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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
1997년03월13일 제 1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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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아시아의 연대는 서로의 문화를 배우는 데서 시작한다. 꽹과리를 전수받은 청년이 만족스런 웃음으로 연주하는 모습이 어색하지 않다.)
“바 어이바 차오 이에우 바람 톡 바창 바창 느무이.”
지난 1월 중순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버스로 40분 떨어진 하타이성. 서 툰 발음으로 베트남 동요를 부르는 한국 청년들을 베트남 청년들이 거든 다. 어느 나라든 그 나라 말과 음식을 익히려 애쓰면 좋아보이는 모양이 다. 다 큰 청년들이 어린이 노래를 힘들게 따라하는 모습은 웃음이 날 만 도 한데, 베트남 청년들의 눈에는 친근감이 어려보였다.
“덩덩 쿵 따쿵!”
베트남 청년들도 겨우 읽을 수 있는 우리말로 풍물배우기에 열심이다. “ 아니 이렇게”하면서 북채와 꽹과리채를 고쳐 잡아주는 한국 청년들의 손 길에도 따스함이 묻어 있다. 지난 1월7일부터 2월4일까지, 한국 청년과 베트남 젊은이들은 이렇게 동요와 풍물로 서로를 느꼈다.
남녀노소 구분없는 생업전선의 열기
이 만남은 14명 한국 대학생들로 이뤄진 ‘소주’(SOEJU·환경 정의 통합 을 위한 학생조직)의 ‘베트남 활동’에 따라 이뤄졌다. ‘아시아 제3세 계의 개발과 환경을 고민하는’ 소주의 베트남 방문은 경실련 직업훈련학 교에서의 자원봉사와 베트남 환경, 진출기업 실태, 비정부기구(NGO) 활동 조사를 목적으로 이뤄진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 무엇보다도 베트남 청년들과의 만남을 이번 ‘베트남 활동’의 가장 큰 성과로 꼽는다. 소주 회원들이 만난 베트남 청년들은 경실련 직업훈련학교의 훈련생과 하노이 대학 대학생, 그리고 농촌지역 청년 등 다양한 계층에 걸쳐 있었다.
베트남은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갚아야 할 빚이 있는 나라’로 남아 있 다. ‘월남특수’로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해도 과언이 아닌 한국은 언제 부턴가 베트남을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와 다름 없는 ‘못 사는 나라’의 범주에 묶어 생각했다.
그러나 86년 도이모이 개방 정책을 계기로 시장주의 실험을 하고 있는 베 트남은 성장을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상거래가 활발해지면서 어린 아이부터 노인까지 생업전선에 뛰어들고 있다. 공원에는 체중계 하나, 자 전거 공기주입기 하나로 행상에 나선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시내 곳곳 에 공사중인 대형빌딩, 화려해진 사람들의 옷차림 따위가 눈에 띄고, 전 쟁 이후 조국을 등져야 했던 보트피플도 속속 돌아오고 있다. 반면 돈이 ‘신흥종교’로 부상하면서 빈부격차는 벌어지고 자본주의 폐해인 사기· 매춘·마약이 번지고 있었다.
(사진/자전거와 오토바이로 홍수를 이룬 하노이 시내. 마냥 질주하는 모습이 베트남의 미래를 상징하는 듯하다.)
이런 베트남의 현재 모습은 베트남 청년들에게도 그대로 투영된다. 하타 이성에 있는 경실련 직업훈련학교의 27명 훈련생들은 한국의 또래들이 가 르치는 환경·보건위생·문화교류·한국어교육 프로그램에 아주 높은 관 심을 보였다. 농촌지역 출신들인 이들은 배움의 기회가 적었던 탓에 무언 가를 배울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기쁨인 모양이다.
한국어 수업을 맡았던 권현정(숙명여대 국어국문학과 4학년)씨는 “이들 의 꿈은 아주 다양해요. 홍은 의사가 되고 싶어하고, 후이는 통역가가 되 고 싶대요. 반은 축구선수가 되는 게 꿈이구요. 그런데 이들이 ‘이런 것 은 정말 단지 꿈일 뿐’이라고 이야기할 땐 너무 안타까웠어요”라고 훈 련생들의 ‘꿈’을 전한다. 제한된 교육기회와 인구 80%가 농업에 종사하 는 농업국가인 만큼 청년들이 다양한 꿈을 펼치기에는 사회적인 한계가 있는 것이다.
