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1997년03월20일 제 149호 한겨레21

21세기 인간상, 흥부야 나와라!

김영호/ 경북대교수·경제학


왜 다시 흥부인가

20세기 후반 세계사의 가장 큰 사건은 옛 소련의 몰락이라기보다 오히려 일본의 등장인지 모른다. 특히 1980년대 초 일본은 한때 세계 금융자본의 약 40%, 세계특허의 약 40%를 점유하면서 빅토리아 여왕시대의 영국 이래 역사상 최대의 채권대국이 되었는데 그것은 사무라이적 인간상에 의해 주 도됐다. 사무라이는 공동체를 깨고 나온 독립적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를 유지·강화하는 대변자다. 따라서 사무라이 자본주의는 안으로 일본 시민 사회의 미성숙과 밖으로 세계경제의 불균등성을 매개하고 있고, 최근 일 본 시민사회의 성장과 세계경제의 균형회복으로 심각한 후퇴를 맛보지 않 을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21세기는 어떠한 인간상에 의하여 주도될 것인가? 결론부터 이 야기한다면 나는 흥부적 인간상이라고 하고 싶다. 흥부적 인간상이란 무 엇인가.

우리는 1960년대 후반 근대주의가 한창 휩쓸고 있을 무렵 흥부비판에 열 을 올린 적이 있다. 흥부는 자기 재산도 지키지 못한 ‘권리 위에 잠자는 자’요, 책임지지도 못하면서 수많은 자식을 낳아 고생만 시킨 무책임한 가장이며, 그러면서도 끝내 스스로의 문제해결의 길을 찾지 못한 무능력 자이며, 우연히 제비의 도움으로 신비하게 부자가 된 허무맹랑한 자라고 비판했다. 그래서 `흥부전'을 교과서에서 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흥부비판은 당시의 근대주의적 사조 속에서 상당한 호응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국문학쪽과 교육학쪽에서 흥부비판논문이 나온 것은 그뒤의 일 이다. 당시 천민자본주의적 풍토 속에서 흥부대신 놀부를 긍정적으로 재 해석하는 해석법이 제법 인기를 끌고 있었다.

그러나 근대주의에 대한 회의가 일면서 흥부에 대한 원초적인 애정이 서 서히 되살아났다. 그러다가 개인적으로 작은 사건이 하나 생겼다. 언젠가 강의실에 늦게 도착해 숨을 헐떡이며 강의를 시작하다가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최영 장군의 말을 인용한다는 것이 그만 ‘돌보기를 황 금같이 하라’고 해버렸다. 학생들의 폭소소리를 듣고서야 실수한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다음 순간 실수로 잘못한 말의 의미에 스스로 멈칫했 다.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말이 무소유정신을 가르친 것이라 면, 역으로 ‘돌보기를 황금같이 하라’는 말은 흔해빠진 돌조차도 무심 히 보아 넘기지 말고 무한한 가능성을 살려보자는 혁신(Innovation)의 정 신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렇다면 <흥부전>에서 흥부가 박을 타니 별의별 것이 다 나오는데, 쌀도 나오고, 비단도 나오고, 한약재도 나오고, 금도 나오고, 심지어 이본(異本) 중에는 금방 천리를 달리는 축지미투리도 나 온다. 이것을 다양한 혁신의 가능성을 다룬 것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 까. ‘돌보기를 황금같이 하라’는 것보다 ‘박보기를 황금같이 하라’는 것이 훨씬 한국적이고 서민적이고 또 상징적이다. 물론 <흥부전>은 선행 을 하면 보은이 이루어진다는 도덕적 해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모래에서 반도체가 나오고, 은행잎에서 기넥신이 나오고, 게나 새 우껍질에서 의학용 신소재 키토신이 나오는 판국인데 박에서 비단이 나오 고 금이 나온다는 상징이 기술혁신의 문제를 문학적 차원에서 다룬 소설 이라고 상상해도 별로 이상할 것이 없다.


