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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
1997년03월13일 제 1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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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대통령 선거를 의식한 야권은 슬그머니 발을 빼버렸다. 2월27일 국민회의 당사에서 농성하는 전교조 회원들.)
“한국은 유일하게 교사들의 노동기본권이 없는 나라다.”
시나 한리 국제교원노조총연맹(EI: Education International) 사무차장의 지난 2월17일 발언은 상당한 파문을 던졌다. 그는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 회관에서 열린 국제심포지엄에서 “국제교원노련 1백48개국 회원국 가운데, 교원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고 있지 않는 나라는 한국뿐”이라고 밝혀 우리의 노동법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1백48개 나라 중 한국과 케냐뿐”
교원들의 단결권과 관련해 EI가 최근 국제노동기구(ILO)에 제소한 나라는 한국과 케냐 두 나라뿐이었는데, 그나마 케냐에서는 초·중 교사들의 노 조 결성권이 보장돼 있는 반면, 한국은 그것조차도 충족하지 못한 상태라 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그의 이런 언급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 입한 한국이 아프리카의 케냐보다도 뒤떨어지는 노동법 수준이라는 뜻이 었다.
1백48개국, 2백75개의 거대한 회원조직을 거느린 EI 관계자의 이런 지적 에도, 현재 여야 정치권이 난항을 거듭하고 있는 노동법 개정 협상에서는 ‘교사의 노동기본권 보장’과 ‘전교조의 합법화’ 문제가 아예 거론조 차 되지 않고 있다. 여야 모두 정리해고제나 복수노조 문제 등에 대해서 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정작 오랜 논란거리였던 이 문제에 대해서는 굳게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다.
전교조가 89년 창립 이후 8년 동안이나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는 ‘교원· 공무원의 노동기본권 보장’이야말로 노동법 개정 협상에서 가장 핵심적 부분이 되어야 한다는 게 노동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ILO 등 각종 국제기 구로부터 한국이 노동탄압국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를 보장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민주노총이 지 난 2월 말 4단계 총파업에 돌입하면서 정리해고제 철회,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금지 반대 등과 함께 전교조 합법화를 주요 요구사항으로 내세운 것 도 바로 이 때문이다.
어쨌든 정치권의 외면으로 노동법 개정에서 가장 개혁적이며 핵심적이라 고 할 수 있는 교원·공무원의 노동기본권 보장 문제는 다시 난망해진 상 황이다.
신한국당은 물론 국민회의나 자민련 등 야당에서조차도 노동법 개정논의 에서 전교조 문제를 유보한 것은 오는 12월 대통령 선거와 관련이 있다는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제1야당인 국민회의는 애초 교사들의 노동2권(단 결권과 단체교섭권) 보장을 약속했다. 그러다가 자민련이 이에 반대의 뜻 을 분명히 하자, 지난 2월24일 국회에 제출한 노동법 개정에 관한 야권단 일안에 전교조 문제를 아예 빼버렸다. 표면상으로 야권공조를 이유로 내 세웠지만, 국민회의가 전교조 문제에서 슬그머니 발을 뺀 것은 다분히 ‘ 당리당략적 차원’이라는 것이다. 아직도 전교조를 불온시하는 사람이 많 은 우리 사회 분위기 속에서 전교조의 합법화를 들고 나올 경우 자칫 여 권이 노리고 있는 보-혁구도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고, 올 대선에서 보수 층이나 많은 학부모의 표가 떨어져 나갈 것이라는 판단에서 그랬다는 것 이다.
전교조는 정치권의 이런 행태를 강도높게 비난한다. 지난 2월28일 여야가 노동법 개정시한을 넘기고 3월8일까지 재논의키로 하자, 전교조는 정치권 을 향해 “날치기 노동악법의 전면개정을 바라는 국민들의 기대를 철저히 무시하고, 당리당략에 따라 노동법 개정을 바라보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 ”이라고 비난의 화살을 쏘았다.
전교조는 특히 “교원의 노동기본권에 대한 어떠한 합의도 없이 넘어간 것은 국민여론을 무시한 오만함을 보여주는 것이며, 여야 각 정당이 국민 여론을 존중하는 민주정당이라면 더 이상 교원노조 문제를 회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전교조 허용 70.7%가 찬성
실제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전교조를 합법조직으로 인정해야 한 다는 게 국민의 일반적 정서인 것 같다. 민주노총이 전문여론조사기관인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2월22일과 23일 전국 7백3명의 성인을 대 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번 임시국회에서의 전교조 법적 허 용여부에 대해 70.7%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3%만이 반대했다. 또 교사의 노동기본권 보장에 대해선, 노동3권 모두 인정 12.9%, 단결권 ·단체교섭권과 제한적 단체행동권 보장 54.3%, 단결권·단체교섭권만 인 정 3.0%, 단결권만 인정 2.4%로 드러났다. 이는 어떤 형태로든 교사들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이 국민 가운데 72.6%에 이르는 것이 라고 전교조는 분석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진 현대경제사회연구원 조사에서도 조사대상자의 58 .9%가 교원노조에 대해 찬성하고 26.7%가 반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교조는 이런 객관적인 여론조사 결과를 들이대면서 “89년 3월 임시국 회에서 지금의 3김씨가 모두 야당 대표로 있으면서 통과시켰던 노동법 수 준으로 노동법을 개정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당시 여소야대의 정국에 서 야당은 ‘6급 이하의 공무원과 교원은 자유로이 노동조합을 결성하거 나 이에 가입할 수 있고, 단체교섭을 할 수 있다. 다만 현역군인, 경찰공 무원, 교정공무원, 소방공무원은 그러지 아니하다’는 내용의 노동법 개 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켰으나, 노태우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뜻을 이 루지 못했다.
