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스토리 |
1997년03월13일 제 148호
|
|---|
(사진/"대선자금 합동공격." 지난 2월26일의 수원 장안구 보궐선거 유세지원을 함께 한 김대중.김종필 총재.)
김영삼 대통령의 92년 대선자금 문제가 또다시 뜨거운 정치쟁점으로 떠올 랐다. 야권이 이번 임시국회에서 김 대통령의 최대 아킬레스건인 대선자 금 문제에 공격의 포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퇴임 즉시 청문회’으름장
임기가 1년 남은 김 대통령의 주변에는 떨쳐버릴 수 없는 ‘원죄’처럼 대선자금의 어두운 그림자가 또다시 짙게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김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신은 노태우 전 대통령과 기업인들로 부터 ‘단 한푼’도 받지 않았다고 강조해 왔다. 그러나 지나친 결백 강 조가 오히려 김 대통령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될 수도 있다. 야권이 노리 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최근 ‘한보태풍’이 정치권을 강타한 시점에서 야권이 또다시 ‘한보와 대선자금’을 연계시키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 한푼’만이라도 증명해낼 수 있으면 김 대통령과 집권당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김 대통령이 퇴임하면 곧바로 ‘대선자금 청문회’를 열겠다고 으 름장을 놓고 있기도 하다. 또 김 대통령을 퇴임 뒤 법정에 세울 수도 있 다. 김 대통령에 대한 정치자금법과 선거법 관련 공소시효는 정지되어 있 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미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해 대법 원이 대통령 임기중에는 공소시효가 정지한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 러한 판례에 김 대통령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얘기다.
특히 최근 정치권 일각에서 “한보사건의 뿌리는 92년 대선자금”이라는 증언이 나오고 있는 시점이어서 야권의 공세에 한층 더 힘을 실어주고 있 다. 이에 따라 야권은 김 대통령의 대선자금과 관련한 온갖 정보를 수집 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 그동안 야권 자체로 수집한 정보에 대 한 재정리 작업도 병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먼저 ‘한보와 대선자금’ 공세는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가 시작했다. 김 총재는 지난 2월11일부터 본격적인 공격에 나섰다. 김 총재는 이날 당소 속 전국 지방의회 신임의장단 및 광역의회 상임위원장단 신년교례회에서 “한보사건을 제대로 수사하기 위해서는 필요하다면 수서사건부터 따져 올라가야 하고, 지난 대선 때 한보가 주었다는 대선자금도 조사해야 한다 ”고 직격탄을 쐈다. 이어 국민회의를 비롯한 야권에서는 한보사건과 여 권의 관련을 집중 부각시키기 위해 대선자금 문제를 틈틈이 제기하고 있 다.
그러나 김 총재와 야권은 김 대통령의 대선자금 규모를 밝힐 만한 증거는 내놓지 않았다. 다만 각종 연설회와 대변인 논평을 통해 기회가 있을 때 마다 “김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수천억원 이상을 쏟아부었다는 얘기가 있다”는 정도로 비켜갔을 뿐이다. 불씨는 살려두되 정면승부는 하지 않 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사실 야권으로서는 다가오는 12월의 대선 때까지 대여공세의 가장 효과적인 무기로 대선자금 문제가 절실한 형편이다.
그렇다고 야권이 대선자금 문제를 입증하는 데 전혀 자신이 없는 것은 아 니다. ‘대선자금 청문회’를 관철시킨다면 여권을 단단히 옭아맬 수 있 을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이는 최근 국민회의 정동영 대변인이 “김 대 통령이 92년 대선 당시 천문학적인 거액의 선거자금을 한보로부터 받았다 는 정보를 가지고 있으며 정태수씨의 ‘92년 선거 때 내가 돈을 가장 많 이 줬다’는 증언을 확보하고 있다”고 주장한 데서도 읽을 수 있다. 국 민회의 유종필 부대변인도 “김 대통령이 대선자금 때문에 정씨에게 코를 꿰어 천문학적인 금융특혜를 베풀 수밖에 없지 않았느냐는 의혹이 있다” 고 거들었다. 정황증거와 증인을 확보하고 있다는 국민회의의 공격은 구 체적인 입증자료가 아니더라도 여권을 위협하기에는 충분하다. 그동안 확 보한 정보와 앞뒤를 맞출 경우 상당한 폭발력을 가질 것이라는 자체 분석 도 나오고 있다.
