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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03월13일 제 148호 한겨레21

교수임용 파행 여전

(사진/교수임용공고. 교수를 꿈꾸는 많은 이들은 이 공고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대학의 교수채용이 여전히 파행으로 얼룩져 있다.

재단이사장의 낙하산식 교수임용이나 총장의 자기사람 심기는 물론이고 교수임용을 둘러싼 거액의 금전수수도 근절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 다.

지난 2월28일 서울대 교수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교수공정임용을 위 한 모임(회장 박창고·강원대 지구물리학)이 최근 이 모임에 제보된 50여 건의 교수임용 비리 가운데 자체 확인을 거쳐 공개한 25건의 사례는 교수 임용을 둘러싼 고질적인 불공정 비리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총장 한마디면 전공 불문 교수채용

이 모임이 소개한 불공정 임용의 주요 유형은 △금전수수 △지연 학연 친 소관계 작용 △정·재계 유력인사의 청탁 △ 학문적 자질이 뛰어난 사람 배제 △국립대의 교수담합 등이다.

지방의 ㄷ사립대는 인문사회학부의 한 교수를 우두머리로 해서 10여명의 신임교수에게서 도서기금 명목으로 수천만원씩의 기부금을 받아냈다. 이 대학은 특히 교수임용 이후에 시간강사 급여를 지급해오다 기부금을 낸 뒤에야 교수 급여를 지급하는 편법을 동원했다.

지방의 ㅈ사립대의 경우 대학설립인가를 받기 이전에 교직원 공채를 해, 총선에 출마한 이사장의 선거운동원 등으로 활용한 뒤 별다른 이유 없이 모두 해직시켰다. 그러나 최근 다시 개교예정이라며 교직원임용 공고를 일간지에 내고 있어 ‘임용사례비’를 챙기기 위한 의도가 아니냐는 의 혹을 받고 있다. 이 학교는 최근 시설과 도서 부족 등으로 교육부로부터 학교설립신청인가조차 반려받은 상태이다.

공개된 임용비리 가운데 재단 이사장이나 총장 등 대학의 유력자가 직접 교수임용에 개입해 낙하산식 인사를 하는 바람에 교수·학생의 반발을 사 는 사례가 큰 비율을 차지했다.

지방의 ㅅ사립대는 신규임용 과정에서 총장이 일방적으로 낙점하는 바람 에 애초 뽑으려고 했던 전공과 전혀 다른 엉뚱한 전공 출신들이 뽑혀 학 과 교수들의 원성이 드높은 경우이다. 이 학교 총장은 자신이 주는 면접 점수가 절대적인 비중을 갖는‘불합리한’ 신규교원 심사기준을 악용해 학과심사에서 전공분야가 틀려 교수들이 부적격 판단을 내린 후보자를 교 단에 세운 것이다. 교양과정의 전산개론 전공자를 뽑겠다고 공고를 했으 나 신규 채용된 교수의 전공은 응용통계였으며 경제사는 설비투자, 정보 통신은 제어 및 신호처리 전공으로 둔갑해 버렸다.

서울의 ㅎ사립대는 대학설립자의 친척을 교수로 임용하기 위해 학과에서 전혀 필요하지 않은 전공 분야 교수를 한명 더 뽑았다. 특히 이 과는 교 수 대 학생 비율이 다른 학과에 비해 상당히 낮은 편이었고 또 신규 채용 자의 연구 업적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편이어서 무리한 임용이라는 비난 을 샀다.

지방의 ㅂ사립대 역시 학위논문을 제외하고는 연구업적이 전무해 학과 심 사에서 최하위를 차지한 후보자를 이사장이 직접 임용해 인사권 횡포라는 지적을 받았다.

불공정 임용항의 교수 강의 박탈

일부 대학에서는 교수임용에 대기업 회장이 개입한 사례도 있었다.

