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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칼럼 |
1997년03월20일 제 14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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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릿하게 하다’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이 런던 출신의 4인조 밴드는 이른바 ‘Brit Pop’이라는 이름을 탄생시킨, 즉 브릿 팝의 상징적 밴드 였다. 1994년의 앨범 `공원생활'(Parklife)을 통해 영국 팝 음악계를 평 정한 이들은 90년대 중반 영국의 문화적 아이콘이 되었다. 60년대라는 ‘ 황금시대’를 연상시키는 복고풍의 팝 음악, 그리고 역시 당시의 모드족 문화를 연상시키는 ‘슬림’하고 ‘쿨’한 의상이 런던 거리를 휩쓸었다. 패션 잡지에서는 이 현상을 모드 리바이벌(Mods Revival)이라고 이름붙이 면서 잔치 분위기를 이어나갔다. 이 분위기는 블러의 뒤를 이어 맨체스터 출신의 밴드 오아시스가 미국 시장마저 정복한 95, 96년께 절정에 이르렀 다.
그런데 브릿 팝이든 모드 리바이벌이든 영국 청년문화의 전통인 자생적인 하위문화(Subculture)와는 거리가 있으며, 단지 미디어 하이프(Media Hyp e : 매스컴이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일시적 유행)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 이 있다. 팝의 주도권을 둘러싼 영국과 미국 사이의, 또 영국 내에서 남 부와 북부 사이의 싸움붙이기란 형식을 취한 이 하이프는 ‘거품’ 이상 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브릿 팝은 죽었다”는 데이먼 알반(Damon Albarn: 블러의 리더) 의 발언을 오아시스에게 왕관을 넘겨준 퇴물의 항변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그래서인지 비장한 각오를 다진 듯 별도의 명칭이 없는 이번 앨범 의 음악적 스타일은 밝고 경쾌하게 쿵짝쿵짝하는 브릿 팝 ‘주류’의 분 위기와 단절하려는 의사를 명백히 하고 있는 듯하다. 미국 인디 록 음악 계의 거물인 소닉 유스와 페이브먼트가 도와주었다는 사실에서 느낄 수 있듯, 이번 앨범은 전체적으로 나른하고 어두운 편이다.
그렇다고 이번 작품을 ‘미국화된’ 스타일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듣 는 이에 따라서는 밴드 초기의 들뜨지 않은 스타일로 돌아갔다고 평할 수 도 있고, 또다른 스타일을 엉성하게 차용한 것이 아니라 영국인 특유의 기지와 유머로 자기 색깔을 잘 유지한 편이다. ‘제2의 킹크스’(The Kin k : 비판적이고 냉소적이었던 60년대 중반 런던 출신의 록 밴드)라는 평 은 꼭 영국 팝 음악의 정통 족보를 만들려는 고의가 아니라면 타당하다. 그런데 아직 남는 문제가 있다. 블러에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지만 브릿 팝과 모드 리바이벌은 90년대 초에 절정을 이루었던 레이브 문화(Rave Cu lture)가 당국의 탄압으로 쇠퇴한 뒤, 수면 위로 대두한 문화이다. 마약 에 절어서 광란의 마라톤 댄스 파티로 밤을 지새웠던 레이브족, 퇴폐적이 었던 만큼 반항적이었던 이 ‘인간망종’ 족속들이 지하로 숨어들어간 뒤 지상에서 잔치를 벌이는 모드족들. 이들은 이미 상실된 대영제국 팝 음악 의 황금기를 낭만적으로 회고하는 좀비들(Zombie)인가. 60년대의 모드는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존재들이었다(모드는 모더니스트 Mod(ernist)s 의 약자이다). 그런데 부활된 모드는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라고 말 하고 있다. 이 문제는 내게 아직 수수께끼고, 그래서 블러의 음악은 여전 히 ‘블러리’(blurry)하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3월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