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1997년03월27일 제 150호 한겨레21

장세동·박철언, 그리고 김현철

김현철씨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마침내 본격화됐다.

지난 3월10일 현철씨가 `YTN' 인사에 개입했다는 `한겨레' 보도가 나온 뒤 연일 현철씨에 대한 비리의혹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올 때 검찰 간부들 은 “올 것이 왔다”는 표정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현직 대통령의 아들인지라 먼저 내놓고 “수사한다”고 말하지 못해오다가 지 난 3월14일 김기수 검찰총장마저 수사의 불가피성을 시인하고 말았다.

지난 1월23일 한보철강이 부도나면서 현철씨 관련설이 나돌기 시작한 지 두달이 거의 다 돼 현철씨가 공개적으로 표적에 오른 셈이다.

검찰주변은 물론 정치권, 나아가 청와대마저도 현철씨의 형사처벌을 기정 사실화하는 분위기다. 검찰 자신도 이번마저 수사를 다한 뒤에 다른 비리 가 터져나와 ‘축소수사’라고 얻어터지기가 죽기보다 싫다는 표정이다. 또 얻어터졌다가는 검찰이 설 땅이 없어지고 수뇌급 간부부터 줄줄이 옷 을 벗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 따라서 18일부터 열리 는 한보사건에 대한 국정감사와 현철씨의 국회 청문회 출석 시기를 떠나 현철씨 소환문제를 조기 결정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그러나 검찰로서는 이번에는 현철씨를 소환했다가 다시 돌려보낼 수는 없 는 탓에 형사처벌할 범죄혐의를 충분히 찾아놓아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검찰은 몇천만원이나 몇억원대의 금품수수 혐의 한두건으로는 부족해 보 인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검찰이 현철씨를 둘러싸고 제기되는 각종 의혹 가운데 최우선적으 로 밝혀야 할 것은 기업이나 인사청탁자들로부터 돈을 받았는지이다. 이 를 위해 지역민방 허가 등 각종 이권사업 관여여부, 현철씨 개인사무실과 사조직 운영자금 출처 등이 수사대상이 되고 있다.

그렇다고 검찰 수사가 이 부분에만 국한될 수 없다. 대통령의 아들이 ‘ 푼돈’ 챙겼다는 개인비리 차원에서 현철씨 문제가 불거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런 직책도 가지지 않은 사람이 대통령 아들이라는 이유로 국가 고위관료 인사, 나아가 언론사 간부 인사까지 쥐락펴락하고, 고위관 료들은 그 밑에 줄서기 바빠 업무 관련 정보를 먼저 보고하는 형태로 국 정이 이뤄져 왔다는 것이 현철씨 사건의 핵심적인 문제가 아닐까.

이런 부분은 사법적 책임 이전에 도의적 책임과 관련된 것일 수 있지만 여하튼 규명 책임은 검찰에 넘겨졌다.

검찰도 이를 알고 있다. 한 대검 고위간부는 “형사처벌할 금품수수 혐의 가 많이 나올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 같다. 현철씨를 형사처벌하면서 현 철씨의 국정개입 의혹을 진상규명 차원에서라도 분명히 밝혀주는 것이 중 요하지 않겠는가”고 말했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5공비리 수사 뒤 장세동씨에 대한 논고문이나 김영삼 정부 출범 뒤 구속된 박철언씨의 논고문 내용이 거의 똑같았다. 현철씨 논고문도 같지 않겠느냐”면서 “이런 되풀이를 막으려면 비록 사 법처리는 안 되더라도 누구누구가 현철씨에게 줄을 서서 개인적 이득을 바라고 옆길 정치를 해왔는지가 명확히 규명돼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

현철씨에 대한 수사가 고위 정치인, 관료들의 줄서기 관행을 막는 데 얼 마나 기여할지 주목된다.

임범 기자/ 한겨레 사회1부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3월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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