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1997년03월13일 제 148호 한겨레21

총파업, 다시 전운이 감돈다

(사진/다시 거리로 나가 싸울 것인가. 민주노총은 총파업과 범국민적 불복종운동 사이에서 투쟁방식을 고민하고 있다.)

노동법 개정을 둘러싼 정치권과 노동계의 충돌이 또다시 재현될 조짐이다 .

국회로 넘어온 날치기 노동법 재개정 시한인 지난 2월28일까지 개정안을 도출하지 못한 여야 정치권은 오는 8일까지 협상을 마무리짓겠다며 노동 자들에게 파업 등 극한 행동을 자제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노동계 는 더이상 참을 수 없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 악법에 대한 범국민적 저항운동을 전개하겠다”고 이미 선언했다.

상급단체 복수노조 허용만 건져

여야가 8일까지 단일안 마련을 약속한 상황에서 노동계가 이렇게 강하게 반발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재계와 노동계의 눈치를 보며 적당한 선에서 봉합을 시도해온 정치권이 설사 8일까지 단일안을 마련한다 해도 노동계로서는 크게 기대할 게 없다는 판단이 지배적인 것이다.

민주노총 등 노동계는 현재까지 여야협상에서 원칙적인 합의에 이른 11개 항목만으로도 ‘날치기 법안과 다를바 없는 개악안’이라고 평가하는 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민주노총 정성회 대외협력국장은 “정리해고제 도입 에 합의해 국민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봉급생활자들의 생활권을 유린했 고, 신규 하도급까지 대체근로를 허용하는 등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을 결 정적으로 침해하고 있는 협상안은 날치기 노동법과 크게 다를바 없다”고 잘라 말했다.

노동계가 협상중인 법안에 대해 ‘개악안’이라는 비난을 서슴지 않는 근 거는 이렇다. 먼저 여야는 그동안 협상에서 신한국당조차 국민적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삭제한다고 홍보했던 정리해고제를 재벌과 경제 부처의 반 발에 밀려 2년 유예를 전제로 도입하기로 했다. 쟁의기간중 대체근로의 경우도 비조합원은 물론 신규하도급까지 허용하기로 합의해 사실상 파업 권을 빼앗았고, 공무원과 교원의 노동기본권과 쟁의행위 제한에 관한 논 의를 회피하는 방식으로 실체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전교조의 합법화를 가 로막았다. 또 노조에 대한 행정관청의 업무조사권도 계속 유지하기로 해 노조를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을 계속 유지시켰다.

노동계의 불만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날치기 법안에 포함된 퇴직금 중 간정산제는 아예 개정 대상에서조차 빠졌다. 또 파업기간중 임금지급 금 지(무노동무임금), 직권중재, 사업장내 쟁위행위 금지 등 노동자의 단체 행동권을 근본적으로 가로막는 수많은 조항들은 그대로 방치한 채 몇몇 내용 바꾸기 수준에서 여야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는 게 협상을 바라보는 노동계의 시각이다.

결국 현재까지의 진행상황을 미루어 짐작할 때 상급단체에 복수노조를 허 용하는 것을 제외하면 실제로 아무 것도 달라진 게 없는 안이 나올 수 밖 에 없다고 노동계는 전망하고 있는 것이다.

여야 협상 결렬 뒤 현재 진행되는 협상과정을 살펴보면 이런 노동계의 전 망은 단순한 기우가 아닌 현실임을 알 수 있다.

단일안 마련에 실패한 뒤 가진 지난 2일의 실무협상을 통해 여야는 재개 정의 걸림돌이 되는 6개 핵심 쟁점사항 가운데 몇몇 부분에 대해 상당한 의견 접근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무노동 무임금’ 조항에 대해서 는 선언적인 규정은 두지만, 기업의 자발적인 지급은 막지 않는 쪽으로 의견을 접근시켰다. 또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문제는 전임자 임금지급분 을 매년 20%씩 삭감해 2002년에는 완전히 지급하지 않는다는 방안을 놓고 집중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논란이 됐던 대체근로 의 경우도 결국 동일사업장 안 비조합원과 신규하도급에 한해 허용하는 선에서 합의했다는 것이다. 신한국당의 한 고위관계자도 2일 “핵심 쟁점 에 대한 의견이 상당히 접근한 상태”라며 “이르면 8일 이전에라도 여야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곤혹스러운 한국노총

문제는 노동계의 대응이다.

민주노총은 현재 즉각적인 총파업에 돌입하는 방법과 곧 시작되는 임금 및 단체 협상(임단투)과 연결해 ‘개악조항’에 대한 범국민적 불복종 운 동을 전개하는 방식을 놓고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경고 파업 등을 즉시 전개할 것을 주장하는 강경론과 협상 국면에서 파업을 단 행할 경우 여론이 불리하게 작용하고 현실적인 조직 역량 등을 고려해 볼 때 불복종운동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민주노총은 5일부터 여야 지구당사 항의 농성과 국회앞 집회 등 을 통해 정치권을 압박하면서 민주노총 산하 노조간부들의 밤샘농성으로 노동현장의 투쟁역량 결집과 열기를 높여간다는 방침을 확정한 상태다. 총파업 여부는 사태를 더 지켜보면서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한국노총은 단일안이 개악으로 끝날 것이라는 전망에는 동의하지만 별다 른 대응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정식 기획조정국장은 “할 수 있는 투쟁은 다했지만 결국 정치권은 야합으로 가고 있고, 대화국면에서 물리 력을 동원한 총파업을 하기도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며 곤혹스러워 했다 . “현재 진행되고 있는 단위 사업장의 임단투와 연결해 개정 노동법 무 력화 운동을 펼치면서, 5월1일로 예정된 전면 총파업을 앞당기는 노력을 통해 정치권 협상을 압박하는 방법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게 그의 설명 이다.

신승근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3월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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