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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03월13일 제 148호 한겨레21

반전지주들의 ‘완전철수’외침

(사진/오키나와현의 반전지주들은 미군기지의 완전 철수만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내 땅 내놔라!” “당장 그만 둬!” “인정할 수 없다!”

지난 2월21일 짙푸른 남태평양이 내려다보이는 일본 오키나와현 컨벤션센 터 대강당에서는 10초가 멀다하고 터져나오는 지주들의 고함소리로 들썩 거렸다. 지주들의 고함과 박수소리에 아랑곳않고 오키나와현 나하시 방위 시설국 공무원은 토지수용 신청에 대한 이유를 읽어나갔다.

“일본 안전보장체제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태평양지역의 평화와 안전에 불가결한 조건이며, 미군의 주둔은 우리나라의 안전과 극동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이후로도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일-미 양국은 일-미 안전보장조약을 종료시키는 일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고, 미군의 주둔 은 이후로도 상당히 긴 기간 동안 계속될 것이다. 시설 및 구역을 미군에 원활하고 안정적으로 제공하는 것은 조약상의 의무이다….”


5년만의 수용위원회 주민 항의 불꽃

다시 한번 고함이 터진다. 공무원의 설명이 끝나자 토지수용에 반대하는 ‘반전지주’들이 나서 자신들의 주장을 펼친다. ‘권리와 재산을 지키는 군용지주회’(반전지주회)회장 테루야 슈덴의 차례가 됐다.

“미국이 오키나와를 일본에 반환한 지 25년이 지났지만 오키나와에서는 아직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오키나와 사람들을 불도저와 총칼로 내몰고 건설한 미군기지는 아직도 철수되지 않아 재산권을 침해하고 오키나와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기지는 노(No)!’라는 것이 현민들의 의지다. 안보는 현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는 커녕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 다 른 나라의 주권을 함부로 침해해서는 안 된다. 기지의 불법점령을 오키나 와는 용납할 수 없다. 땅은 행복을 위해 쓰여야 한다. 땅을 돌려받는 것 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길이다. 아이들에게 미군기지가 철수된 뒤의 아름다운 오키나와를 보여주고 싶다….”

이번에는 박수가 터져나온다. 선거유세에 버금가는 열기 속에 진행된 이 날의 행사는, 그러나 오키나와 반기지운동의 새로운 장을 여는 것이었다. 2월21일은 5년 만에 열린 오키나와현 수용위원회의 첫번째 공개심리가 열 리는 날이었다.

미국이 오키나와를 일본에 반환한 지난 72년 이래 일본 정부는 기지를 포 함해 미군이 쓰는 모든 시설·구역을 5년 단위로 일본인 지주들에게 빌려 미군에 제공하고 있다. 5년마다 임대기간과 임대료를 재조정하는 것이다. 그때마다 지주의 설명을 듣는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수용위 원회 공개심리 과정이다. 수용위원회는 준사법기관으로 일본 행정단위인 현의 공무원들로 구성되어 일본 정부와 지주들의 주장을 듣고 토지수용 여부를 최종 결정하게 된다. 오는 5월14일은 5년·10년 동안 사용했던 미 군기지의 임대기간이 동시에 끝나는 날이다.

일본 본도보다 오키나와현 수용위원회의 공개심리가 더 주목받는 이유는 미군기지가 오키나와에 밀집돼 있기 때문이다. 오키나와의 크기는 일본 국토의 0.6%인 데 비해, 전체 주일미군 시설의 75%가 이곳에 들어와 있다 . 미군기지가 오키나와 본섬의 19.5%(오키나와군도의 10.8%)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42개로 흩어져 있는 미군시설들은 노른자위 땅 대부분을 깔 고 앉았다. 게다가 일본 본도의 기지가 대부분 국유지인 데 반해, 오키나 와 기지는 국유지가 33%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불만을 사는 대목이다. 오 키나와기지가 주민의 집이나 밭을 일방적으로 빼앗는 과정을 통해 건설된 것이라는 점을 입증하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본도인 1평주주 대거 동참해 공동투쟁

오키나와는 일본 본도와는 다른 역사적 배경을 가진 데다 2차대전 당시 1 2만2천여명의 민간인이 일왕의 ‘옥쇄’명령에 따라 죽음을 맞이한 곳이 라 미군기지와 일본 군국주의에 대한 반대 분위기가 일본의 다른 어느 곳 보다 높다. 당연히 미군기지의 연장 사용을 반대하는 지주들의 주장도 설 득력을 얻고 있다. 이런 흐름을 주도하는 이들은 미군기지의 완전 철수를 주장하는 반전지주들이다.

현재 오키나와에서 미군시설 안에 자신의 땅을 가지고 있는 ‘군용지주’ 는 모두 3만1천여명 정도다. 이들 가운데 2만8천여명은 정부와 임대계약 을 맺어 임대료를 받는 ‘계약지주’들로 이들은 ‘오키나와현 군용지 지 주회연합회’를 결성했다. 이들과는 달리 일본 정부와의 임대계약을 거부 하며 미군기지의 완전철수를 주장하는 지주들이 있다. 전쟁을 일으키는 기지를 반대한다는 뜻에서 ‘반전지주’(강제사용대상지주, 미계약지주, 계약거부지주라고도 함)라 불리는 이들은 현재 1백여명 안팎이다. 이들은 계약을 거부하기 때문에 임대료도 받지 않는다. 이들은 주인의 허락을 받 지 않은 미군의 기지사용에 대해 ‘강제사용’이라고 비판하며, 지난 72 년 ‘반전지주회(권리와 재산을 지키는 군용지주회)’를 조직했다. 반전 지주들은 이들뿐이 아니다. 기지 안의 땅 1평씩을 사서 스스로 반전지주 가 된 이들도 있다. 1만엔 정도로 땅 1평씩으로 마련해 반기지운동에 동 참하고 있는 2천9백여명은 지난 82년 반전지주회를 뒷받침하는 ‘1평반전 지주회’를 만들었다. 절반 정도의 회원은 일본 본도에 살고 있다. 국회 의원, 지방의회 의원, 교수, 기자, 교사 등 각계각층이 모인 이 단체는 반기지운동의 여론을 주도하고 확산시키는 데 핵심적인 구실을 하고 있다 . 시민단체와 노조, 정당 등을 아우르며 반전지주들을 후원하는 조직으로 는 ‘위헌공동투쟁회의’가 있다.

