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
1997년03월20일 제 149호 한겨레21

왜색만화의 위험한 위선

이주향/ 수원대 인문대 교수

만화에서 왜색이라면 어떤 걸까? 일본에서 건너와서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만화는 그 왜색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보여준다. 잘 나가는 만화 <짱구 는 못말려>와 <드래곤 볼>에서 내가 본 그 왜색은 성(性)이었다. 그것도 철저히 일본식으로 채색된 성이었다. 그 성은 숨어 있으나, 숨어 있는 그 것이 만화의 매력이란 점에서 철저히 드러나 있기도 하다. 나는 <드래곤 볼>의 인기를 그 성을 빼고 설명할 수가 없다.

성을 숨기는 방식은 교묘하다. 무엇보다도 성은 진지한 것이라는 기존의 상식을 뒤집어 보는 것이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만화라는 장의 특성을 최대한 이용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손오공이다. 서유기처럼 손오공이 여의주를 찾아가는 것이지만, 이 손오공이 여의주를 찾아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우연이다. 우연히 만 난 연상의 여인이 그 계기가 되었다. <드래곤 볼>이 드래곤 볼인 것은 7 개의 여의주를 모으면 용의 신이 나타나, 어떤 소원도 들어준다는 전설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만화에서 여의주는 그닥 중요하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여의주를 찾는 과정이다. 그 과정이 철저히 성적이라는 사실이 <드 래곤 볼>의 매력이다.

그것은 신비의 여의주 일곱개를 찾으려는 여인의 목적에서도 드러난다. “드래곤 볼을 다 모은 다음 용신에게 멋진 애인을 소개시켜 달라고 할 거야.” 손오공이 가진 한개의 여의주를 갖기 위해서 부르마는 손오공에 게 엉덩이를 내민다. 손오공은 그 행위의 의미를 모른다. 그래서 천연덕 스럽게 말할 수 있다. “지저분한 엉덩이 만지고 싶지 않아.”

성이 숨어 있다고 한 것은 바로 주인공으로 설정된 손오공이 성에 대해 무심하기 때문이다. 성에 천진한 손오공이 성적인 일들과 만날 때, 성은 진지하거나 맹목적적인 것이 아니라, 우스꽝스러운 것이 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부르마와 함께 자다가 먼저 일어난 손오공. 그는 부르마의 배 아래를 베고 누어 본다. 그러다가 자기에게 있는 것이 부르 마에게 없다는 사실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드래곤 볼처럼 생긴 찌찌가 없어.” 얼마 뒤 그는 다른 사건을 당해서 어른이 된 것처럼 의젓하게 웃 으면서 말한다. “고추가 없어도 살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황야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에게 금품을 털어 살아가는 악당 야무 치 일당은 손오공 일행을 공격한다. 그러다가 미녀 부르마를 보자 철수한 다. “야무치님은 여자에 약해서 큰일이에요.” “약한 건 아냐. 여자만 있음 긴장해서 탈이야.”

야무치는 일곱개의 여의주가 소원성취와 관계있다고 하자 들뜬다. 그가 용신에게까지 빌고 싶었던 소원은 뭘까? 여자 앞에 가더라도 얼굴을 붉히 지 않을 수 있게 해달라는 것. 결국 여의주 7개가 모이고 용신이 출현했 다. 용신은 들어주었다. 용신에게 제일 먼저 소원을 말한 오룡의 소원을. “여자 팬티를 갖고 싶어요.”

성에 관한 진지함이 만화에서 무너질 때 성을 아는 어른들에겐 만화적 호 기심이 생기고, 성을 알고자 하는 청소년들은 성적인 호기심이 생겨난다. 이때 성과 관련된 기상천외한 만화적 사건들을 훔쳐보는 독자들의 호기심 은 슬며시 자극된다. 이것이 <드래곤 볼>을 보는 재미이다. 위선으로 가 린 성의 진지함을 조소하는 재미 말이다. 거기에서 따라나올 수 있는 것 이지만, 천진한 아이의 관점에서 현대의 허위의식을 벗겨버리는 데서 오 는 통쾌함도 있다.

사실 나는 이런 류의 만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허위를 허위로 받아내는 일이 진실이 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일까? 나는 허위를 허위로 맞받을 때 , 건져올릴 수 있는 진실의 양보다 허위의 양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허 위 중의 허위는 그것이 여전히 ‘성 팔고 사기’에 기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소녀는 무천도사에게 팬티를 보여준 대가로 여의주를 얻는다. 도사들도 도를 닦아서 도인이 아니라 기적을 일으키는 기구를 갖고 있어 도사다. 물론 그 기적을 일으키고 싶은 마음은 성적인 관심 때문이다. 우 마왕의 산불을 끌 수 있는 것은 파초선을 가진 무천도사뿐이다. 그런데 무천도사를 움직이는 것은? 무천도사의 손녀뻘쯤 되는 소녀 부르마의 가 슴이다. “난 여자 가슴을 만져야 힘이 나는 체질이야.” 부르마의 가슴 을 만지게 해주겠다고 약속한 건 손오공이다. 그 약속이 있었다는 사실에 부르마가 부르르 떨 때도 손오공은 천연덕스럽다. “그게 어때서 그래? 가슴 한번… 한다고 해서 뭐 없어지나?”

나는 이 만화에 멀미를 느꼈을 뿐더러 낯가림까지 했다. 그 이유가 뭐였 을까? 그것은 아마도 ‘진지’한 위선을 고발하는 방식이 여전히 위선이 었기 때문인 것 같다. 물론 그 위선은 이번에는 ‘천진함’의 가면을 쓴 위선이지만.

© 한겨레신문사 1997년03월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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