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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
1997년03월13일 제 1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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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재일동포 작가 유미리씨. "비열하기 짝이 없는 행위를 규탄" 하는 한편 "단호하게 싸워나가겠다"는 태도를 밝혔다.)
올 초 일본 문학계에서 최고의 권위로 인정받고 있는 아쿠다가와(芥川)상 의 제116회 수상작가로 선정된 재일동포 작가 유미리씨의 작품 사인회가 협박전화로 인해 중단된 사건이 한-일 두 나라 국민 사이에 미묘한 파장 을 낳고 있다. 프랑스의 <르몽드>는 이례적으로 이 사건을 즉각 보도하면 서 “일본판 샐먼 루시디 사건”으로까지 해석하는 등 국제적인 관심도 불러일으켰다.
전화 한 통화에 표현의 자유가 침몰
유미리씨는 아쿠다가와상 수상작인 <가족시네마>와 또다른 작품 <물가의 요람>의 작품 사인회를 지난 2월20~21일 이틀 동안 도쿄와 요코하마의 서 점 4곳에서 열 예정이었다. 사인회는 작가가 직접 독자와 접촉해 작품을 소개하는 문단과 출판계의 일반적인 행사. 그런데 이 단순한 행사가 폭발 위협에 직면했던 것이다.
2월14일부터 19일까지 사인회 개최 예정지인 서점에 정체불명의 30~40대 남자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걸려온 전화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나는 ‘신우익’이며 ‘독립의용군’이다.” “사인회를 중지하라, 유 미리는 조선인이고, 일본인을 바보취급하고 있다.” “만약 중지하지 않 으면 손님들이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폭발물을 장치하겠다.”
사인회를 주최한 출판사인 고단샤(講談社) 홍보실 스키모토 실장은 협박 전화가 있은 이후에도 사인회 개최를 다방면으로 검토했다. 하지만 상대 방의 실체가 분명하지 않고, 만약의 경우 상당한 혼란과 피해가 우려되는 점, 특히 폭발물 설치 위협 전화가 개최 전날인 2월19일 걸려옴으로써 효 과적인 대응이 어렵다는 점 등 때문에 부득이 사인회를 취소할 수밖에 없 었다고 밝혔다.
그는 한통의 전화로 중대한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는 결과를 낳는 것이 안 타까웠지만 물리적으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일이 불가능했음을 강조 했다. 동시에 중지 결정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는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들 이겠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전례를 찾아볼 수 없었던 작가의 사인회 중지에 대한 일본 문단 의 관심도 상당히 높은 편이다.
일본 펜클럽은 오자키 회장의 이름으로 발표된 성명에서 “언론의 자유를 지키고, 민족차별에 반대하는 펜클럽헌장의 정신을 바탕으로 이러한 비열 하기 짝이 없는 행위를 규탄”하는 한편 “단호하게 싸워나가겠다”는 유 미리씨의 태도를 지원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일본 내에서는 이번 협박전화 소동에 큰 의미를 두지 않으려는 분 위기가 지백적이다. 한-일간의 감정적 대립구도에 편승한 범인의 의도를 일단 수준 이하의 돌출행동으로 치부하고 있다. 대중들의 표면적인 반응 도 표현과 언론의 자유에 대한 침해로 반격하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재일동포사회의 대표적인 신문인 <통일일보> 논설주간 김총령씨는 이번 소동을 이렇게 분석한다.
“유미리씨의 작품은 어떤 정치적 주장이나 메시지를 담고 있지 않다. 따 라서 정치적 주장이 다르기 때문에 일어난 일로 보기 어렵다. 단지 추측 이긴 하지만, 유씨에 대한 반발이 있을 수 있다면 아마도 잡지 등을 통해 발표된 말 중에 ‘과연 이 나라 이 땅에 행복한 가족이 존재하는가’라는 발언이 문제가 됐을 가능성이 크다. 어떤 한 인간이 자신에게 되물어보는 이 발언을 범인은 ‘일본에는 행복한 가족이 없다’는 식으로 해석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요즘 일본사회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 는 ‘자학적 역사관’에 대한 반발의 측면이 강하다. 이 추측이 맞다면, 이번 협박전화는 단순한 피해의식에서 출발한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인은 용납할 수 없었던 발언?
다시 말하면 “건방진 조선인 젊은 여자가 일본 최고의 아쿠다가와 문학 상을 타고, 일본에 행복한 가정이 있는가라고 반문하는 것을 일본인으로 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정도의 발상으로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라 는 것이다.
김씨의 견해는 대체로 일본지식인사회나 재일동포사회의 일반적 견해를 대변하고 있다. 이번 일이 그 대표성이나 수준으로 볼 때 일본인과 재일 동포 사이에 잠재해 있는 상호인식의 차이에서 오는 ‘차별사건’으로 보 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함으로써 생길 수 있는 불필요한 ‘감정’을 경계하는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의 일본 과거사 문제나 종군 위안부 문제를 보는 일본인들의 인식과 일본 조야의 태도 등을 생각할 때 이번 사건은 그저 단순한 ‘소 동’으로 지나쳐 버리기에는 무언가 ‘찝찝한’ 뒷맛을 남기는 것도 부인 할 수 없는 현실이다.
도쿄=구영 구 통신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3월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