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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문화 |
1997년03월13일 제 1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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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 의자를 내놓은 프랑스풍 카페는 파리를 찾는 사람들에게 특히 인 상적인 거리풍경이다. 사람들은 카페 의자에 앉아 카페오레를 마시며 책 을 보기도 하고 프랑스인 특유의 손짓을 섞어가며 격론을 벌이기도 한다. 프랑스에서는 카페를 흔히 ‘비스트로’라고 부르는데 러시아말로 ‘빨리 빨리’라는 뜻이다. 1815년 나폴레옹이 몰락한 뒤 파리에 입성한 러시아 군인들이 카페에 몰려와 ‘빨리빨리’ 마실 것을 달라고 외친 것이 그 어 원이다. 카페는 만남과 사교의 공간이지만 프랑스에서는 여기에 문학, 예 술, 철학의 공간개념이 더 붙는다. 언젠가 프랑스 문화부는 프랑스 문화 의 3대 상징으로 루브르 박물관, 프랑스 요리와 함께 비스트로를 포함시 켰다. 1907년 파블로 피카소와 조르주 브라크가 만나 큐비즘이라는 미술 장르를 창시한 곳도 파리 ‘생제르맹 데 프레’ 지역의 카페 ‘레 두 마 고’에서다. 1939년에는 이웃 카페 ‘드 카페 드 플로르’가 예술가, 문 학가, 지식인들의 만남의 장소가 된다. 장 폴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 르는 매일 저녁 이 카페에 와 글도 쓰고 토론도 했다. 전후 저항문학이 탄생한 곳도 이런 카페들에서임은 물론이다.
이런 역사를 지닌 프랑스 카페에서 최근 ‘철학카페’라는 새로운 경향이 확산되면서 그 전통이 되살아나고 있다. 1주일에 한번 정도 철학에 관심 을 가진 대중들이 모여 철학자나 대학강사의 주관 아래 토론을 벌이는 철 학세미나가 한창이다. 철학카페라는 발상은 1992년 철학자 마르크 소테에 의해서였다. 철학교수인 그는 매주 일요일 바스티유 광장 한쪽의 카페 ‘ 카페 데 파르’에서 철학을 이야기했고 이는 철학토론회로 발전해 이젠 바스티유의 명물이 됐다. ‘최초의 철학카페’(Le Bistrot Philo)라는 표지가 붙어 있는 이곳은 일요일 아침이 되면 발 디딜 틈없이 사람들이 모여든다. 이후 대학가를 중심으로 철학카페가 속속 생겨났고 지방으로 퍼져나갔다. 현재 철학카페는 파리에만도 20군데나 되고 니스, 스트라스 부르, 마르세유, 투르, 리용 등 전국적으로 50~60군데가 넘는다. 이에 힘 입어 회지발간과 철학카페 모임을 주관하는 단체 ‘필로협회’가 탄생하 기도 했다.
철학카페도 운영방식이나 분위기는 제각각이다. 대학가인 라탱 지구(파리 5구)의 타라주트 식당에서 매주 토요일 열리는 모임은 매우 전문적이다. 모임을 위해 식당을 세미나실처럼 개조한 뒤 발제, 강독, 자유토론 순으 로 진행되는데 학술토론회를 방불케 한다. 소르본대학 철학교수가 토론을 총괄한다. 같은 시간, 인근의 루와얄 카페 지하에도 철학토론회가 열린다 . 이곳에선 1년치 토론주제와 일정표가 이미 정해져 있고 수시로 강독자 료 복사물과 참고도서목록을 나눠주기도 하며 출석부도 돌린다. 이에 반 해 원조격인 ‘카페 데 파르’의 모임은 훨씬 자유분방해 즉흥적인 자유 토론 형식으로 이뤄진다. 각 철학카페 책임자들은 필로협회를 매개로 관 련을 맺고 정보를 교환하며 흥미로운 내용은 회지 <필로>에 실리기도 한 다. 토론주제를 보면 ‘프랑스는 망명의 땅인가’ ‘모호함과 불합리함의 관계’ ‘우리는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하는가’ 등 정치적인 것에서부터 지극히 철학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하다.
필로협회 회장 파스칼 아르디는 철학카페의 성공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볼테르 시대부터 프랑스 카페들은 만남과 토론의 장소로 사회적인 중 요성을 지녔다. 학교 철학교육이 교과서적인 데 반해 철학카페에선 자연 스럽게 자신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철학카페 창시자 마 르크 소테도 “철학카페는 단순한 유행이라기보다는 근본적인 운동”이라 면서 “이런 토론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깊은 번민을 표현한다. 불합리성 에 맞서 철학은 이제 생활방책으로 등장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프랑 스에서 <소피의 세상> <큰 미덕의 작은 개론> <말의 귀에 중얼대는 사람> 등의 철학소설이나 철학에세이가 폭발적인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는 점도 철학의 대중화 경향과 맥을 같이한다.
프랑스인의 문화적 우수성은 전통의 풍요함보다는 오히려 훌륭한 전통을 이어오면서도 무언가를 부단히 만들어내려는 창조적 발상에 있는 것 같다 .
파리=최연구 통신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3월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