박의 기적, 그 과정을 들여다보면…

(사진/아영면 성리 입구에 설치된 `흥부전' 상징 조형물. 남원시는 지난 95년 성리를 흥부 발복지로 지정했다.)

사실 <흥부전>에는 박에서 쌀이나 비단 또는 금이 나오는 결과만 나오지 그 과정에 대한 설명이 없다. 과정의 이노베이션을 상정하는 부분이 비어 있고 그 빈부분이 신비적으로 채워지고 만 것이다. 그러나 `흥부전'의 여 러 이본 중에는 이노베이션을 엿보게 하는 부분도 없지 않다. `춘향전'이 지배층에 대한 신분적·계급적 저항을 형상화한 데 비하여 `흥부전'은 농 민층 분해과정에서 놀부라는 지주적 부농의 형성으로 토지소유에서 배제 된 흥부와 같은 서민들이, 비지주적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는 과정을 희망 적으로 드라마틱하게 형상화한 것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마음을 옳게 먹고’, 놀부와 같은 지주에의 의존도 포기하고, 온갖 품팔이 노동으로 살길을 찾아보기도 하다가 결국은 제비를 등장시킨 전혀 엉뚱한 과정으로 새로운 부를 이루게 된다. 제비의 등장에서 박의 기적이 일어나는 과정을 주의깊게 살펴보면 상공업적 부농, 경영적 부농의 행태를 엿볼 수 있고, 그것도 국제적 시야 내지 국제적 범위를 갖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우선 제비가 등장하기 전에 흥부 내외는 ‘역곡주인(易穀主人)역인지기’,‘각 읍주인(各邑主人)삯질가기’, ‘말질싣기’ 등의 상업적 부분에서 학습과 정을 거쳤다. 그뒤 다리 부러진 제비새끼를 치료하는 데 당장 등장하는 것이 ‘오색당사’(五色唐絲)실이다. 치료를 받은 제비는 바다 건너 강남 으로 날아가고, 강남에서 받은 박씨를 물고 중국천지를 돌고 황해를 건너 다시 조선천지를 돌아 온갖 물산의 정보를 갖고 남원땅 흥부집으로 돌아 온다. 그리고 나중에 박을 타보니 박에서 나온 물품이, 경판본(京版本)의 경우에는, 진귀한 한약재 비단 한산모시 그릇 등의 수공업제품, 일본 중 국으로부터의 각종 유기제품 등이다.

또 ‘울안에 벌통 놓고’, 울밖에 원두 놓고’ 등 온갖 비지대(地代)적 경영의 흔적이 나타나고 있으며, 박 에서 나온 물품은 금방 화폐가치로 계산되고 상품으로 상정된다. 이것은 모두 흥부의 부가 지주적 부가 아니라 전혀 새로운 형태의 부 즉 경영적 부이며, 국제무역적 연계를 가진 부인 것을 알 수 있다. 새로운 부 창출 의 가능성이 박에서 기적이 나오는 것으로 재미있게 형상화되고 있는 것 이다. 이 과정에 흥부는 타력의존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철저하게 창조적 이고 혁신적인 자세를 보여준다. 놀부적인 지주자본에의 의존도 철저하게 포기하고, 온몸을 던져 노동하고, 노동 자체로 먹고 살 수 없는 상황에서 도 끝까지 착한 마음과 밝은 희망을 갖고 상공업과 공예작물경영 등의 새 로운 방법으로 비지주적 부를 창출해낸다. 박에서 기적이 일어났지만 그 것은 결과적으로 처음부터 박에서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대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쓰레기보기를 황금같이 하라’

