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1997년03월13일 제 148호 한겨레21

유언비어를 누가 권하나

안정임/ 순신대 교수·신문방송학

갑작스런 부도설로 거액의 예금인출사태를 빚은 상호신용금고 사건은 한 20대 여성의 ‘말실수’때문이었다. 이 사건은 발설자를 잡아들여 처벌하 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지만 그 ‘말실수’의 의미는 간단히 넘길 문제가 아니다. 지금 우리는 유언비어가 사실보다 더 큰힘을 발휘하는 사회에 살 고 있음을 실증했기 때문이다. 신용금고쪽은 근거없는 소문이란 걸 누누 이 밝혔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믿지 않았고 어디서 흘러나온지도 모르는 말 한마디에 갈피를 잡지 못했다.


소문만 무성할 뿐, 사실은 없으니…

유언비어란 말 그대로 해석하면 근거없이 널리 퍼진 소문이란 뜻이다. 그 러나 근거없는 유언비어란 없다. `유언비어의 사회학'을 쓴 일본의 사회 심리학자 시미즈 기타로는 “유언비어는 일정한 조건과 원인이 없으면 생 겨나지 않는다. 민중이 모두 안심하고 사는 시대에는 발생하지 않지만, 사회가 위기에 직면하여 그 질서가 이미 동요하고 있을 때 힘을 발휘한다 ”고 설명한다. 또한 유언비어란 그것이 철저하게 근거없는 뜬소문일 때 는 결코 유언비어로 통용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납득시킬 만한 사회적 통용력을 가질 수도 없다는, 이른바 유언비어 ‘근거론’을 주장한다. 상호신용금고 사건도 단지 한 사람의 말실수가 아니라 한보사 태 등으로 인한 전반적 경제 위기감이 사건 발생의 근거가 되었음을 생각 하면 충분히 설득력있는 주장이다.

따져보면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중요한 문제치고 유언비어가 난무하지 않 는 것이 없다. 한보사건도 정작 핵심배후인물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온 갖 소문만 무성할 뿐 객관적인 사실은 한 가지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깃 털이니, 몸체니 하는 암호 같은 말들만 떠돌아다닐 뿐이다. 또한 대통령 아들 김현철씨에 관한 이야기도 ‘누구누구와 만났다더라’, ‘얼마를 받 았다더라’, ‘별명이 무엇이라더라’, ‘인사권을 다 쥐고 있다더라’ 등 거의가 추측형 소문들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소문을 사실로, 사실을 거짓으로 믿고 있다. 검찰은 김현철씨가 무혐의라고 발표했지만 아무도 그것이 그간의 유언비어들을 잠재울 힘있는 사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통령까지도 아들의 잘못을 부분적으로 시인했으니 검찰은 ‘근거없는’ 사실을 퍼뜨린 셈이다.

유언비어의 힘은 차기 대통령 후보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면 더욱 기승 을 부린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오리무중이다. 대통령을 뽑는 것은 분명 국민인데 정작 국민의 구실은 간 데 없고 ‘김심’의 향방에만 관심이 쏠 려 있다. 확실한 것이 없다 보니 장안의 역술인들은 누가 대통령의 운명 을 타고 났는지 갖가지 ‘예언’을 쏟아내고 ‘예언’은 근거있는 유언비 어가 되어 일파만파로 퍼져나간다. “이름에 ㅊ자 들어가는 사람이 대통 령이 된다.” 어느 유명 역술인의 말이라고 전해준 친구가 있다. 알고 보 니 인기개그작가의 정치 코미디집에 나온 한 대목이었다. 어디서 어떻게 시작됐는지도 알 수 없는 말들이 사실이 실종된 사회에서 왕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유언비어 권하는 사회’라는 자조가 나옴직하다.

유언비어가 활동하는 최적기는 사회의 제기관이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 못 할 때이다. 국정을 책임지고 국민을 대변하는 기관들이 투명한 진실을 보 장하지 못할 때 유언비어는 아무리 황당무계한 것이라도 강력한 힘을 발 휘하게 된다. 노동법과 안기부법을 날치기한 우리 국회는 또다시 색깔 논 쟁을 둘러싼 상투적인 입씨름을 벌이고 있다. 무엇 하나 시원하게 밝혀내 지를 못하는 검찰에 대해서도 국민들이 신뢰를 포기한 지 오래다. 언론은 어떤가. 무엇보다 올바른 진실을 전해야 하는 기본적 사명에도 오히려 유 언비어에 날개를 달아주는 구실을 마다않고 있다. 항간에 떠도는 유언비 어를 언론보도를 통해 재확인하는 꼴이다.


암흑 속에서 국민들은 두렵다

유언비어를 단지 거짓말이라고 치부한다 해도 거짓말의 결과가 반드시 거 짓말인 것은 아니다. 거짓말은 사실이 아님에도 인간으로 하여금 집단행 동을 하게 만들고 그로 인해 인간을 불행 속으로 빠뜨리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거짓말을 두려워한다. 지금 우리도 마찬 가지다. 떠도는 말들 속에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 국민들 은 두렵다. 앞으로의 삶이, 내 가족과 이웃의 미래가 불투명하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금지한다고 해서 유언비어는 사라지지 않는다. 깃털처럼 많은 눈과 같은 수의 혀, 같은 수의 귀를 가진 것이 유언비어란 말도 있다. 유언비어를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사실을 밝히는 것이다. 그것도 유언비어가 생기 기 전에 밝히는 것이다. 아무리 진실이라 해도 유언비어가 생긴 뒤에 밝 힌다면 또다른 의혹을 받게 마련이다. 처음부터 맑고 투명하게, 사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만이 정치에도, 우리 삶의 방식에도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제1의 원칙임을 재삼 확인하는 요즈음이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3월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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