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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1997년03월13일 제 1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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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천문학적 규모의 대선자금을 어떻게 조달했을까. 조달경위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김영삼 대통령에게 92년 대통령선거 자금은 영원한 족쇄인가.
“노씨 뇌물수수와 다를 바 없는 일”
김 대통령의 대선자금 문제는 기본적으로 규모의 문제였다. 김 대통령의 실제 대선자금 규모가 선관위에 신고한 2백84억원을 엄청나게 상회하는 수천억원에서 1조원에 이른다는 것이었다. 이같은 의혹은 김 대통령이 천 문학적 규모의 대선자금을 어떻게 조달했느냐는 조달경위의 수수께끼로 이어진다. 김 대통령이 민자당의 대통령 후보로서 재벌기업들로부터 대선 자금을 제공받는 대가로 각종 이권을 보장하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야 당인사들은 만약 김 대통령이 92년 대선기간 동안 기업인들로부터 경제적 이권 보장을 대가로 대선자금을 받았다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재임시 뇌 물수수 행위와 무슨 차이가 있느냐면서 정치적 도덕성 차원에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한보의혹의 소용돌이 속에서 분출한 김 대통령의 대선자금문제는 현시점 에서 진위여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김 대통령 또는 현철씨나 김 대통 령의 대리인과 한보의 정태수 총회장 또는 정보근 회장이 대선자금을 매 개로 커넥션을 형성했을 것이라는 의혹의 형태로 제기되고 있다. 정씨 일 가가 이 커넥션을 배경으로 청와대나 여권의 실력자들을 동원해 금융기관 들로부터 5조원에 이르는 대출을 받아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같은 의 혹의 규명은 일차적으로 검찰의 몫이지만 검찰이 외면할 경우 차기 정권 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야당의원들이 제기한 김 대통령의 대선자금 의혹은 매우 구체적이다. 국 민회의의 박광태 의원은 지난 2월26일 국회 본회의의 경제분야 대정부질 의를 통해 “김 대통령은 지난 92년 대통령 선거 당시 노태우 대통령으로 부터 대선자금 3천억원을 받아 이중 선거자금으로 2천억원을 쓰고 1천억 원을 한보그룹 정태수 총회장에게 맡겨 돈세탁과 자금증식을 해왔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이어 “정 총회장은 이 자금으로 강원도 폐광지역에 대한 부동산을 구입해 수십배로 불렸으며 이를 다시 최고위층 자제와 관 련된 이른바 ‘황태자주’로 불리는 대성자원, 영풍산업, 동원, 만호제강 , 일신석재 등의 주식에 투자해 또다시 몇십배로 불렸다”고 주장했다. 또 국민회의의 김충조 의원은 “지난 92년 대선 뒤 사용하고 남은 선거자 금 2천7백억원 중 1백억원을 핵심선거운동원에게 수고비로 나누어주고 나 머지 2천6백억원의 투자처로 대선자금의 최대 제공자였던 한보그룹을 선 택했다는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이어 “김 대통 령이 5조7천억원의 한보특혜에 대해 확실하게 언급을 회피한 것은 수서사 건 당시 이뤄진 한보와 현 집권층의 결탁이 막대한 대선자금 지원 등으로 발전해온 역사적 진실을 은폐하기 위한 술책”이라고 주장했다. 야당의원 들의 주장은 한마디로 김 대통령이 지난 92년 대선 당시 노태우 전 대통 령으로부터 막대한 대선자금을 지원받았으며 이중 일부가 한보그룹으로 흘러들어가 권력층의 정치자금화했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92년 대 선 당시 김 대통령의 선거운동에 깊숙이 간여했던 한 인사는 “당시의 선 거자금은 김 대통령과 현철씨, 그리고 몇몇 핵심참모들만이 관계했다”면 서 “대선자금의 일부가 한보그룹으로 건너갔다는 설은 김 대통령과 현철 씨만이 그 진상을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고 전했다.
