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1997년03월27일 제 150호 한겨레21

김현철 청문회 똑바로 해라

<한겨레21>의 여론조사 결과(3월6일자 147호) 답변자의 91.6%가 “청문회 에 소환해 조사해야 한다”는 의견을 표시하는 등 한보사건의 ‘몸체’로 의심받아온 김현철씨. 드디어 그가 한보관련 국회청문회의 증언대에 서게 됐다.

김씨가 3월17일 마침내 여론에 굴복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이날 ‘국민 여러분께 제 심경과 입장을 밝힙니다’라는 대국민 사과문을 통해 “국회 에서 증인으로 출석요구를 하면 응하겠으며, 필요하다면 검찰 재조사도 회피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김씨는 또 “저로 인해 세상이 떠들썩하 고 물의가 빚어지고 있는데 대해 대통령의 아들로서 국민의 한사람으로 가슴 아프다”면서 “저에게 잘못이 있다면 어떤 벌이라도 달게 받겠다” 고 고개를 숙였다. 대국민 ‘항복선언’인 셈이다.

이에 따라 ‘현철 청문회’ 성사여부로 교착상태에 빠져 있던 여야간 대 화가 출구를 찾게됐다. 한사코 ‘현철 청문회’를 반대해오던 신한국당도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박경식·오정소·김기섭씨도 증인으로

그동안 신한국당은 야권의 집요한 요구와 국민적 의혹에도 현철씨의 청문 회 출석을 사실상 거부해왔다. “증인채택에 선을 그어서는 안 된다. 단 진실을 규명할 수 있는 소명자료가 있어야 한다”는 원칙론을 고수해 왔 던 것이다.

하지만 한보국정조사특위의 현경대 위원장(신한국당)이 3월15일 오전 “ 현철씨는 안 된다는 차원이 아니다. 무엇을 입증하려는지 명백하고, 그 취지에 적합한 사람이라면 누구든 증언대에 세울 수 있다”고 밝혀 처음 으로 김씨의 청문회 증언이 가시권으로 들어왔다.

신한국당이 김씨 출석쪽으로 내부방침을 바꾼 것은 방송사와 군 인사개입 등 김씨와 관련한 비위 사실이 언론에 속속 폭로되면서 더이상 미봉책으 로는 국민적 분노와 의혹을 불식시킬 수 없고 사태만 악화시킬 뿐이라는 데 당 안팎의 판단이 일치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3월12일 이미 신한국당은 초선의원 모임인 ‘바른정치 모임’과 민주계 중진들을 중심으로 “김씨가 청문회 출석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아갔다. 또 13일 신임 이회창 대표는 현철씨 증인 출석문제와 관련해 “법의 정신에 따라 순리대로 처리될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이 대표가 이런 당 안팎의 분위기 속에서 3월15일 “현철씨의 청문회 증언이 불가피하다”는 수습책을 김영삼 대통령에게 제시해 출석쪽으로 결론난 것으로 알려졌다.

오히려 여권은 이제 현철씨 증언과 사법처리문제를 적절하게 배치하는 문 제에 더 집중하고 있다. 김씨가 45일 동안의 청문회 과정에서 증인으로 서게 되면 야권의 공격으로 경우에 따라 사태가 더 걷잡을 수 없게 될 수 도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신한국당은 일단 검찰의 사법처리를 통해 현철 씨 문제를 어느 정도 정리해 주면서 여권이 주도적으로 문제를 풀어나가 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분석된다.

현철씨와 관련한 의혹들을 얼마나 밝혀내느냐 하는 것은 결국 야권의 몫 으로 남았다. 사실 야권은 지난 10일까지만 해도 현철씨의 증인 출두가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 아래 먼저 텔레비전 생중계를 관철한 뒤 여론몰이 를 통해 현철씨를 추가증인으로 채택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국민회의 한 관계자는 “당초 현철씨의 국회출석은 어려울 것으로 보고 텔레비전 생중 계에 힘을 쏟아왔다”며 이런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상황이 정반대로 변하자 야권은 고민하고 있다. 어차피 현철씨가 증언대에 서는 게 기정사 실이고, 이제 어떻게 공략하느냐 하는 문제만 남았기 때문이다.

국민회의 등 야권은 이번 기회에 현철씨와 관련한 모든 의혹들을 완전히 파헤치겠다는 전략이다. 국민회의 한 관계자는 “한보특혜의 배후라는 사 실을 증명하는 데 중점을 두면서도 인사개입 등 현재 나돌고 있는 모든 의혹들을 철저히 규명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야권은 각종 인허가와 거액대출비리 등 한보 의혹과 관련해 이 미 합의된 62명의 증인 및 참고인 외에 방송사 인사개입 의혹이 담긴 테 이프를 폭로한 박경식씨, 안기부 인사개입 의혹과 관련된 오정소 전 안기 부 1차장, 김기섭 전 안기부 운영차장 등을 증인으로 추가하기로 했다.


‘설’만 나열한 채 어설프게 끝날 수도

하지만 청문회를 통해 현철씨 관련 의혹들이 얼마나 밝혀질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야권의 이런 전술을 약화시키려는 신한국당의 대응이 만 만찮기 때문이다. 여권은 이번 청문회를 한보와 관련된 것에 국한시킬 것 임을 벌써부터 강조하고 있다. 현 위원장은 “이번 청문회는 한보와 관련 해서만 조사하는 것이지 한보와 관련없는 인사개입 의혹 등은 청문회 대 상이 아니다”고 밝혔다. 그는 “인사개입 의혹 등에 대한 조사는 별도의 법적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 신한국당 관계자들은 “현철씨가 한보와 관련해서는 이미 검찰조사를 받았기 때문에 오히려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 여당은 검찰을 통해 인사개입 등의 의혹에 대한 수사 결과 현철씨를 사법처리하면서 청문회의 김을 빼 는 전략을 쓸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야권은 현철씨가 한보와 관련돼 있다는 명백한 물증을 제시하지 못하고 ‘설’만 늘어놓은 채 이틀 동안의 현철씨 증언으로 청 문회를 끝맺음할 수도 있다.

결과야 어떻든 ‘깃털 수사’의 ‘몸체’를 증명하기 위한 청문회로 봄 정국은 뜨겁게 달아오를 것이다.

신승근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3월27일


커버스토리 포커스 문화시대 특집 지난호 전체보기 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