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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2 |
1997년03월20일 제 14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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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글래너스티/ 런던정경대학 교수
하워드 글래너스티 교수는 1968년부터 런던정경대학(LSE) 사회정책학과 교수로 재직해왔다. 1984년부터 같은 학과의 주임교수를 역임중인 글래너 스티 교수는 복지국가 이론과 보건·사회정책 분야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적 권위자다. 현재 런던정경대학의 ‘스티커드 경제정책연구소’ 소 장을 겸임하고 있다. 16권의 저서가 있으며, 특히 <1945년 이후의 영국사 회정책>과 <복지국가 재정론: 2000년대를 향하여>는 사회복지학계의 표준 적 교과서로 손꼽힌다.
현재 전세계의 많은 학자들이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경제가 세계경제질 서에서 차지하는 점증하는 중요성에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이 지 역내 국가들이 21세기에 대내적으로 직면할 심대한 도전을 간과하는 경향 이 있다. 한국 등이 21세기에 겪게 될 도전 중 가장 큰 것은 인구학적 환 경변화에서 기인할 것이다. 인구변화는 급속한 경제적 변화와 맞물려 증 폭되기 쉬운 점을 중시해야 한다.
변화에 적응할 교육재원 마련해야
물론 이런 문제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는 한국보다 앞서 산업화 를 이룬 나라들을 살펴보면 명백해진다. 예컨대 18세기와 19세기 초 영국 은 사망 때 평균 중위연령(Median Age)이 30살 정도밖에 안 되는 젊은 사 회였다. 이렇게 사망률이 높았던 사회가 산업혁명 이후 19세기 말에 이르 러서는 사망 때 남성평균 중위연령이 60살로 증가하는 놀라운 변화를 겪 었다. 이것은 사회적으로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대단히 중요한 변화라 할 수 있다.
20세기를 거치면서 평균수명 및 현대 경제활동에 필수적인 교육기간이 크 게 증가했다. 중등학교와 대학의 무상교육이 경제력의 향상에 필요불가결 한 사안으로 떠오른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이른바 ‘복지’정책은 사실 정치적이라기보다는 경제적 필수조건에 다름 아니었다. 이 결과 오늘날 세계의 선진개발국들은 경제활동기간의 구매력을 경제활동 준비기간 또는 경제활동 종료 뒤의 대규모 구매력으로 전환시킬 방도를 찾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바로 이런 노령화 사회가 21세기 유럽과 북미에서 대내적으 로 가장 큰 정치·경제적 도전 중의 하나라는 점이 입증되었다. 대략 전 체 사회적 지출의 4분의 3 정도가 이러한 세대간 재정이전 문제와 관련된 것이다. 그러나 이들 선진국가는 사회건설을 지속시키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나갈 여러 가지 제도를 발전시켜왔다.
그런데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21세기를 맞아 이보다 훨씬 급 속한 변화에 적응해야 할 전기를 맞고 있다. 보편적인 중등·고등·기능 교육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할 방도를 어떻게든 찾아야 할 것이다. 우선 아픈 식구가 있는 가정에 경제적으로 버거운 부담을 지우지 않을 의료제 도가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연로하고 기동이 어려운 사람을 돌봐줄 방안 을 마련해야 한다. 이런 조처가 노동시장에 의해 가족구조가 변화중인 사 회환경의 맥락에서 모색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이것은 바람직한 사회를 건설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여간 큰 과제가 아니다. 옥스퍼드와 런던정 경대학의 사회정책학자 굿맨과 펭이 주장한 것처럼 한국·일본·대만과 같은 나라들은 이런 도전 앞에서 언제나 대단히 큰 창의력을 발휘해왔다. 그들에 따르면 동아시아의 이 세나라는 ‘유연한 교육, 변화적응력 및 국 가형성의지’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사진/공원에서 하루를 보내야 하는 노인이 늘고 있다. 노령인구가 사회적 생산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시급하게 마련해야 한다.)