세대간 관심의 차이… 대학·취업 좁은문
학생들과 친숙해짐에 따라 자연히 우리는 그들의 집에 초대를 받게 되었 다. 5호담당감시제가 법에 명시되어 있고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 는 공안이 있어, 우리의 가정방문은 조심스러웠지만 흥미로웠다. 그리고 그곳에서 베트남 청년들이 이전 세대와는 다른 고민을 안고 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훈련생 퉁의 집을 찾았을 때다. 퉁의 아버지는 ‘해방전쟁’에 참전했던 사람이다. 그는 지난 89년 왕래자유화에서 91년 수교까지 한국과 베트남 의 관계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헤어질 때는 분단된 한국 지도를 그리며 “이제 미국을 몰아내고 통일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우리 의 손을 맞잡는다. 이에 비해 퉁은 한국의 경제적 부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 훈련생들과 정치적인 사안을 주제로 이야기하다보면 우리의 대화는 곧 끊기고 만다. 훈련생들이 ‘모르겠다’거나 ‘관심이 없다’라는 말로 끝을 맺기 때문이다. 퉁의 집뿐 아니라 베트남 가정방문에서는 이런 아들 과 아버지의 인식차이가 뚜렷해 보였다. 아들은 전쟁을 모르고 돈을 많이 버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 반면, 아버지는 전쟁에 대한 쓰라린 기억 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하노이대학 학생들과의 교류도 우리가 베트남 사회를 이해하는 데 큰 도 움이 되었다. 베트남에서 대학은 입학 문 자체가 좁고 경제적으로 상류층 이 아니고서는 다니기 힘들다. 이들의 가장 큰 고민은 20%에 이르는 실업 에 대한 불안이었다. 산업 기반시설이나 회사가 고학력자 수요를 충족하 기에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졸업 뒤 진로로는 대부분이 외국 기업에 서 일하기를 원했다. 외국 기업 취직을 위해서는 영어와 컴퓨터 실력이 필수고, 이 때문인지 하노이에는 수백개가 넘는 컴퓨터와 영어학원이 밤 늦게까지 불을 밝히고 있다. 사회주의 베트남에서도 컴퓨터와 영어에 의 해 취직이 결정되는 우리의 현실과 똑같다니! 왠지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 .
하숙집에서 만난 농촌지역 하이퐁출신 하노이 대학생들은 가난으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이 커보였다. 이들은 사회적 기회나 자신의 능력 발휘 기회 가 가난 때문에 제한되고 있음을 느낀다고 말한다.
자본의 물결에 빈부격차 깊어간다
(사진/돈벌이 전선에서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집에서 과자를 구워 거리의 시장에 내다 파는 달랏의 할머니.)
이런 농촌학생들의 우려가 갖는 현실성은 하노이 시내의 북쪽 호따이 주 변의 오토바이족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샤이 롱롱’, 베트남 말로 ‘멋 대로 달린다’는 뜻인 오토바이족들은 옷차림이나 행동에서 서구지향적 냄새가 물씬 난다. 그런데 이들이 바로 오늘날 베트남의 빈부격차를 말해 주는 상징이다. 이들이 타고 질주하는 4백~7백cc 혼다 오토바이 한대 값 이 2천에서 2천5백달러이다. 이를 베트남인 평균 연간소득 2백20달러와 비교해보라. 이들은 주로 상류계층의 자녀들이다. 이렇게 혁명 1세대의 자녀들은 아버지의 높은 신분과 재력으로 일하지 않으면서도 향락적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가난한 농촌학생들의 불만과 불안은 바로 이런 것에서 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그럼 이들은 한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한국 학생들은 왜 그렇게 데모를 많이 하나요? 베트남은 당이 하나이기 때문에 안정적이라서 데모를 할 필요가 없어요.” 사상이 투철해 보이는 한 학생의 말이다. 그러나 대부분 학생들은 “할 수 없기 때문에 안 한다 ”라고 대답한다. 소주 회원인 황정아(이화여대 간호학과 3학년)씨는 “ 학생 중 한명이 사진기자가 되어 세계를 여행하고 싶다고 했을 때, 선뜻 이해를 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황씨는 이들에게 외국여행의 자 유가 없다는 걸 나중에 알았고 “데모를 할 수 있는 한국 학생들에 대해 동경하고 있구나”고 느꼈다고 한다.
한국 청년들은 베트남에 대해 일종의 부담감을 느꼈지만, 그들에게 한국 은 이미 적국이 아니었다. 베트남 청년들은 베트남전에 대해 “미국이 침 략자이고, 한국은 단지 돈을 벌기 위해, 미국 눈치를 보기 위해 참전한 거 아니냐”고 말한다. 이는 전쟁박물관에서 미군의 잔학상은 전시되어 있는 반면 한국군에 관한 자료는 찾아 볼 수 없는 것에서도 잘 나타난다.
두 나라 청년의 대화 속에서 한국 청년들은 베트남의 통일과 미국을 물리 친 민족성과 역사적 자부심에, 베트남 청년들은 한국의 경제성장을 부러 워했다. 그러나 베트남 청년들에게 통일과 전쟁은 이미 잊혀진 일인 듯했 고, 한국 젊은이들은 그들이 한국 경제성장을 부작용을 사상한 채 보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윤종섭(한양대 도시공학과 4학년)씨는 이에 관해 다음과 같은 일화를 전한다.
“서울시내 도로에 빽빽이 늘어선 차들이 뿜어내는 매연을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대기오염에 대해 이야기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학생들은 ‘한 국은 거리에 이렇게 차가 많으니 참 부자군요’라고 말하더라구요.”
‘성장모델국가’ 한국의 책임감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국가의 성장모델이 바로 한국이라고 한다. 이번 활동을 통해 우리들은 그 ‘모델국가’의 젊은이로서 아시아에 대한 책임감이나 역할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아시아국가 대부분은 경제성장 단계에서, 활발한 비정부기구 활동과 국제연대를 통한 친인권적·친환경 적 개발을 이루기 위한 노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우리들은 젊은 청년들의 아시아에 대한 관심과 이를 바탕으로 한 아시아인들의 자긍심 표출이 이 런 노력에 조그마한 보탬이 됐으면 하는 생각이다.
베트남 하타이성=이유진/ 경북대 무역학과 4학년, 임이진/ 성균관대 역사
교육학과 졸업
© 한겨레신문사 1997년03월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