“틀림없이 노씨는 대선자금 줬다”
하지만 여권 내부에서는 한보사건이 터지기 전에도 김 대통령의 대선자금 중 일부가 한보를 비롯한 H그룹, L그룹 등 일부 재벌기업에 위탁관리되고 있다는 설이 나돌아 알 만한 사람들은 거의 알고 있을 정도였다. 이같은 의혹들은 기본적으로 김 대통령의 거듭되는 부인에도 노태우 전 대통령이 대선 당시 거액의 대선자금을 김 대통령에게 제공했다는 사실과 맞물려 있다. 노씨가 김 대통령에게 과연 대선자금을 제공했느냐의 여부는 노씨 와 김 대통령이 앞으로 밝혀야 할 부분이지만, 노씨의 측근들은 “규모는 말할 수 없지만 노태우 대통령이 김영삼 후보에게 대선자금을 제공한 것 만은 틀림없다”고 주장한다. 노씨의 핵심측근 중의 한 사람이었던 안병 호 전 수방사령관은 96년 3월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1천4백억원이 노태우 대통령으로부터 김영삼 후보에게 넘어갔다”고 증언한 바 있다. 노씨의 핵심인사들은 노씨가 대선자금말고도 김 대통령에게 거액의 ‘당 선축하금’을 전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구속 수감중인 노씨는 이 같은 의혹에 대해 가타부타 언급을 피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입을 열 가 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보의혹의 배경으로 거론되는 김 대통령의 대선자금의혹은 바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대선자금 지원설에서 출발한다. 당시 대통령 선거에 깊숙이 간여했던 여권인사들은 수서사건으로 구속됐다 풀려난 정태수씨가 그룹의 재기를 위해 차기 대통령으로 유력시되던 김영삼 후보에게 접근해 거액의 대선자금을 제공함으로써 유착관계를 구축한 것으로 추정한다. 여권에서 는 정씨가 약 6백억원을 제공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흥미있는 것은 정씨가 92년 대선 때 민주당 후보였던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에게도 30억원의 대선자금을 보냈으나 김 총재는 이를 돌려보냈다는 사실이다. 김 총재의 한 측근은 “김 총재에게 30억원을 내민 정씨가 여당후보에게 는 이보다 훨씬 많을 돈을 내지 않았겠느냐”고 주장했다. 로비의 귀재로 소문난 정씨는 여야 대선후보를 상대로 대선자금을 뿌려 수서사건으로 몰 락한 한보그룹의 소생을 시도했던 셈이다.
정태수씨는 김영삼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현철씨를 포함한 김 당선 자의 핵심인사들에게 다시 접근했던 것으로 여권 관계자들은 전한다. 대 선승리의 감격 속에서 들떠 있었던 김 후보 진영은 야당의원들의 주장대 로라면 쓰다 남은 대선자금의 처리문제를 놓고 ‘행복한 고민’에 빠졌을 시점이다. 그러면 대선기간 동안 선거자금 부족으로 쩔쩔매던 김후보 진 영에서 어떻게 해서 대선자금이 남은 것일까. 여권 관계자들은 김 후보 진영이 선거초반에는 선거자금 부족으로 애를 먹었으나 대선의 중반전에 접어들어 김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자 그때까지 팔짱을 끼고 있던 재력가들이 ‘보험료’를 내기 위해 쇄도했다고 설명했다. 그중에는 야당 의원들이 국회에서 주장한 것처럼 노태우 대통령도 포함된 것으로 여권인 사들은 추정한다. 이 대목에 대해 김영삼 대통령은 지난달 7일 연두기자 회견에서 노 대통령이 탈당한 이후 한번도 만난 적이 없으며 대선자금을 한푼도 받은 바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물론 김 대통령의 설명대로 선거 자금은 당에서 알아서 조달하고 지출했기 때문에 김 대통령이 아닌 핵심 측근들이 노씨로부터 자금을 수수했을지도 모른다. 또는 당시 사조직의 선거자금을 총괄하던 현철씨가 노씨로부터 자금을 전달받았을 가능성도 있다.
