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1997년03월20일 제 149호 한겨레21

‘가시 숨긴 장미’ 야권공조

(사진/보궐선거 압승으로 내각제 논의가 다시 고개를 들자 김종필 총재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인천 서구와 수원 장안구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압 승한 뒤 연말 있게 될 대선승리에 대한 장밋빛 희망에 한껏 부풀어 있다. 특히 두 야당은 이번 선거에서 압도적 표차로 여당 후보를 따돌린 것이 D JP(김대중-김종필)공조의 위력을 보여준 것이라며 잔뜩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보궐선거 승리는 DJP 공조 탓

이번 선거에서 거둔 야당의 득표내용을 놓고 보면 그럴 만도 하다. 실제 두 야당 후보는 이번 3·5보선이 지난해 4·11총선보다 투표율이 훨씬 낮 았음에도 여당과의 표 차이를 더욱 벌리는 ‘괴력’을 보였다. 인천 서구 국민회의 조한천 후보는 신한국당 조영장 후보를 1만8천여표차로 따돌렸 다. 15대 총선 때 지금은 고인이 된 국민회의 조철구 의원이 3천2백여표 차로 힘겹게 이긴 것에 비해 6배나 되는 표차이다. 힘겹게 이길 것으로 예상한 야당지도부조차 놀랄 정도의 압승이었다. 여론조사기관인 ‘한길 리서치’의 대표인 홍형식씨는 “노동법과 한보사태로 인해 여당의 조직 표는 이미 무너졌기 때문에 주로 야당 성향의 유권자들이 투표장에 나가 게 돼 있었다”며 “여당은 오히려 투표율이 높아야 싸움을 해볼 만했다 ”고 말했다.

이러한 현상의 본질적인 원인이 물론 민심이반이라는 데는 선거 관계자들 이 한결같이 공감한다. 인천의 신한국당 조영장 후보는 “유권자들에게 신한국당이란 상품이 전혀 팔리지 않았다”고 말했으며, 조 후보의 한 참 모는 “유권자들의 심판 타깃은 조 후보가 아니라 당과 청와대였다”고 밝혔다. 신한국당 경기도지부의 한 관계자는 “패배의 원인을 민심이반이 라는 것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두 야당은 이번 선거의 승리가 야권공조의 힘과 이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보여준 것이라며 대선공조가 이뤄질 경우 그 ‘시너지(통합) 효과’는 이 보다 더 클 것으로 분석한다. 노동법 날치기와 한보사태 등으로 민심이 돌아선 측면도 있지만 그보다는 DJP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크게 작용했다 는 것이다. 특히 두 야당은 여당의 실정에 대한 시민들의 실망이 정치무 관심으로 이어지던 통례와 달리 이번에는 야권공조에 대한 지지로 나타났 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없지 않다. 국민회의 일부에서는 이번 보선결과로 판단할 때 신한국당에 대한 민심이반의 폭과 깊이가 단기간에 메워질 수 없을 정도로 크긴하지만 이런 현상이 여당의 대통령 후보라는 새로운 인 물에 대해서도 적용될지는 두고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총재가 전력투 구를 했음에도 40%에 훨씬 못 미친 투표율을 기록한 것으로 미뤄 시민들 의 반신한국당 정서가 DJP로 연결됐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다.

이런 신중론에도 불구하고 두 야당은 이번 보선 때의 공조를 12월 대통령 선거 때까지 이어가기 위해 잰 걸음을 딛기 시작했다. 아직까지는 국민회 의가 더욱 적극적이다. 국민회의는 최근 자민련쪽에 후보단일화를 위해서 라면 15대 국회 안에 내각제로의 개헌 가능성도 적극 검토할 수 있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곧 DJ로의 단일화가 보장된다면 내각제 로 당론을 바꾸고 15대 국회의원 임기 안에 개헌을 하겠다는 자민련의 요 구를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회의의 이런 ‘애정표현’에도 자민련 김 총재는 오히려 이번 보선에서 승리한 뒤 비록 우회적인 표현을 쓰긴 했지만 국민회의까지 비 난하며 대권도전 의욕을 더욱 다지고 있어 관심을 끌었다.


JP, “소리만 지르던 사람은 안 된다”

김종필 총재는 지난주 속리산에서 열린 부산 경남지역 당원연수에서 “신 한국당은 이미 시험이 끝났고 다른 야당도 국체를 보존하고 내일을 밝게 여는 지도력을 발휘할 수 없다”며 “일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당은 자민 련이다”고 강조했다. 김 총재가 밝힌 ‘다른 야당’이 국민회의를 가리 키는 것은 물론이다. 그는 나아가 “거리에서 소리만 지르던 사람을 대통 령으로 뽑으면 나라가 망한다는 사실을 지난 4년 동안 똑똑히 보고 있다 ”며 “이런 사람들이 집권하면 권력을 자신과 가신들을 위해 쓸 뿐”이 라고 김영삼 대통령과 김 총재를 동시에 겨냥한 듯한 말들을 쏟아냈다. 이런 이유로 정치권에서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동안 DJP공조가 지속될 것 으로 전망하면서도 JP가 DJ로부터 이제 더이상 얻을 것이 없는 만큼 ‘딴 마음’을 먹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권복기 기자/ 한겨레 정치부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3월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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