ㄱ그룹 회장은 최근 서울의 명문 ㅅ대 교수 채용과정에서 친분관계가 있 는 이 학교 퇴임교수의 자녀가 학과심사에서 탈락하자 총장에게 항의의 뜻을 전달해 신규교원임용 자체가 백지화되기도 했다. 특히 해당 대학 학 장은 직접 학과심사에 참여했으면서도 재벌회장의 항의 등이 있자 스스로 결정을 뒤집어버려 일부 교수들이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교수채용을 둘러싼 잡음은 국공립대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지방의 한 국립대는 전국경영학회 선정 최우수논문상을 받은 후보자보다 학술지에 공식적으로 실리지 않아 논문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정책보고서 를 연구실적으로 제시한 쪽에 훨씬 높은 점수를 주었다. 모임에 따르면 이 학교는 정권의 실세와 가까운 총장이 교수임용을 주도해 학과의 일부 교수들이 특정인을 채용하기 위해 담합하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학문적 자질이 뛰어난” 후보자들은 모두 포기하거나 다른 대학으로 가게 되고 결과적으로 해당 학과는 최근 4년 동안 단 1명의 교수도 뽑지 못하게 되 었다는 것이다. 또 교수들의 불공정한 담합에 반기를 든 이 학과의 고아 무개 교수는 13년째 해오던 강의를 박탈당하는 불이익을 당해야 했다. 이 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고 교수는 “올해부터 실시하는 최소전공학점 인정 제 때문에 학과의 강좌를 조정하면서 계속 맡아오던 관리회계 등 경영학 과 강좌 3개를 모두 없애고 이를 회계학과로 떠넘겼다”며 “공정한 교수 임용을 주장하다 생존권까지 위협받게 됐다”고 허탈해했다.

또다른 국립대는 응모하지 않은 같은 학교 출신 특정인을 교수로 뽑기 위 해 일부 교수들이 담합해 97년 신규 교수요원으로 응모한 후보자 2명에 대해 부적격 판정을 내렸다. 이 가운데 1명은 권위있는 국제학술지에 논 문이 실리는 등 학문적 성과를 인정받고 있음에도 탈락시킨 데 대해 해당 학과 일부 교수들은 담합의혹이 짙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밖에 대학의 실력자가 미는 특정인을 뽑기 위해 교수임용 절차마저 무 시해버리는 곳도 여러 군데 있었다.

서울의 ㅇ사립대는 공식적인 통로를 통해 지원한 후보자 4명을 면접에서 모두 떨어뜨리고 서류제출 기한을 넘겨 접수한 후보자 3명을 전부 임용했 다. 물론 대학의 유력 교수가 미는 특정인을 뽑기 위해서이다. 특히 신규 임용 교수 1명은 연구업적이나 경력 등에서 탈락한 후보들에 비해 현격하 게 떨어져 일부 교수들이 심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성직자를 길러내는 한 대학은 박사학위 소지자로 자격제한을 하고도 버젓 이 박사학위가 없는 부적격자를 2명이나 뽑았다. 이 대학은 이전부터 원 로나 보직 교수 가운데 미국에서 학위를 인정하지 않는 가짜 박사 취득자 가 여러 명 된다는 보도가 나와 구설수에 오른 적도 있었다.

모임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경력 등 서류조작은 지금도 일부 대학에서 공 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경력은 물론 학위까지 조작하기도

지방의 ㄷ전문대는 경력의 허위기재를 통해 이사장의 친인척을 대거 교수 로 발탁했고 또다른 지방의 ㅁ대는 총장의 박사학위가 위치조차 확인할 수 없는 유령대학의 학위인 것으로 판명돼 ‘가짜박사’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고 모임은 전했다.

교수공정임용을 위한 모임의 간사를 맡고 있는 <한국의 대학교육시장> 저 자인 장정현씨는 “몇년 전까지 금품수수나 인사청탁 등을 통한 불공정 임용이 대부분이었으나 요즘은 자기사람이나 파벌, 제자심기 등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며 “자기사람 심기를 통한 불공정은 당사자들이 마치 당연 한 자기 권리처럼 생각해 죄의식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데 문제의 심각성 이 있다”고 전했다.

장 간사는 또 “금전거래도 과거처럼 내놓고 하는 경우가 줄어들었을 뿐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며 “돈을 거두는 주체가 재단관계자에서 교수로 바뀌고 도서기증 등의 형태로 이루어지는 등 기부금 징수 수법이 교묘해 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모임 상담이사인 서울대 이정민 교수(언어학)는 “지난해 서울지검에 교수임용비리 자료 26건을 제출했으나 검찰은 시급한 다른 형사사건이 많 다며 수사를 미루고 있으며 `‘자료를 더 보내주겠다’고 해도 응답이 없 는 실정”이라며 불공정 교수임용에 대해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에 나서 줄 것을 촉구했다.

이 교수는 또 “이번에도 금품수수와 인사청탁이 확인된 몇건에 대해 해 당 대학에 해명을 요구하는 한편 관련자료를 검찰에 보내 수사를 요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 모임은 포항공대 인하대 아주대 등 3개 대학이 엄격한 교수채용 기준을 채택하고 연구업적 중심으로 교수를 평가해온 점에서‘모범교수임 용대학’으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95년 5월 창립한 이 모임은 교수 3백50여명과 대학강사, 연구원 40여명이 참여하고 있으며 이번을 포함해 지금까지 세차례‘교수불공정임용사례’ 를 발표했다.

강성만 기자/ 한겨레 사회1부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3월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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