(사진/남원시 아영면 성리 주민들이 해마다 정월 초삼일 춘보제를 올리는 공구재 제단. 주민들은 춘보가 흥부의 모델이라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박의 기적으로 표현된 혁신의 과정논리가 아직도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한계는 오히려 기회로 역이용될 수 있다. `흥부전'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또 판소리부르는 소리꾼에 따라 조금씩 내용이 달라 져 많은 이본이 있음을 생각하면 오늘날의 문제의식을 가미한 이본이 하 나 추가된들 이상할 것 없을 성싶다. 흥부는 모든 한국인의 가슴에 살아 있는 영원한 인간상이지만, 그 흥부상을 재해석하고 이본을 추가하는 형 태로 끝없이 재생하고 성장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말하자면 당시의 놀부적인 지주형 부농과 그것을 뛰어넘는 흥부적인 비지 주형 부농의 비전을 오늘날 한국경제의 지대추구형 부, 또는 남의 소득을 이전받아 이룩되는 제로섬 게임적 부의 축적형태를 뛰어넘는 기술혁신형 부 또는 포지티브섬 게임의 비전으로 연결시켜, 그러한 비전으로 본 `흥 부전'의 재해석과 그 재해석을 더욱 선명하게 반영한 이본의 구성이 요구 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한 흥부상의 재발견과 재구성으로 우리 시대 의 정치경제사적 과제, 즉 지대추구형 부를 혁신추구형 부로, 차용형 경 제를 창조형 경제로, 요소투입형 성장을 부가가치증가형 성장으로 전환하 는 일을 성취해 보자는 것이다. 한국경제의 선진화는 악명높은 놀부형 인 간상이 아니라 흥부형 인간상에 의해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앞에서 돈키호테적 인간상-로빈슨 크루소적 인간상-카우보이적 인 간상-사무라이적 인간상에 이어 흥부적인 인간상을 제시했다. 이 문제는 세계문화사적 시야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지만, 우리가 흥부를 새로운 인 간유형의 대안으로 주목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돌보기를 황금같이 하는 창조적 혁신의 인간유형이라는 점이다. 모든 것을 다 뺏기고 최저변으로 떨어진 흥부가 인간적 선의를 지키면서 자기의존적 노력을 계속하다가 당시의 서민사회에서 가장 친근한 박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창출해내는 과정은 어떠한 최악의 상황에서도, 어떠한 평범한 소재로부터도 엄청난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희망의 모델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오늘날 정보·기술혁명 아래 세계는 작은 아 이디어에서 엄청난 기회를 잡는 벤처 비즈니스의 셰계다. 그리고 정보화 시대의 벤처 비즈니스의 세계는 신뢰와 협조를 전제로 한 경쟁세계라는 점에서 흥부적 세계이기도 하다. 더구나 박보기를 황금같이 하는 창조적 혁신정신은 환경문제와 관련하여 ‘쓰레기보기를 황금같이 하라’는 말로 바꿀 수도 있다. 그것은 산업화의 부산물인 폐기물을 새로운 발전‘환경 적으로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발전’(ESSD)의 원천으로 연결시키는 길이기 도 하다.


무소유와 환경인의 표상이기도

(사진/전북 남원에서 경남 함양으로 넘어가는 길목인 팔량재. 강도근 명창의 `흥보가' 판소리 창본에는 "흥부가 팔량재 밑에 산다"는 대목이 나온다.)

