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1997년03월13일 제 148호 한겨레21

‘김현철 사단’끈 떨어졌다


이원종
전 청와대 정무수석

이석채
전 청와대 경제수석

박재윤
전 통상산업부 장관

박세일
전 청와대 사회복지수석

김무성
전 청와대 사정 비서관

김길환
전 청와대 사정 비서관

김영춘
신한국당 광진갑 지구당 지원장

이성헌
신한국당 서대문갑 지구당 위원장

이충범
변호사

김동진
국방부 장관

 지난달 28일 오후 각 언론사에는 안기부 공보관실에서 보낸 보도자료가 날아들었다. 정부가 김기섭 안기부 운영차장을 이 날짜로 면직했다는 단 한줄짜리였다. 이날 오전 단행된 청와대 비서실 인사에서는 이원종 정무 수석과 이석채 경제수석이 경질됐다. 청와대 실세로 불렸던 두 사람의 실 각 배경에 대해 다양한 관측이 나돌았지만 정가에서는 ‘김현철 인맥’의 정리가 시작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권력 내부에서 사조직 을 형성하면서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행사했던 김현철 사단은 과연 해체되 는가.


김현철과 김기섭의 관계

자민련이 ‘젊은 부통령’이라고 지칭했을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 해온 것으로 소문난 김씨는 정·관·재계 등 각계에 거미줄 같은 인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 37살. 79년 한성대 입학. 80년 고려대 사학과 편입. 미국 유학. 김영삼 정부가 출범한 93년 9월 고려대 박사과 정에 들어가 지난달 25일까지 대학원생. 공식직함은 한국유엔청년협회 회 장.

공식적으로는 전혀 주목을 받을 만한 위치에 있지 않은 그가 ‘젊은 부통 령’으로까지 불려진 것은 대통령과 얼마나 가까운 거리에 있느냐가 권력 의 크기를 결정하는 한국적 정치현실에서 비롯됐다. 그에 대한 아버지 김 대통령의 신임과 애정은 각별하다.

민주계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께서는 수십년 동안 야당생활을 하면서 자 식을 보통 사람들 자녀처럼 키우지 못한 데 대해 무척 마음 아프게 생각 한다”고 말했다. 특히 김현철씨에 대한 애정은 각별해 통일민주당 시절 그가 중앙조사연구소를 만들어 아버지를 도울 때 좀처럼 자식 얘기를 안 하는 김 대통령이 종종 “현철이 그놈 참 열심히 하는 것 같아”라며 애 정과 신뢰를 표시했다는 것이다. 특히 그가 앞장서 뛴 92년 대선 이후 그 에 대한 신임은 더욱 두터워졌다는 평이다.

그는 지난달 25일 김 대통령이 출입금지령을 내리기 전까지 매주 일요일 가족과 함께 청와대에 들어가 온종일 머물렀다. 이외에도 사안이 있을 때 마다 수시로 청와대에서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그가 김 대통령이 가 장 믿는 참모라는 데 이론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그의 힘은 여기에서 나왔다.

거의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그에게 권력과 이권을 쫓는 사람들이 모여 드는 것은 당연했다. 이들이 풍기는 악취가 주변에 퍼져나가기 시작할 때 김 대통령이 아예 코를 막아버린 것은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들었다.

93년 그의 인사개입 등 소문이 장안에 나돌기 시작할 때의 일이다. 김 대 통령의 오랜 친구이고 매달 한 차례 정도 청와대에서 식사를 같이하며 여 러 가지를 상의하는 아무개 변호사가 식사 도중 조심스럽게 현철씨의 얘 기를 꺼내며 문제를 제기하자 김 대통령이 버럭 화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 나버린 일이 있었다고 한다. 이후 청와대에서 김현철씨 문제와 관련된 얘 기는 일종의 ‘금기’로 통했다. 안기부 정보관계자도 “정보는 주로 수 요자의 구미에 맞는 것을 올리게 마련 아니냐”며 김 대통령에게 김현철 씨 관련 정보는 아예 보고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최근 전격 해임된 김기섭 전 안기부 차장의 경우는 그의 인맥 형성과정과 그 폐해의 한 단면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민주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신라 호텔 상무 출신인 김 차장은 상도동 입문과정에서 기존 가신들의 견제를 받자 김현철씨에게 적극적으로 접근했다고 한다. 김씨는 이후 현철씨의 개인비서처럼 지냈다. 서울대 정치학과 출신인 김씨는 92년 민자당 경선 때 서울대 정치학과 출신 의원들을 김영삼 후보 진영으로 포섭하는 밀사 역을 수행하기도 했다. 이른바 구TK(대구-경북)세력의 대부로 불리는 신 현확 전 총리를 김영삼 후보 진영으로 끌어들이는 데도 김씨는 큰 공 로를 세웠다. 93년 현 정부가 들어서자 그가 안기부의 인사와 예산을 관 장하는 기조실장이라는 막강한 자리에 앉게 된 것도 김현철씨의 강력한 천거 때문이었다.


