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1997년03월13일 제 148호

현철, 포철 쥐고 흔들었다?

(사진/장영달 의원(맨 왼쪽)은 김만제 회장(가운데)과 김현철씨의 숨은 관계를 폭로했다.)

한보사태의 와중에 이른바 ‘포철-현철 알력설’이 불거져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발단은 국민회의 장영달 의원의 2월27일 국회 대정부 질의에 서다.

장 의원은 이날 “김현철씨가 국가 기간산업체인 포항제철의 협력업체를 임의로 변경시키도록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있다”며 “이와 관련해 포철의 고위경영인이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의 간섭 때문에 정말 해먹기 어렵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장 의원의 측근에 따르면, 여기서 언급된 포철의 고위경영인은 바로 김만 제 현 포철 회장을 지칭한 것이라고 한다. 장 의원은 한 중앙일간지 경제 부장으로부터 이같은 말을 전해듣고, 일부 확인을 거쳐 이를 대정부 질의 에 포함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인사에도 직·간접 간여”

장 의원은 “94년 이후 포항제철의 기존 협력업체 가운데 9개사가 배제됐 으며, 대신 17개사가 새로 포철 협력업체로 추가됐다”면서 “김현철씨는 자신과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는 업체를 지원하기 위해, 이같은 포철 협 력업체 변경과정에 개입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김현철씨 는 협력업체 선정과정뿐 아니라 포철의 인사에도 직·간접적으로 간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장 의원은 이런 주장이 어떤 명확한 증거로 뒷받침된 것은 아니다. 또 94 년 이후 새로 포철 협력업체로 선정된 회사들과 김현철씨가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지도 아직 확인된 바 없다. 그러나 그동안 이와 유사한 루머가 포철 주변에서 끊이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장 의원은 음성적으 로 돌아다니던 김현철씨의 포철관련 의혹을 공개화하는 구실을 한 셈이다 .

그런데 공교롭게도 장 의원이 국회에서 이런 발언을 한 바로 그날, 김영 삼 대통령이 김만제 포철 회장을 청와대로 불러 단독면담한 사실이 알려 졌다. 이에 대해 보도진 일부는 “후임 총리 인선과 관련된 면담 아니냐 ”고 추측하기도 했다. 그러나 청와대 당국자는 “한보철강의 경영 정상 화 문제와 관련해 이 회사의 위탁경영을 맡고 있는 포철쪽의 이야기를 직 접 듣기 위한 자리였다”고 해명했다. 그런가 하면 포철 관계자는 “김 대통령이 지난 3년간 거둔 김 회장의 경영혁신 노력을 높이 평가하고, 3 월 중순에 열릴 주주총회에서 김 회장이 연임될 것이라는 언질을 주었다 ”고 밝혔다.

그러나 청와대와 포철쪽의 이런 설명만으로는 뭔가 석연치 않다는 게 정 가와 포철 주변의 반응이다. 한보사태 뒷수습, 개각준비 등으로 바쁠 이 시점에 김 대통령이 그런 이유로 김만제 회장을 단독면담했다는 게 너무 한가롭다는 인상을 준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다른 이유가 있다”는 추 측이 확산됐다. 장영달 의원의 국회 발언대로 김만제 회장이 김현철씨의 포철경영 개입에 대한 불만을 발설한 데 대해 경고하는 자리였다는 설도 그같은 추측 가운데 하나였다.

김만제 회장은 지난 대선 직전에 김영삼 당시 후보 진영에 경제자문팀장 으로 합류하긴 했으나, 경북 선산에서 나고 경북고를 거쳐 5공 때 부총리 와 재무부 장관을 지낸 정통 TK(대구·경북) 인사다. 이런 탓에 이번 ‘ 포철-현철 알력설’의 배후에는, 한보사태 이후 급속히 레임덕 상황에 빠 진 민주계와 이제는 제 목소리를 내려는 TK간에 서로 뭔가 물고 물린 갈 등요소가 자리잡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마저 제기되고 있다.

이주명 기자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