둘째로, 흥부는 ‘돌보기를 황금같이 하는’ 혁신적 인간상이면서 다시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는’ 무소유형 인간상이다. 흥부는 부모로부터 상속적 부를 함께 물려 받았으나 유산상속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 흥부전'의 표현처럼 ‘춘하추동 사시절에 남의 일만 모두 다 하는 고로 제 벌이를 할 수 없네’ 또는 ‘마음 인후하여 청산유수와 곤륜옥결이라 … 물욕에 탐이 없고 주색에 무심하니, 마음이 이러하매 부귀를 바랄소냐 ’였다. 부자가 된 뒤에 제일 먼저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들아, 흥부집 으로 들어오는 나도 오늘부터 기민(饑民)을 헐란다’고 선언하고 아울러 놀부를 초청하여 재산을 나누어 가질 뿐 아니라 자신이 부를 축적한 ‘노 하우’도 모두 가르쳐준다. 그는 가난의 밑바닥에서도 밝은 인간성을 잃 지 않았지만 부의 정점에서도 따뜻한 인간성에 때묻히지 않았다. 무소유 는 가난해서 가질래야 가질 것도 없는 것을 포함하지만, 부자가 되어도 소유에 집착하지 않는 것도 포함한다. 이것은 청부(淸富)의 정신이기도 하다. 21세기 세계자본주의는 이러한 흥부적 인간상에 의해 주도돼야 구 제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로, 흥부는 일종의 환경인의 상이기도 하다. 오늘날 환경사상의 궁극 적인 도달점의 하나는 동물과 식물의 생존권을 인정하는 광역인권개념이 다. ‘짐승살해를 아니하니 미륵의 벗이로다’라는 흥부는 제비를 먹으려 는 구렁이를 보고 ‘무정타 저 대맹아 너 먹을 것 많었구나 어이타 내 집 에 와서 제비새끼를 먹느냐’고 꾸짖되 죽이지는 않는다. 다리 부러진 제 비새끼를 돌봐주는 정성하며 박씨 심어 박을 키우는 정성 또한 가족사랑 의 경지다. 그는 제비며 박과 인격적 교류를 하는 환경인의 한 경지를 보 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는 기술적 효율을 추구하되 자연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하는 자연의 한 구성원으로 구실하고 있는 것이다. 신<흥부전>은 이러한 환경인적 모델을 더욱 완벽하게 보여주는 내용이 되 어야 할 것이다.

넷째, 흥부상은 정보인 모델의 단초를 보여주고 있다. 지역사회의 이곳저 곳의 밑바닥을 떠돌며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인지라 지역사회 정보에 가 장 밝은 입장이었지만, 다시 제비를 통하여 동남아와 중국대륙 그리고 황 해연안과 조선천지의 정보를 시야에 넣고 있다. 박씨는 국내는 물론 동아 시아의 정보를 다 파악한 반도체인 셈이다. 따라서 박에서 나온 물품은 한국의 각종 물품은 물론 중국과 일본의 제품도 포함되고 있으며 그 제품 가격은 금방 시장가격으로 환산될 정도이다.

마지막 다섯째로 흥부는 각종 이질적인 요소와 대립적인 관계를 껴안고 화해시키는 화해형 인간유형을 보여주고 있다.


‘더불어 사는’흥부적인 정신 필요

흥부는 제비도 끌어안고 뱀도 끌어안고 박도 끌어안고 모든 이질적인 요 소를 끌어안고 결합시키면서 혁신을 연출했지만, 다시 가난한 사람도 포 용하고 자신으로부터 모든 것을 빼앗아간 놀부형 인간도 포용하고 그리고 모든 것을 나누어준다. 그는 남의 부를 이전받아 자신의 부를 늘리는 제 로섬 게임의 승자가 아니라 새로운 부를 창출하는 포지티브섬 게임의 승 자이며, 그러한 포지티브섬의 결과를 공동체의 구성원과 함께 나누어 가 지면서 화해의 공동체를 이룩해 나간다.

한국은 동북아의 틀 속에서 경합하고 있는 4강을 끌어안고 화해시키면서 동북아의 평화와 협력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점에서 흥부적 화해상은 매우 시사적이다. 아울러 국내의 노사간·지역간의 모순을, 그리고 북한 동포의 굶주림을 흥부적 정신으로 끌어안아야 한다. 한국이 넘어야 할 아 리랑 고개는 아직도 많고 그것을 넘기 위해서는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 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는 ‘함께 사는 정신’이 중요하고 그런 점 에서 선진화도 통일도, 동북아 4강의 평화협력의 증진도 흥부적인 함께 사는 정신이 절실히 요청되는 것이다.

한국인이 창출한 가장 평범하고 가장 비범한 흥부상의 현대적 재현이야말 로 바로 위기에 빠진 한국의 사회경제적 ·국제적 한계를 극복하는 길이 며, 21세기 세계사의 문명적 전환의 대안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남원의 흥부축제를 국민축제로, 나아가 세계인의 축제로 승화시키면서 신 흥부가 판소리와 함께 우리 모두 스스로 흥부적 인간상을 닮아가보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3월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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