전교조는 특히 “교원노조의 인정은 보수냐 진보냐를 가르는 잣대가 아니 라, 국제적으로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국제규범”이라면서 “결사의 자유 는 자유민주주의의 가장 기초적인 권리이며, 정부나 정치권이 ‘교원노조 인가, 교원단체인가’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 스스로 자신의 조직 을 선택할 권리를 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교조가 내세우는 논리는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다. 전교조는 ILO나 OECD 등 국제기구에서 여러 차례 교원노조의 인정을 한국 정부에 권고해왔으며 , 지난해 12월26일 신한국당에 의해 날치기로 처리된 개정 노동법 조항 가운데 가장 크게 국제적 비난을 받은 게 바로 교원·공무원의 단결권을 부정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실제로 그렇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난 2월28일 발표된 교육부 장관의 담화는 이런 국제적 흐름과 는 상당히 거리가 먼 것이어서, 정부의 교원노조관이 얼마나 후진적인지 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안병영 교육부 장관은 이날 “스승을 마치 어버이 처럼 존중하는 전통적 미덕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 교원제도를 노사관계 의 틀에 맞추는 것은 부당하다는 정부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 다. 이른바 ‘한국적 특수성’을 감안할 때 교원노조를 절대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지난 93년 교원·공무원의 노동기본권 보장 과 관련해 정부가 ILO에 보낸 답변서에 나타난 논리와 맥을 같이하는 것 이다. 당시 정부는 “한국은 유교적 전통을 가진 나라로 스승은 ‘군사부 (君師父)일체’(군주 스승 아버지는 하나라는 뜻)로 존경받아왔다”면서 “‘성직’인 교사가 노동자로 자처하는 것은 국민정서에 맞지 않는다” 는 주장을 폈다.
시대착오적인 교육부 장관 담화
(사진/안병영 교육부 장관은 `교사는 노동자가 아니다'는 과거의 논리만 되풀이했다.)
안 장관은 또 전교조의 노동법 공동수업을 겨냥해 “최근 감수성이 예민 한 어린 학생들의 수업에 교원의 단결권 문제를 끌어들여 일방적 시각을 주입하려는 것은, 어린 학생들을 볼모로 교실현장을 정치화하는 것으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정면으로 침해하는 것임은 물론 학생의 학습권을 유린하는 비교육적 행위”라고 비난했다. 그는 이와 함께 “나라가 어려 운 때를 당하여, 국민 모두가 안정과 단합을 절실히 바라고 있는 이 고비 에서 불 위에 기름을 붓는 격으로 교육자들이 우리 사회에 혼란을 가중시 켜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언동을 자행하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일”이라고 전교조 활동을 비난했다.
그러나 이런 내용의 교육부 장관 담화는 시대착오적이며, 국제사회의 흐 름에 역행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교사도 노동자라는 것은 이미 전세계 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사실이다. 따라서 교사의 단결권도 당연히 보장돼 야 한다. 그럼에도 교육부 장관은 ‘교사는 노동자가 아니다’는 과거의 논리만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전교조는 이와 관련해 “교육부 장관이 국민정서를 말하면서도, 실제 교 원노조에 대한 국민여론조사나 교사여론조사를 한번이라도 해본 적이 있 으냐”고 반문하고 “그러면서 국민정서나 전교조 징계를 운운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는 태도이다. 전교조는 이에 따라 “교원노조 등 교육현 안에 대해 교육부가 전교조와 공동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공개토론회 도 갖자”고 제안한 상황이다.
전교조는 그동안 ‘합법화’를 위해 조합원 명단 공개, 서명운동, 야당당 사 농성, 결의대회 등 다양한 투쟁활동을 벌여왔다. 이번 임시국회에서 반드시 전교조 합법화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촉구하기 위함이었다. 그러 나 전교조의 8년 동안의 힘겨운 합법화 투쟁은 이번에도 뜻을 이루지 못 했다.
전교조의 합법화 요구는 정치권의 ‘논의유보’와 정부의 ‘절대불가 방 침’으로 당분간 이루어지기 어려울 전망이다. 하지만 전교조는 3월 새로 운 전술로 합법화 투쟁을 강도높게 벌일 예정이고, 정부도 이에 강경대응 한다는 방침이어서 전교조 문제는 이래저래 계속 내연하는 불씨로 남을 전망이다.
김경무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3월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