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1997년03월13일 제 148호 한겨레21

`위험사회'/자본의 탐욕에 대항한다

(사진/`위험사회' 올리히 벡 지음/홍성태 옮김/새물결 펴냄/1만8천원.)

위험사회/ 울리히 벡 지음·홍성태 옮김, 새물결 펴냄/ 1만8천원

최근 영국의 한 유전공학 연구소에서 세포이식을 통해 다 자란 양(羊)을 복제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인간의 대량 복제 가능성을 제시해 세계적인 화제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사람들은 우선 두 가지 점에 놀랐다. 하나 는 과학·기술의 엄청난 발전이고, 또하나는 이런 놀라운 일이 국가적 차 원이 아니라, 일개 제약회사의 이윤동기- 비록 식량증산이나 질병의 획기 적 퇴치를 명분으로 하고 있지만- 로도 가능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무엇 보다 세계를 경악시킨 것은 마침내 과학기술 발전이 생명 질서의 근간을 근본적으로 위협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인간 개체를 인위적으로 선별 조작할 수 있다는 것이 단지 이론상으로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가능 해졌다는- 점이다. 현대 과학기술의 발전은 이제 전 지구적 환경위기문제 에서 더 나아가 인간 존재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시기로 접어들고 있다. 문명의 발전이 곧 문명 붕괴 위험의 증가라는 역설이 점점 현실적 위협으 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이 더 나은 삶의 질- 풍부한 식량, 건강 장수, 사회적 안전 등- 을 지향하는 근대화-산업화-복지사회의 패러다임을 밀어붙일수록 인 간의 삶을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요소들도 같이 증가하는 패러독스야말로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풍요로운 시대는 얼마나 지속될 건가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1986년 펴내 “제도 사회과학에 유성의 충돌 과 같은 충격을 안겨준” 책으로 평가받은 <위험사회(Risk Society)-새로 운 근대성을 향하여>는 바로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역설적 현실을 직시하 고 인류를 위험에서 구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울리히 벡은 1944년 태어나 뮌헨대학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 뮌헨 루드비히-막스밀리안스대학 사회학연구소 교수로 있는 사회학자.

독일에서 첫 출판된 이 책은 2차대전 뒤 독일어권 사회과학분야에서 여러 분과학문과 일반대중에게 동시에 영향을 끼친 대표적인 책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 책과 필적하는 책으로는 1960년대에 출판된 뒤 1989년 영어로 번역된 위르겐 하버마스의 <공공영역의 구조변동>이 있을 뿐이라는 평가 가 있을 정도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에서도 생태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관련 전문가들에게는 이미 널리 소개돼 있다.

지은이가 말하는 현대사회는 ‘위험사회’다. 풍요로워질수록 리스크도 증가하는 사회다. 20세기말의 대중들은 과학기술의 무제한적 발전, 자본 주의의 무한욕망적 자본축적의 궤도 속에서 한편으로는 풍요를 누리면서 한편으로는 숱한 사회적 위험에 노출돼 있다. 벡의 문제제기는 바로 이 위험을 현대사회에서 어떻게 제거할 수 있느냐에 있다.

벡이 말하는 위험사회로서 현대 산업사회의 위험성은 다음 5가지로 요약 된다. “첫째 현대의 위험은 방사선같이 인간의 평상적 지각능력을 완전 히 벗어난다. 둘째,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위험의 분배 및 성장 에서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즉 위험의 사회적 지위가 나타난다. 셋째, 위 험의 확산과 상업화는 자본주의의 발전논리를 완전히 종식시키는 대신에 자본주의를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린다. 넷째, 부는 소유할 수 있지만 위 험으로부터는 그저 영향을 받을 뿐이다. 다섯째, 사회적으로 공인된 위험 은 특수한 정치적 폭발력을 지닌다. (원자력발전은 비정치적이지만 원전 사고는 정치적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지금까지 비정치적으로 여겨졌 던 것들이 정치적인 것으로 변한다.”

벡이 말하는 위험사회로서의 현대사회를 대중들이 가장 쉽게 실감할 수 있는 문제가 환경위기이다. 과거에는 전쟁이나 산업현장에서 한쪽 팔을 잃었다고 해서 팔이 없는 아이를 낳지는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과 미래의 어느날 사람들은 전쟁이나 산업재해와 관계없이 팔을 잃을 수 있다. 거기 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팔이 없는 아이를 낳을 수도 있다. 체르노빌 원 전사고는 그 대표적 사례이다. 이 지점에서 벡은 고민한다. 자, 생각해보 자. 오늘날 인류가 누리는 풍요는 위험의 대가인가? 풍요로운 삶을 받아 들이는 한 그 위험을 제거할 방법은 없단 말인가?

지은이는 ‘성찰적 근대화’라는 명제에서 그 해답의 출발을 찾는다. 자 본주의의 증진하는 풍요의 이면에서 “무언가 거대한 괴물 같은 것이 체 계적으로 생산되는” 그런 사회를 되짚어 인식함으로써 우리가 사는 사회 의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고 거기에 맞는 대응방법과 긍극적 대안을 찾아 보자는 것이다.

