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1997년03월20일 제 149호 한겨레21

남한도 체제 붕괴?

김진경/ 시인·교육평론가

주체사상을 정립한 황장엽의 망명사실을 놓고 북한체제의 붕괴가 임박했 다고 흥분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런가 하면 이 흥분하는 목소리가 철 지 난 매카시 선풍을 불러일으키지 않겠는가 하고 우려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이 흥분하는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내 머리를 스치는 것은 엉뚱 하게도 “제 발밑이 무너지는 것부터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고부터 정신없이 터져나온 전두환 노태우 비리,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장학로 비리, 노동법 안기부법 날치기 파동, 한 보사태 등의 대형사건은 단순히 우발적인 사건의 연속으로만 보이지 않는 다. 이제까지 남한을 유지시켜온 한 체제의 붕괴로 느껴지는 것이다.


황장엽 망명 부른 ‘견해차이’

남한은 잘 알다시피 60년대 이래 자본주의 진영에서 놀라운 성장을 보인 나라이다. 북한 역시 60년대 이래 사회주의 진영에서 놀라운 성장을 보인 나라이다. 이 놀라운 성장의 동력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유교적 가족 주의로부터 그 힘이 나왔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수령관을 핵심으로 하 는 주체사상은 사회주의에 적응한 유교적 가족주의이며 유교적 가족주의 의 전 사회적 확대이다. 이러한 사상에 기반하여 형성되는 유일체제는 사 회구성원에 대해 강력한 동원력을 갖는다. 이 강력한 동원력이 놀라운 성 장을 가져온 힘이었다. 60년대 박정희 정권 이래의 성장이데올로기 역시 자본주의에 적응한 유교적 가족주의였다. 우리의 성장기를 돌아보면 이 점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는 아버지나 큰형을 중심 으로 온가족이 힘을 모으는 동원체계는 매우 강력한 것이었다. 그리고 집 안을 일으키기 위해 장남은 대학에 보내고 누이는 공장으로 보내는 아버 지의 권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국가적으로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관이 장 자 구실을 하는 가부장적 권력체계는 강력한 동원력을 갖고 있었다. 이 강력한 동원력이 놀라운 성장의 힘이었다. 결국 사회주의냐 자본주의냐 하는 차이는 있었지만 남과 북에 똑같이 유교적 가족주의에 근거한 가부 장적 권력체계가 서 있었던 것이다.

이제 유교적 가족주의에 근거한 가부장적 권력체제는 남과 북 모두에서 붕괴되고 있다. 어쩌면 붕괴되고 있다는 것은 과장일지도 모른다. 크게 이완되고 있다거나 조정과정에 있다는 것이 현실적인 판단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황장엽 망명사건은 가부장적 권력체제의 이완 조정과정에서 불거 져 나왔다. 결정적인 것은 수령관의 차이, 주석직의 승계 문제에서의 견 해차이일 가능성이 크다. 수령은 매우 비범한 인물일 수밖에 없는데 아들 이라고 해서 수령이 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수령은 죽어서도 계속 수령이어야 하지 않는가? 이러한 문제에서 혁명1세대인 황장엽 세대와 사 회주의 체제에서 태어나 사회주의 체제에서만 자란 김정일 세대 사이에 심각한 견해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수령관에서의 견해 차이는 곧바로 주 석직의 승계문제로 된다. 수령만이 주석직에 취임할 수 있는 것이라면 어 떤 견해를 취하느냐에 따라 주석직은 계속 공석일 수도 있고 김정일이 승 계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견해차이는 황장엽의 망명을 부를 만큼 심각한 것일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볼 때 왜 그동안 김정일의 주 석직 승계가 미뤄져 왔는지, 왜 황장엽의 망명과 함께 혁명1세대가 정리 되면서 김정일의 주석직 승계가 점쳐지는지 이해할 수 있다.


노동운동 통제는 경제적 자해행위

그런데 막상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황장엽의 망명이 남한의 가부장적 권 력체제의 이완과 조정과정에 어떤 영향을 끼치겠는가 하는 것이다. 이 물 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왜 남과 북에서 가부장적 권력체계가 흔들릴 수밖 에 없는가 하는 물음에 먼저 답해야 한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기술경쟁시 대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낮은 기술 수준의 산업이 주가 되던 때는 헌 신적인 단순 기능인력의 대규모 동원은 무의미하다.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인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가부장적 권력체계는 헌신적인 단순기능인력의 대규모 동원에는 효율적이지만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인력을 양성하고 동 원할 수 있는 체계는 아니다. 가부장적 권력체계는 기술경쟁시대에 맞지 않는 것이다. 남과 북은 이러한 사회 경제적 변화에 적응해가기 위해 몸 살을 앓고 있다. 가부장적 권력체계가 이완되는 모습이 보이는가 하면, 그에 못지 않게 그것을 지키고자 하는 수구적 흐름도 있다. 예컨대 노동 운동에 대한 통제는 저기술 산업이 주가 되던 때에는 일시적으로 경제에 도움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첨단산업이 주가 되는 시기에는 경제적 자해 행위가 된다. 노동운동의 성장과 임금상승은 기업을 기술개발을 통한 이 윤 확대로 내몰기 때문에 경제발전의 중요한 동력이 된다. 기업들이 여전 히 관에 의존한 노동운동의 통제에 미련을 갖는 것은 쓴약을 먹지 않으려 는 어리석은 짓이다. 우리는 노동법 개정과정에서 이러한 기업의 수구적 인 태도를 많이 보아왔다.

우리는 황장엽의 망명이 가부장적 권력체계를 변화시키려는 남한사회 내 부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은 방향으로 작용하지 않기를 바란다. 황장엽의 망명을 활용하는 자는 제 발밑이 무너지는 것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 일 뿐 아니라 역사에 대한 범죄자이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3월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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