복지는 국민 모두가 향유하는 사회권
그렇다면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이 지난 십수년 동안 영국이 경 험한 변화로부터 참고할 만한 점이 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보수당 의 대처 총리와 그의 후계자가 20년 가깝게 철저한 자유시장제 이념 아래 에서 집권했는데도 국립보건제도(NHS), 대학까지의 무상교육, 또는 고령 자 보호정책에 대한 영국민의 지지와 재원염출 의지를 꺾지 못했다는 점 을 눈여겨봐야 할 것이다. 물론 새로운 복지서비스 제공방식, 효율성 향 상, 경쟁성 도입과 소비자주의 등 많은 변화가 생겼다. 그러나 복지의 본 질적 특성, 곧 ‘국민 모두가 향유하는 사회권’이라는 특성에는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어떤 면으로는 복지의 특성이 강화된 부분도 있다. 의료 제도의 미래를 놓고 전사회적 토론이 벌어졌을 때 의료복지제도에 대한 국민들의 높은 지지와 그 제도를 뒷받침하는 평등한 인간가치라는 윤리적 원칙이 선명하게 부각되었던 것이다.
또한 학부모가 참여하는 학교운영위원회에 학교예산 통제권을 부여한 결 과 교육제도에 대한 대중의 지지가 더욱 상승했고 교육수준 향상욕구가 표출되었다. 전국통일교과과정의 신설과 학년 단계별 목표치에 의거한 학 력평가의 실시로 학교에 대한 학부모의 성원이 더욱 강화되기도 했다. 양 로원이 아닌 자택거주 고령자 보호에 대한 영국민의 지원은 특기할 만하 며, 이 역시 각개인의 욕구에 맞게끔 지원서비스를 편성·시행해주는 노 인보호관리자제도 실시로 구체화되었다. 이런 복지개혁 조처들이 최대한 선용되기 위해서 풀어야 할 숙제가 많이 남아 있지만, 개혁으로 말미암아 전후 복지국가에 새로운 생명력과 새로운 조직형태가 부여된 것은 틀림없 다.
개혁조처와 병행해서 노령자 소득보조의 책임이 국가에서 개인으로 옮겨 진 것도 매우 중요한 변화다. 현재 대다수 노동인구가 직장연금과 개인연 금에 들어 있다. 개인저축을 기반으로 은퇴 뒤 연금형태로 생활비를 지급 받는 식으로 소득보조 형태가 바뀐 것이다. 국가는 민에 대한 최저수입의 보장 등을 통해 중요한 역할을 지속하고 있다. 국가의 역할은 앞으로도 대단히 많은 사람들에게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의 노동시장에서는 안정적인 평생직장이 보장되지 않으며 특히 여성의 노후보장이 열악해지 기 쉽다. 따라서 국가가 점점 더 노후연금제도의 규제에 관여하고 연금혜 택에서 소외되는 집단의 보호에 개입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아야 한다.
지난 20년간 발전한 경제이론에 힘입어 왜 시장제도가 어떤 분야에서는 극히 우수한 성과를 발휘하지만 어떤 분야에서는 그렇지 않은가 하는 점 이 점점 더 규명되고 있다. 특히 보험시장에서 이 점이 두드러진다. 보험 회사는 실직·만성질환 및 장기적 요양 등과 같은 위험보상을 꺼리거나 보통사람들이 부담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액의 보험료를 부과하곤 한다. 직장제공보험은 유동적인 노동시장에서 문제가 많음이 이미 드러난 바 있 다.
풍부한 인적 잠재력 활용해야
개인의 의료보험은 전체적으로 볼 때 역시 매우 비싼 의료비 지출방식이 라고 판명됐다. 일부 경제학자의 시장이론에 등장하는 교환거래 때의 ‘ 완벽한 정보’라는 가정이 의료행위에는 통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의료시 장에서의 정보지식은 의료제공자에게 구조적으로 유리하게 되어 있다. 이 런 결함이 없는 효율적인 의료제도가 경제문제와는 상관없이 생겨났다면 그것은 순전히 우연의 결과일 것이다.
한국처럼 이번 세기에 경제발전에 따른 긴장, 연령구조의 혁명과 가족구 조의 변화, 선진국의 실상을 접한 젊은이들의 기대치 폭발과 같은 문제를 경험한 나라들이 21세기를 맞으면서 이런 문제의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임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경제적인 성취능력이 사회적인 성취능력과 공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흥개발국 출신 유학생의 교육 을 담당해본 사람이라면 위와 같은 도전을 극복할 인적 잠재력이 이런 나 라들에 풍부하다는 사실을 절대 부정할 수 없다. 이 점에서 한국은 특히 좋은 예라고 확신한다.
번역=런던/ 권은정 통신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3월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