벡의 말을 우리식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어느날 나와 우리 가족에게 닥친 청천벽력 같은 재난, 예를 들어 다리가 끊어져 등교길의 자녀가 죽는다든 지, 자본주의 철옹성 같은 백화점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아내가 죽는다든 지 하는 문제가 결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구조적인 맥락의 어떤 문제라 는 말이다. 이것은 따라서 “매우 절박한 과제”이다. 현대사회의 안전과 위험문제는 “산업혁명 이래의 근대적 합리화 과정 전반에 대한 비판적 재평가를 요구하면서 동시에 향후 발전 방향에 대한 새로운 모색을 요구 하는”것이다.

현대의 과학·기술, 경제력·군사력은 산업사회를 유지·발전시킨 동력이 자 산업사회 위험의 근원이다. 따라서 즉 이것들은 문제의 근원이자 해결 책이라는 이중성을 띤다. 이것은 현대사회를 인정하는 한 분리할 수 없다 는 것이 최대의 난점이다. 여기서 이를 “근본적으로 비관하는 베버, 푸 코, 아도르노와 같은 비관주의자”와 벡이 갈라서는 지점이다. 그는 “비 관주의에 굴복하지 않는다”. 그가 제시하는 방법론은 성찰이다. 즉 사회 가 실제로 진화하려면 근대화에 대한 성찰이 부단히 계속되고 부단히 강 화되어야 한다.

이 말은 비판이 막연하거나 낭만적이어서는 안 되고 전문적인 대항담론으 로 성장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것이 ‘성찰의 근대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 과학·기술은 동물의 복제나 국가주도의 첨단 산업화 등에서 보듯이 일부의 전문가·테크노크라타집단과 경제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 지 식을 독점해서 확대재생산된다. 대중은 단지 소비자이거나 수혜자이고 유 사시에 피해자가 될 뿐이다. 벡의 성찰적 근대화는 이런 과정에 대중들이 개입할 여지를 최대한 넓히고, 최대한 견제함으로써 위험사회의 요소를 제거해야 한다는 데 있다. 즉 성찰적 근대화란 현대 기술과학의 가능성만 이 아니라 그 한계도 함께 인식함으로써 사회적 제어력을 높이는 과정이 란 것이다.


사회변동 추세 반영하며 대안 모색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월성이나 고리 핵발전소 문제, 서울시 의 쓰레기소각장 문제 등을 보자. 결정은 언제나 정치적이다. 소수의 전 문가들이 알아서 입안하고 시행한다. 그러나 문제가 생기면 다중이 심각 한 위험에 노출된다. 전문가들은 자기들만이 아는 지식으로 문제를 합리 화한다. 따라서 문제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으려면 배타적인 전문가에 대 항하는 비판적 식견을 대항세력이 갖추어야 한다. 쓰레기소각장에서 발생 하는 다이옥신의 폐해를 근본적으로 지적하기 위해서는 무해성을 주장하 는 논리를 깨고들어가야 가능하다.

오늘날 시민사회운동이 왜 갈수록 분화·전문화의 길을 갈 수밖에 없는지 를 벡은 위험사회의 성찰적 근대화라는 명제를 통해 명쾌히 설명하고 있 다.

<위험사회>가 독일에서 출간된 뒤 즉각 학문세계와 대중들에게 충격으로 다가간 것도, 미래사회 구성의 일단을 핵심적으로 제기한 책으로 받아들 여진 것도 벡의 주장이 추상적인 공허한 명제가 아니라 사회변동 추세를 실질적으로 반영하면서 대안을 모색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산업화과정을 지나 인간중심의 복지사회를 지향하는 서구에서 벡은 심대 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이제 후기산업화의 병목에 걸려 신음하는 한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어떨까. 역자 홍성태씨는 이렇게 말한다.

“현재 한국사회가 당면한 산업화에 따른 구조적 부패, 부실과 생태위기 를 한국사회의 특수한 구조적 문제로만 인식하는 것은 위험과 사고로 점 철된 ‘분열증적 근대화’의 도상에서 우리를 헤매게 할 뿐이다. (…) 산 업사회의 원리 자체가 커다란 내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 기초하 여, 지금도 횡행하는 선진국 지상주의가 이 사회를 동물적 생존경쟁으로 내몰고 사람들을 분열증에 시달리게 한다는 점을 직시하는 것이다. 선진 국이라는 이름으로 관철되는 은밀하고 치밀한 폭력을 극복하는 것 그리고 이 폭력에 기대어 무한축적을 추구하는 자본의 탐욕을 적절히 통제하는 것이야말로 비리와 부정의 근원을 차단하는 것이며, 서구적 근대화의 한 계를 넘어서는 길이다.”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의 한국적 독법은 여기 에 있다고 할 것이다.

한편 역자는 이 책의 번역은 독어판이 아니라 거의 개정본과 같은 영어판 을 주대본으로 삼았음을 밝히고 있다.

이인우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3월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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