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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03월20일 제 14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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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너에게 편지를 쓴다. 긴 욕망의 손톱을 다듬고 있을 이 시간의 많은 이들을 대신하여, 너에게 편지를 쓴다. 정치적 욕망, 부를 늘리기 위한 욕망, 이 세상의 모든 욕망에 대하여 편지를 쓴다. 사람들은 온갖 일로 바쁘단다. 화를 내고 있단다.
이 바쁨에, 분노에 눈부신 바람을 던지는 너에게 편지를 쓴다. 고맙다, 고맙다. 사람들은 버리지 못하고 열심히 쓰레기들을 껴안으며 살고 있단 다. 그 쓰레기들에도 빛을 던지는 너에게 편지를 쓴다. 고맙다, 고맙다. 연암의 글 하나가 오늘 생각나는구나. 연암은 화담 선생의 말을 빌려 이 런 이야기를 했지. 화담 선생은 어느날 길을 가다가 한 사람이 울고 있는 것을 발견했단다. 그 사람은 원래 장님이었는데 아침에 갑자기 눈이 떠져 서 즐거워했지. 그런데 저녁이 되어 집으로 가려고 하니, 그 문패가 다 그 문패같고, 그 골목이 다 그 골목 같아서 정신이 혼란되어 집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하고 말았단다. 화담 선생은 그 사람에게 말한단다. “네 눈 을 도로 감아라, 그러면 집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사 람은 그 말대로 했고, 과연 집으로 다시 갈 수 있었단다. 어둠 속에서만 익숙하게 그는 길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지.
너의 바람 속에서 꽃들이 익숙하게 피어나는 것을 바라보며 집으로 가는 길을 찾는다. 우리에게는 모두 집이 있으나, 집이 없다. 우리에게는 모두 고향이 있으나, 고향이 없다. 봄, 모두 옷을 벗지만, 아주 두꺼운 마음의 옷만은 벗지 않기에 네가 그립고, 그립다.
어떤 철학자는 이 세상이 모두 감옥임을 말하고 있지. 그 감옥의 가장 이 상적인 형태는 자기의 감옥 옆에 다른 이의 감옥이 있음을 아는 것이라고 했지. 감옥에 있으면서 감옥인 줄을 모르는 모든 이들의 이름을 빌려 너 에게 편지를 쓴다. 자기도 시끄러움의 한 요소를 만들면서 세상이 시끄럽 다고 말하는 모든 이들의 이름을 대신하여 너에게 편지를 쓴다.
아, 나를 대신하여 너에게 편지를 쓴다. 나는 욕망투성이다. 욕망투성이 면서 욕망이 없다고 중얼거린다. 늙어갈 줄 모르는 늙은 이들을 대신하여 너에게 편지를 쓴다. 매일 꿈꾸면서 꿈꾸지 못하는 이들을 대신하여 너에 게 편지를 쓴다. 매일 노래를 들으면서 자기는 노래하지 못하는 이들을 대신하여 너에게 편지를 쓴다. 새의 날개를 바라보면서도 자기의 날개는 달 줄 모르는 이들을 대신하여 너에게 편지를 쓴다.
결혼하는 이들을 대신하여 너에게 편지를 쓴다. 결혼하면서 실은 결혼하 지 않는 모든 이들을 대신하여, 사랑하면서 실은 사랑하지 않는 모든 이 들을 대신하여, 그리워하지 않으면서 실은 그리워하는 모든 이들을 대신 하여, 작별하지 않으면서 실은 매일 작별하는 모든 이들을 대신하여, 고 독하지 않으면서 실은 고독한 모든 이들을 대신하여, 봄, 너에게 편지를 쓴다.
강은교/ 시인
© 한겨레신문사 1997년03월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