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1997년03월13일 제 148호

오키나와에서 수업 받는다

(사진/"성조기여, 오키나와를 떠나라." 한국의 반기지운동 교류회 방문단이 오키나와를 찾아 반기지운동의 국제연대활동을 벌였다.) )

‘성조기여, 오키나와를 떠나라.’ 한국·오키나와 반기지운동 교류회 방 문단(단장 장정옥)이 이런 문구를 적은 플래카드를 들고 오키나와를 찾은 것은 지난 2월20일이다. 공항에 도착하면서부터 3박4일 동안 이들은 현지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았다. 도착 다음날 오키나와의 주요일간지인 <오키 나와타임스>, <류큐신보> 등은 한국시찰단의 방문을 사회면 주요기사로 다뤘다. 반기지운동을 보려고 외국에서 대규모 시찰단이 찾아온 것이 처 음 있는 일이라는 설명도 곁들여졌다.

공여지 상황마저 ‘군사기밀’인 한국

한국 역시 해외의 미군기지를 이처럼 대규모 시찰단의 형식으로 방문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시찰은 ‘우리땅 부평 미군부대 되찾기 인천 시민회의’(공동대표: 박동일 목사)가 전국의 미군기지 지역에 제안하고, ‘우리땅 미군기지 되찾기 전국공동대책위원회’가 주관해 이뤄졌다. 인 천, 의정부, 원주, 대구, 평택, 수원 등에서 시민운동가, 변호사, 의사, 전업주부, 직장인 등 47명의 각계 시민들이 참여한 이번 시찰은 한국의 기지반환운동의 전환점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사찰단의 일정은 크게 미군기지 방문과 오키나와현 수용위원회의 공개심 리 방청으로 이뤄졌다. 밤에는 반기지운동을 벌이는 오키나와 반전지주들 과의 교류모임이 이어졌다. 교류모임에서는 지금까지 두 나라에서 개별적 으로 이뤄졌던 반기지운동의 경험을 함께 나누며 앞으로 한-일간 반기지 운동의 국제연대활동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시찰 일정 중 한국시찰단에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역시 이틀째 이뤄진 오 키나와현 수용위원회 공개심리 방청이었다. 임대기간이나 임대료가 전혀 없이 ‘무상으로 영구히’ 공여돼 있는 한국의 공여지 실태와 비교해 볼 때, 일본은 그래도 자국민들의 권리를 찾을 수 있게 만들어놓은 구조라는 평가가 대부분이었다. 우리 국방부는 8천만여평의 공여지 가운데 사유지 가 얼마나 포함돼 있는지에 대해 아직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공 여지 상황은 ‘군사기밀’이라는 게 국방부의 변명 아닌 변명이다. 일본 정부는 기지 안에 포함되어 있는 사유지에 대해서는 5년마다 임대료를 조 정한다. 임대료 인상비율은 해마다 5% 안팎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일 본정부는 임대에 반대하는 반전지주들에 맞서 형식적이나마 특별입법 추 진으로 합법적인 모양새를 갖추려고 했다는 점에서도 한국 실정과 비교된 다는 게 많은 이들의 지적이었다.

시찰의 성과는 앞으로의 한국 기지반환운동에 다양하게 반영될 것으로 보 인다. 미군기지땅 되찾기 대구시민모임 배종진(31) 사무국장은 “이번 시 찰을 통해 반전평화사상을 기반으로 오랫동안 반기지운동을 벌여온 오키 나와의 경험과 역사를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것이 가장 큰 수확이다. 오키 나와의 성과와 교훈을 한국의 실정에 맞게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소감을 밝혔다. 인천에서 치과를 운영하는 김소강(32)씨는 “개인의 통증 을 없애주는 치과의사의 처지에서 보면 미군기지 문제는 사회와 민족의 통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항상 했다. 시찰의 경험을 통해 우리 부평지 역의 기지문제에 대해서도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 장정옥 시찰단장은 “일본에 대해 가지고 있던 민족적 반감을 넘어서는 국제연대를 시작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본다. 앞으로 한-일 사이의 합의 를 철저히 지킴으로써 국제연대를 공고히 하는 과제가 남았다”고 밝혔다 .

시찰 마지막 날에는 한-일 반기지운동가들 사이에 몇 가지 합의사항이 체 결됐다. 먼저 두 나라의 기지운동가들은 오키나와의 임대기간이 만료되는 5월14일 오키나와에서 벌어지는 행사를 국제연대의 차원에서 만들어갈 공 동대책위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또 이날 한-일간의 공동성명서도 채택 하기로 했다. 국제연대의 실천적 방안으로는 오키나와의 행사와 때를 맞 춰 한국의 기지들에서 인간띠잇기행사를 동시에 벌이기로 했다. 일본의 반전지주운동가들도 이때 초청될 것으로 보인다.

임대기간 설정 등 대중적 반환운동

올해 한국의 기지운동의 조직적 과제는 지난해 이뤄진 성과인 ‘우리땅 미군기지 되찾기 전국공동대책위원회 준비위원회’를 전국공동대책위원회 형태로 공식적으로 출범시키는 것과 함께 대중적인 기지반환운동의 방식 을 개발하는 것이다. 평택에서는 지난해 미군부대가 제대로 내지 않은 수 도요금의 문제를 제기해 끝내 미납한 수도요금을 납부시키는 작은 승리를 얻어냈다. 현단계 기지반환운동은 이런 창조적인 실천으로 미군기지에 대 한 권리의식을 높여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 와 함께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이 제대로 이뤄지도록 하는 대중 운동도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이다.

기지반환운동을 전국적으로 이끌고 있는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미군 기지대책위 김용한 위원장은 “임대기간과 임대료도 없는 한국의 공여지 실정을 알려내고 주둔군협정의 개정을 통한 임대기간의 설정 요구도 올해 기지반환운동의 중요한 과제”라며 “높은 수준의 국제연대만큼이나 국내 의 창조적인 활동이 필요한 때”라고 밝혔다.

오키나와=김창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