너무 어마어마한 핵폭탄
야권이 그리고 있는 줄거리는 이렇다. 출발점은 김 대통령이 지난 대선 직후 자신의 선거비용을 법정한도액(3백67억원)보다 적은 2백84억원으로 신고했다는 점에 있다. 최소한 이것을 뒤집을 만한 증거는 확보하고 있다 는 자신감이다. 특히 야권은 지난 95년 11월 <한겨레21>이 단독입수해 보 도한 92년 대선 당시 민자당 선거대책본부 산하 홍보단의 ‘홍보관련 예 산’ 문서에 고무돼 있다. 이 문건에 따르면 당시 민자당이 당 공식조직 을 통해 사용한 홍보관련 비용이 5백35억8백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중 앙선관위에 신고한 액수의 2배에 이르는 규모다. 물론 여권은 “실행 이 전의 단순한 계획서에 지나지 않는다”며 펄쩍 뛰었지만 여전히 석연치 않은 뒷맛을 남기고 있다. 특히 여권의 부인 이후 <한겨레21>이 또다시 대선이 끝난 뒤 민자당의 홍보기획반이 작성해 지도부에 제출한 ‘선거운 동 결과 보고’ 문건을 단독 입수해 홍보예산이 실제로 집행됐음을 확인 하자 문제는 더욱 꼬였다.
게다가 노 전 대통령의 장남인 재헌씨가 “92년 대선 당시 민자당 후보에 게 쓸 만큼 지원됐다”고 발언한 것으로 언론에 보도되자 야권의 공세는 더욱 증폭됐다. 이는 여권의 한 고위인사가 “지난 대선에서 여야 모두 선관위에 신고한 법정선거비용만으로 대선을 치렀다고 하면 아무도 수긍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언한 것과 맞물려 김 대통령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가 더욱 짙어졌다. 또 지난 1월 김 대통령이 연두회견에서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한푼의 선거자금도 받지 않았다”고 거듭 결백선언을 했 음에도 잡음은 계속됐다. 6공 당시 노씨의 군 직계였던 한 인사가 “완전 히 거짓말로 누가 그 말을 믿겠느냐”고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기 때문 이다. 그는 “현재 핵폭탄이기 때문에 말을 안 하는 것이지 언젠가는 드 러날 것”이라며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두고 보자”고 말했다. 국 민회의는 이러한 증언을 해줄 인사들과 계속 접촉하면서 여권을 계속 압 박해 나가고 있다.
이와 함께 민자당 대표를 지내다 탈당해 자민련을 창당한 김종필 총재도 줄곧 “대선에는 천문학적인 돈이 든다. 나는 옆에서 지켜봐서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지원사격을 했다.
사실 자민련은 옛 여권 인사들이 많아 지난 대선 때 여권이 사용한 선거 자금의 규모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선거 당 시 각 지구당에 뿌려진 중앙당의 선거지원비 규모를 밝혀줄 수 있는 구체 적인 자료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대선자금의 전체규 모가 밝혀질 경우 정국은 파국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자민련의 한 고위 관계자의 말처럼 정치권의 ‘공멸’까지도 불러일으킬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공개여부는 불투명한 상태다.
자민련 “터트릴까 말까”
이와 함께 정계개편을 염두에 두고 있는 자민련으로서는 마지막 카드인 대선자금을 성급하게 터뜨릴 이유가 없다. 아직까지 적과 동지의 뚜렷한 선을 긋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언제가 동지로 변할 수도 있는 상대의 ‘ 생명줄’을 굳이 끊어놓을 필요가 있겠느냐는 판단이다. 또 반대로 적으 로 남는다 해도 여권의 공격에 대한 방어용 무기로 위력을 발휘하기 위해 서는 품 속에 갖고 있어야 한다는 판단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경우에 따라서는 부분적인 공개도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 자민 련 관계자들의 얘기다. 결국 현재의 야권으로서는 김 대통령이 강조한 ‘ 단 한푼’을 뒤집을 수 있는 증거는 어느 정도 갖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야권은 이러한 증언과 증거를 청문회에서 공개할 경우 사실 여부를 밝히는 데는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김 대통령으로서는 아들 현철씨 처리에 이어 또한차례의 거센 파도를 만 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는 또 정치권 전반에 도덕적 정화의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검은돈이 판치는 정치권의 정화를 바라는 국민이 이 문 제에 커다란 관심을 갖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용성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3월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