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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경제 |
1997년03월20일 제 14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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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록/ 중소기업연구원 부원장
어느 경제학자(K. Arrow)가 이런 요지로 가르쳤다. “민주주의의 투표는 종합선물세트를 일괄 구입하는 것이다. 그 안에는 좋은 물건도 들어 있고 나쁜 물건도 들어 있다. 결코 가장 좋은 물건만 들어 있는 선물세트는 아 니다.” 다른 경제학자(T. Buchholz)는 한술 더 떴다. “민주주의는 슈퍼 마켓 물건 사기와 제비뽑기의 중간쯤이다.”
도착할 수 없는 ‘순수 경제논리’
이처럼 민주주의는 만인에게 좋은 최선의 결과를 도출해내는 체제는 아니 다. 아무리 좋은 결정 아래서도 피해자는 생길 수 있다. 민주주의란 최선 을 향하는 차선의 결착에 만족하는 구도이다. 그것은 또한 서로 다른 이 해집단간에 ‘절충의 동의’를 끄집어내는 타협의 계산 체계이다. 자유주 의에 입각하고 있는 시장경제는 민주주의 안에서 작동하는 ‘손’을 갖고 있다. 시장경제의 보이지 않는 손은 민주주의에 묶여 있다. 이런 의미에 서 자유시장경제는 ‘정치경제’이다. 그것은 정부와 민간이 교직하는 혼 합경제이다.
정치경제의 의사결정과정에서는 조직화된 이해집단이 특혜(경제적 지대) 를 얻어 내기 위해 로비를 한다. 때문에 정치경제의 의사결정은 만인에게 유리한 최적상태(파레토 최적)를 도출해내는 데는 실패하는 수가 더 많다 . 조직화되지 않은 유권자 대중은 이를 보고 흥분하지만 무시해 버리고 만다. 이것이 공공선택학파가 이야기하는 ‘합리적 무시’(Rational Igno rance)이다. 최적상태의 전시관인 순수한 경제논리는 정치경제의 의사결 정자들을 손짓해 부르는 ‘전설의 보물섬’이다. 순수경제논리는 우리가 그쪽으로 향해 가는 섬이지 도달하는 섬은 아니다.
이러한 논의는 그러나 순수경제논리의 필요성을 무효화하는 것은 아니다. 북극성이 항해자의 방향타를 안내하듯이 순수경제이론이 정책결정자를 이 끌어준다. 순수경제이론은, ‘거기에 그냥 있는 것’만으로도 임무수행중 이다. 경제이론은 현실 속의 복잡한 정치경제의 해법들을 끌어모으는 강 력한 자장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의 절충을 통과한 경제적 결정은 이 자장(磁場) 안의 어딘가에 자리잡는다. 정치의 힘이 약할수록 결정은 순수경제이론의 자극(磁極)에 접근한다.
이제 우리는 경제운용의 한계선을 그을 수 있다. 경제가 정치경제이지만, 어떠한 경제운용도 경제논리의 자장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 한보 게이트 란 파국은, ‘최악의 의미에서의’ 정치논리로 경제를 풀어보려는 발상에 서 초래된 것이다. 경제가 경제논리의 자장을 벗어나면 파국에 이른다. 지금 노동법 재개정에 대한 정치적 절충이 경제논리의 자장을 벗어나려 하고 있다. 이것은 불행의 이연(移延)이다. 어떻게 해서라도 경제논리의 자장 밖으로 흩어지려는 정치적 절충의 파편들- 특히 정리해고제- 을 자 장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경제논리 벗어나려는 노동법 재개정
정치경제의 의사결정이 경제논리의 자장 안에 끌려 들어가야 하지만 자극 에 완전히 밀착될 수는 없다. 자유방임 상태에서 결정되는 가격, 임금, 지대, 이자, 이윤이 경제학의 전부는 아니다. 현실적으로 이러한 세계는 존재하지도 않는다. 법과 윤리와 규범과 관습도 경제학의 일부이다. 시장 경제의 실패를 정부의 간섭으로 보정하려는 시도는 이러한 경제학의 확장 과 관련이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경제를 결정하는 마지막 요소는 윤리, 규범 등의 ‘비경제적’인 것들이다. 이 말은 모든 경제적 조건이 같은 경우에는 ‘비경제적’ 조건들이 경제를 결정한다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에 입각하고 있는 최근의 견해는, 문화라는 ‘사회적 자본’이 경제 진보의 결정적 요인이라는 관념이다.
경제가 정치경제이지만, 정치경제의 의사결정이 경제논리의 자장을 벗어 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제약조건을 준수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정부의 깊은 사려와 인내가 요구된다. 이것은 어떻게 하면 경제에 대한 정치의 간섭을 최소화하는가 하는 문제와 직결되는 것으로 실용적 접근이 매우 어렵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가이드라인은 제시할 수 있다. 호혜의 규 범에 기초를 두지 않는 간섭보다는 무책이 상책이다. 이 말은 과도기에 더욱 잘 통하는 이치이다. 시장경제는 궁극적으로는 무책 안에서 자기조 정을 하는 기구이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3월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