중학교 동창 윤성로·박태중씨

이후 그는 안기부가 수집한 각종 정보를 김현철씨에게 사적으로 제공해 권력의 폭을 넓혀주는 한편 안기부 안팎에 적극적으로 김씨의 인맥을 심 었다. 그는 김씨가 나타나면 ‘버선발로 뛰어나온다’는 말이 나돌 정도 로 김씨를 깍듯하게 모셨으며 각종 궂은 일을 처리해주고 술자리에서도 자주 어울렸다고 한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김씨에게 전화를 걸어 “김 형이오. 나다”라며 김씨와의 친분, 곧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면서 각종 이권에도 개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장·차관 가운데 개각 직전 그로 부터 맨 먼저 자신의 입각을 통보받았다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는 또 이 홍구 신한국당 대표와도 가깝게 지내면서 각종 안기부 정보를 제공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이 대표가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로 부임한 이후 가르친 첫 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심야에 이 대표의 자택을 찾아 정 치적 조언을 아끼지 않을 만큼 이 대표에게 공을 들여왔다.

김씨의 인맥은 주로 92년 대선 때를 전후해 형성됐다. 87년 대선 때부터 이어져온 인맥은 박태중, 윤성로씨 등 그의 중대부중 동창 그룹이다. 87 년 대선에서 패배한 이들은 과학적인 선거운동의 필요성을 느끼고 중앙조 사연구소를 만들었다. 김현철씨가 ‘김 소장’이라고 불리는 것도 이 연 구소를 만드면서부터다. 중앙조사연구소 출신으로는 이들 외에 엄효현 방 송개발원장이 있다.

윤성로씨는 92년 대선 때 김영삼 후보의 사조직인 나라사랑실천운동본부( 나사본) 산하 청년사업단(청사단)에서 일했으며 현 정권 출범 이후 청와 대 비서관과 국회의장 비서관을 거쳐 현재는 최형우 의원 비서로 일하고 있다. 박태중씨는 통일민주당 전산실장을 거쳐 나사본에서 선거자금을 총 괄했다. 박씨는 현 정권 출범 뒤 ‘심우’란 회사를 만들어 청와대에 들 어가지 않은 나사본 출신들을 거뒀다. 박씨는 <한겨레21> 102호(96년 4월 4일자)에서 보도했던 대로 이때부터 거액을 들여 사업을 확장해 의혹을 사고 있다. 박씨는 또 김씨가 사용해 온 광화문 미진빌딩 사무실의 임대 료를 내고 ‘심우 해외사업부’란 간판을 붙였으며, 김씨 비서 역할을 한 정아무개씨도 심우 직원으로 행세했다. 지난 95년 국회 대정부질문에서는 “박씨가 김현철씨의 재산관리인이라는 소문이 있다”는 말이 나왔으며 이번 임시국회에서는 한보철강의 설비도입 과정에서 김씨의 리베이트 수 수의혹과 관련해 거론되기도 했다.

92년 대선 때 김씨가 이끈 조직은 청사단 외에 언론대책반과 영소사이어 티그룹(Young Society Group)이 있다. 80년대 초반 학번들인 청사단 핵심 멤버들은 상당수가 청와대에 들어갔다. 고려대 학생회장 출신으로 청사단 단장을 맡았던 김영춘씨는 청와대 정무수석실의 행정관(과장)을 거쳐 지 난해 서울 광진갑에서 공천을 받아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청사단 출신 가 운데 김씨의 개인비서 역할을 한 고려대 출신 정대희씨와 최동렬씨는 지 난해 청와대에 들어갔다. 최씨는 김씨가 지난 15대 총선을 앞두고 전국 청년조직을 재건한 신청사단을 관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사정비서관 ‘현철 인맥’이 독식

연세대 학생회장 출신으로 언론대책반을 맡았던 이성헌씨는 청와대 정무 비서관을 거쳐 지난해 서울 서대문갑에서 공천을 받았으나 김영춘씨와 마 찬가지로 낙선했다.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은 언론대책반 멤버들은 집권 이후에도 광화문 사무실에서 매일 언론동향과 논조분석, 대응방안을 보고 서로 작성했으며 현재는 공보처에 전문위원 형식으로 흡수된 상태다. 언 론대책반이 공식조직으로 흡수된 뒤 이 ‘광화문팀’에는 3~4명이 상근하 면서 정세분석 보고서 등을 김현철씨에게 정기적으로 보고하고 있는 것으 로 안다고 한 관계자는 전했다.