임대를 거부하는 반전지주들에 대해 일본 정부는 특별법으로 대응하고 있 다. 강제사용의 법적 근거를 정기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지난 7 2년 미국이 일본에 오키나와를 반환할 때 ‘오키나와 공용지 강제사용법 ’을 만든 이래로 ‘오키나와 지적 명확화법’(77년), ‘주류군용지 특별 조치법’(82년) 등으로 계속 강제사용을 이어가고 있다. 97년 5월14일은 82년 특별조치법이 규정한 강제사용기간이 끝나는 날이다.


“미군기지 완전철수만이 살길이다”

이번 수용위원회가 특별한 주목을 끄는 이유는 또 있다. 지난 95년 9월4 일 일어난 미군병사 3명에 의한 오키나와 초등학교 여학생 윤간사건 이후 반기지운동이 한층 고조된 상태에서 열린다는 점에서 그렇다. 여학생 윤 간사건은 1백25만명이 사는 이곳에서 10만명 이상의 집회를 연일 이끌어 낼 정도로 분노를 샀다. 기지의 강제사용에 대한 불만도 물론 높아졌다. 미국과 일본 정부는 반기지 여론이 뜻밖에 높아지자 ‘후텐마 비행장’ 등을 비롯해 오키나와 기지의 20% 축소조정 계획을 발표할 정도로 후퇴한 상태이다. 게다가 지난해 오타 마사히테 오키나와현 지사는 일본 총리의 대리서명 권고와 명령을 거부해 이런 분위기에 불길을 끼얹어 놓기도 했 다. 비록 일본 최고재판소가 오타 지사에게 대리서명을 명령한 이후, 오 타 지사가 이를 받아 임대기간 강제연장을 위한 공고 및 열람 조치를 취 하겠다고 밝혔지만 기지에 대한 반대여론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지난해 9월 처음으로 실시된 주민투표에서 91%가 미군기지 축소 등에 찬 성한 것으로 나타나 이런 여론을 입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 수용위원회 자체가 과거 세 차례 열렸던 그것과는 질적으 로 다르다는 지적이 늘어나고 있다. 류큐마이니치방송국의 아카네 이케하 라(29) 기자는 “반전지주들조차 수용위원회가 자신들의 얘기를 깊게 듣 고 있다고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반전지주로 참가한 우에하라(50) 역시 “지금 계약하고 있는 이들중에는 인감증명도 없고 응당한 적법절차 를 거치지 않고 미군에 넘겨져 사용되는 토지들도 많다. 이번 수용위원회 는 이런 절차적 문제도 지적해줄 것으로 믿는다”는 희망을 밝혔다.

이는 오타 지사가 수용위원회 인사들을 중립적인 인물들로 교체한 것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반전지주들은 수용위원회가 자신들의 요구 에 따라 현장검증 등을 통한 실질심사를 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수용 위원회는 이미 지난해 사용기간이 끝난 요미탄촌의 소베통신소의 일부 토 지에 대한 정부쪽의 긴급사용 요청에 대해 “긴급성이나 공익성을 뒷받침 할 설명이 불충분하다”며 거부한 적이 있다. 이에 따라 통신소 안 치바 나 쇼이치(49)의 땅 71평은 2월21일로 3백26일째 미군에 의해 불법점거되 고 있다. 수용위원회가 일방적인 심리를 거부하고 여론의 흐름에 따라 공 정과 중립이라는 토지수용의 대원칙에 근거한 심리를 진행시킨다면 5월14 일 이후에 강제사용이 불허되는 땅이 대규모로 늘어날 가능성도 높다.

공개심리장에서 만난 이게하라 히데아키 반전지주회 사무국장은 “오키나 와의 반기지운동가들은 이번 수용위원회 공개심리를 거치면서 한 단계 높 은 반기지운동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높아진 반기지투쟁에 대해 미국과 일본 정부가 내세우는 기지 축소·조정 계획의 허구성을 밝힌다는 것이다. 이들은 일본 정부가 내세우는 기지 축소 계획은 오키나와의 다른 지역이나 일본본도로 기지를 옮기는 것이기 때문에 기지문제의 완전한 해 결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예를 들어 핵심적으로 거론되고 있 는 후텐마공군기지의 경우, 기지를 대신해 건설하겠다는 해상 헬리포트 건설안은 어민들의 생존권과 환경을 파괴시키기 때문에 이전에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기지가 완전히 철수되기 전에는 문제해결은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미 군사전략이 가로막는 국제도시 구상

오키나와는 현재 2015년까지 미군기지를 전면 철수시키고 오키나와를 국 제교류도시로 발전시키겠다는 장기 구상을 구체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2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한 계획이다. 먼저 ‘10만명의 동아시아주둔 미군 을 현상유지하고 그 핵심기지를 오키나와로 한다’는 미 군사전략의 변화 가 있어야 한다. 나머지 하나는 해마다 평균 5%씩 오르는 임대료와 기지 로 인한 경제적인 이익을 대체할 오키나와의 경제적 가치를 찾는 일이다.

김창석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3월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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