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이야기 |
1997년03월20일 제 149호
|
|---|
시류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고집이 필요하다. 최인호(32)씨도 그랬다. 현 실 사회주의가 한참 무너지던 지난 91년, 그는 동료들과 함께 사회주의의 교과서라는 `마르크스 엥겔스 저작선집'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7 년 만에 모두 6권에 이르는 작업을 완성했다.
최씨의 고집은 한 친구와의 만남에서 비롯한다. 지금 그 친구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서울대 언어학과 84학번 박종철. 최씨는 지난 87년 남영 동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을 당해 숨짐으로써, 6월항쟁의 기폭제가 된 박종 철을 가장 잘 아는 친구 가운데 하나다. 최씨는 박종철과 같은 학번으로 철학과 1학년 때부터 이념서클 ‘대학문화연구회’에서 한솥밥을 먹었다. 졸업 뒤 최씨는 몇몇 동료들과 출판운동에 뛰어들었다. “우리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하더라도 결코 그를 잊지 말자”는 뜻으로 출판사 이름을 ‘박 종철출판사’라 지었다. 그는 박종철을 단지 운이 나빠 요절한 운동권 학 생으로 보는 사회 일각의 평가에 반대한다. “그는 무엇보다 신의의 인간 이었습니다. 그는 동료의 신변을 지키기 위해 모진 고문을 감내했고, 결 국 목숨을 바쳤습니다.”
최씨는 `선집'이 지금도 여전히 읽어야할 책이라고 믿는다. “우리 사회 는 본질적으론 변한 게 없는데 사람들은 변했다고 합니다. 수박겉핥기식 에다 장밋빛만 보는 편견입니다. 사상을 현실 속에서 검증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씨는 결혼까지 미루고 번역에 매달렸다. 마르크스와 엥겔스 사상의 정 수를 좀더 정확히 전하기 위해 말투와 문체, 용어의 개념을 일관되게 다 듬었다. 10여명의 관련 학문 전공자들이 공동으로 교열을 봤고, 김세균 교수(서울대 정치학)가 감수를 맡았다. 그 책을 지금 친구에게 바친다. (문의: 02-878-7906)
김창석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3월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