영소사이어티그룹을 이끌었던 이충범 변호사는 청와대 사정비서관으로 들 어갔다가 과다수임료 사건으로 6개월여 만에 불명예퇴진했다. 현재는 박 찬종 캠프에서 일하고 있다. 이 밖에 ‘임팩트코리아’로 알려진 동숭동 팀도 김현철 인맥으로 분류되고 있다. 이 팀은 교수 등 각계 전문가 50여 명으로 구성돼 상도동의 ‘싱크탱크’ 구실을 했으며 청와대 정책수석으 로 임명됐다가 며칠 만에 물러난 전병민씨가 간사 구실을 했다.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지낸 정종욱 주중대사, 염홍철 공항관리공단 이사장, 청 와대 경제수석과 통상산업부 장관을 지낸 박재윤씨, 박세일 사회복지수석 , 이각범 정책기획수석 등이 이 팀에서 일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처럼 대선 때부터 인연을 맺은 사람들 외에 현 정부 들어 맺어진 그의 인 맥은 정치권 외에도 안기부, 군, 경찰, 정부부처 등 각계에 포진해 있다.

대통령 인사대상자의 인사기록을 작성하는 청와대 사정비서관 자리를 이 충범 변호사, 김무성 의원, 김길환 의원 등 김현철씨와 가까운 인사들이 계속 차지한 것은 이런 인맥형성과 관련해 주목할 만하다.

정치권에서는 김무성 김길환 의원 외에 한이헌 정형근 원유철 이성호 의 원 등 상당수가 김씨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군에서는 하나회 제거과정에서 김씨와 깊은 관계를 맺게 된 권영해 전 국 방장관, 김씨와 경복고 동문인 김동진 현 장관, 역시 고교 동문인 김아무 개 군단장, 김씨의 장인인 김웅세 롯데월드 사장과 사돈간인 이아무개 장 군 등이 김현철 인맥으로 분류되고 있다. 군에서는 매년 정기인사 직후만 되면 이른바 ‘`소산계’(小山系: 현철씨는 아버지 김 대통령의 호 거산 에 빗대어 소산으로도 불림)로 불리는 군 수뇌부들이 김씨와 협의했다는 얘기가 무성하게 나오곤 했다.

안기부에서는 김기섭 전 차장 외에 보훈처장이 된 오정소 전 1차장이 김 현철씨와 관련한 구설에 오르고 있다. 현철씨와 마찬가지로 경복고, 고대 사학과 출신인 오 차장은 현 정부 출범 이후 3급(부이사관)에서 몇 단계 를 뛰는 고속승진을 거듭했다. 한 경찰 수뇌급 간부는 김현철씨의 미국 유학 때 알게 된 부인을 통해 가까워진 것으로 알려졌으며, 현 정부 들어 인사 때마다 핵심요직에 발탁됐다.

정부 부처에서는 특히 경제부처를 중심으로 경복고 등 학맥을 중심으로 한 김현철 인맥이 거론되고 있다. 1급 이상 인사에는 김씨쪽을 통하지 않 고는 힘들다는 얘기도 공공연히 나돌아 왔다. 특히 재경원은 PK와 경복고 출신이 1급 이상 요직과 금융정책실 등 주요부서를 장악했으며 김현철씨 가 자신의 고교 동기생들의 특진 등 과장 인사에까지 간여했다는 것이다. 박재윤 전 통산부 장관은 김현철씨와 가깝다는 이유로 개각 때마다 하마 평에 올랐으며 산업은행장과 노동부 장관을 거친 이형구씨도 김씨와 가까 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옛날엔 그렇게 과시하더니…

금융계에서도 행장 인사 때마다 김씨 관련 구설이 무성했다. 한보와 관련 해 검찰 조사를 받은 ㅈ행장은 미국 현지법인에 있을 때 김씨쪽과 친분을 맺어 그 후원으로 관행을 깨고 행장에 임명됐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검찰에서도 93년 이후 경복고 출신들이 새로운 세력으로 부각되기 시작했 다. 경복고 동문인 ㅈ검사장은 실제 김씨를 만나기도 했다고 털어놓은 적 이 있다. 변호사 사이에서도 정치에 입문하려는 소장 변호사들이 김씨와 친분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김씨는 이 밖에 재벌 2세 그룹들과도 친분을 형성하고 있다. 대호건설 이 건 회장의 아들인 이성호씨와는 미국 유학시절부터 친하게 지내왔으며 코 오롱그룹 이웅렬 회장 등과도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검찰조사 에서는 김씨가 “단 한차례 스친 적밖에 없다”던 한보그룹 정보근 회장 과 식사를 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김현철씨는 이처럼 광범위하게 형성한 인맥을 바탕으로 정치에의 꿈을 키 워왔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와의 친분을 은근히 과시하던 사람들은 지금은 아예 김씨와 관련해 언급되는 것조차 꺼리고 있다. ‘권력무상’ 이 아닐 수 없다.

김인현 기자/ 한겨레 정치부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3월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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