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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야기 |
1997년03월20일 제 14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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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은하(40)씨는 목발을 짚은 채 객석 사이를 헤쳐나갔다. 두살 때 소아마 비를 앓은 그는 왼쪽 다리가 불편하다. 단상까지 40m 거리를 천천히 걸었 다. 계단을 올라가는 모습이 약간은 힘들어보인다. 그래도 시상대에 선 그는 당당했다. 지난 3월8일 열린 한국여성대회에서 여성장애인들의 모임 인 ‘빗장을 여는 사람들’을 대표해 여성인권 디딤돌상을 타는 순간이었 다. 휠체어에 앉거나 목발에 기댄 이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여성장애인은 여성에 대한 차별뿐 아니라 장애인에 대한 차별까지 안고 살아갑니다. 회원 가운데는 오늘 또는 몇달 만에 외출한 회원도 있습니다 . 이 사회는 그만큼 우리에게 힘든 곳입니다.”
‘빗장을 여는 사람들’은 지난 94년 12월13일 출범했다. 처음 5명이던 회원이 그새 80여명으로 늘었다. 그만큼 많은 일을 해왔다. 여성장애인의 생활실태에 대한 설문조사도 벌였고, 96년 10월에는 여성장애인대회를 처 음으로 열었다. 장애인을 둔 가정에 알맞은 모델하우스도 만들었고, 장애 인을 의무고용하는 기업에 여성장애인의 비율을 높이도록 요구하기도 했 다.
“교육과 직업의 문제가 제일 심각합니다. 남성장애인들은 부모가 어떻게 해서든지 공부를 시키거나 경제적 자립을 도와줍니다. 그러나 여성장애인 은 냉대를 받습니다. 심지어 없는 셈 치고 집안에만 눌러앉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간다. 답답한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배어나온 다. “여성장애인 숫자조차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정부에서는 대략 40만 명이라 하지만 우리는 2백만명으로 보고 있어요.”
전주한일신학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그는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다. 여성장애인에 대한 전반적인 조사, 연구는 더이상 미룰 수 없다. 여성장 애인들이 언제라도 들러 공부하고 서로의 어려움을 나누며 쉴 수 있는 공 간도 필요하다. 이런 일들을 스스로 해결할 생각이다. “평등한 세상을 향해 빗장을 더욱 활짝 열겠습니다. 우리들 하나하나의 작은 힘을 모아서 요.” (문의: 02-521-5364)
김상준/ 자유기고가
© 한겨레신문사 1997년03월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