 밖에도 <한겨레21>은 현철씨 문제가 불거져 나올 때마다 적극적인 보
도를 통해 현철씨 문제로 인한 국정문란의 위험성을 누차 지적했다. 이로
인해 여러 경로를 통한 압력을 받거나, 소송이 제기되는 등 제작상 불필
요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독자들로부터는 뜨거운 격려를 받았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덜 중요하다. 보다, 아니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처
음이나 지금이나 그리고 앞으로도 진실이다. 검찰은 검찰의 명예를 넘어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라도 현철씨를 둘러싼 의혹을 한점 숨김없이 밝혀야
하며, 현철씨도 청문회에 나와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추문에 대해 해명해
야 한다. 진실이란 태양 아래서는 아무 것도 영원히 감출 수 없다.
이인우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3월27일
1억2천만원 ‘수임료 주장’ 밝혀야
박태중 미스터리도 최초 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