현철-보근 ‘합작형식’취했을 수도
김 후보진영에서 남은 대선자금의 관리방안을 이모저모 궁리했으나 마땅 한 묘안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 정태수씨가 이 자금을 자신이 관리해주겠 다고 제안하면서 유착관계를 맺었을 것으로 야당의원들은 추론한다. 이같 은 위탁관리 방식은 정치권의 일부 실력자들이 흔히 사용하는 정치자금 관리편법으로 알려졌다. 정치인의 입장에서 이 방식은 정치자금을 노출시 키지 않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정치인은 자금이 필요할 때마 다 기업인으로부터 이자 또는 원금의 일부를 인출하는 형식으로 끌어다 쓰며 기업인의 뒤를 봐주는 상호의존관계를 맺게 된다. 정씨는 금융실명 제가 발표되자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자금을 실명화시켜주기도 했다. 김 후 보진영은 수서사건 때 배후세력을 끝내 불지 않는 등 비호세력에 대한 의 리를 배신하지 않았던 정씨를 믿고 남은 대선자금을 맡기기로 결정한 것 으로 야당인사들은 관측했다. 양쪽이 자금의 위탁관리를 어떤 조건으로 하기로 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일각에서는 정씨가 한보철강의 일부 주식을 현철씨에게 차명 형식으로 양도하면서 한보철강을 공동소유하는 합작 형식을 취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추정한다.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한 야당의원은 현철씨가 한보철강 주식의 30%를 사실상 소유하고 있다고 주 장하기도 했다.
정씨는 여권의 실력자를 든든한 배후세력으로 끌어들인 셈이 됐다. 김 대 통령이 93년 2월 취임하면서 정씨는 배후의 비호 덕택에 대망의 철강사업 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으며 수천억원의 대출금도 쇄도했다고 알 려진다. 정씨가 필요한 자금내역을 산출해 배후 실력자에게 전달하면 배 후 실력자는 자신의 직할사단 인사들과 은행별 대출규모를 결정했다는 것 이다. 금융기관장들은 권력의 성층권에서 날아오는 대출관련 메시지를 충 실히 수용했다고 한다. 이형구 산업은행장을 비롯한 한보대출 주요 금융 기관의 은행장들은 대부분 현철씨 등 여권실세와의 각별한 관계 덕분에 은행장 자리에 올랐던 인물들이라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한보철강은 이처럼 배후실력자의 후광을 업고 은행돈을 자유자재로 끌어다 쓸 수 있 었다는 것이다. 한보철강은 순풍에 돛단 듯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철강왕국의 건설을 통해 재계의 평정을 꿈꾸는 정씨는 그러나 한보철강만 으로는 부족했다. 정씨는 문어발식 그룹확장에 착수했다. 그가 막대한 인 수자금을 어떻게 조달했는지는 베일에 싸여 있으나 한보철강의 시설자금 을 유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한보그룹은 김영삼 대통령 취임 이후 13개의 기업을 무더기로 인수한 덕분애 매출액 순위 14위의 재벌로 대약진했다. 정씨가 민주계 인사들을 상대로 융단폭격형 로비를 벌이기 시작한 것도 대팽창 시기를 전후해서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재계에서 한보배후에 현철 씨가 있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한 것도 이때였다.
그러나 이같은 급성장은 주력기업이었던 한보철강의 부실을 초래했다. 철 강업에도 불황의 파도가 밀어닥치기 시작했다. 재계에서 나돌기 시작한 배후설에 심리적 부담을 느낀 현철씨를 비롯한 배후세력은 정씨의 무리한 그룹확장에 불만을 표시했던 것으로 관계자들은 전한다. 왜 한보철강의 자금을 빼내 엉뚱한 사업에 투자하느냐는 것이었다. 정씨는 95년 말 노태 우씨 비자금 사건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구속됐다 병보석으로 석방된 뒤 3 남인 보근씨를 그룹의 회장에 취임시키고 자신은 총회장직을 맡아 경영일 선에서 퇴진하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갈등은 일단 봉합됐다. 하지만 이때 부터 한보의 배후 후광은 빛을 잃기 시작하고 한보는 걷잡을 수 없는 자 금난에 휩싸여 급기야는 부도의 운명을 맞게 됐다는 것이 증언자들의 주 장이다.
왜 갑자기 부도결정을 내렸는가
한보를 뒤에서 봐주던 배후세력이 왜 갑자기 부도결정을 내렸는지는 베일 에 싸여 있다. 정치권과 재계 일각에서는 철강업 진출을 갈구하는 재벌기 업에 97년 대선자금을 제공받는 대가로 한보철강을 넘기기로 하고 전략적 으로 부도처리한 게 아니냐는 확인할 수 없는 설도 나오고 있다. 한보의 부도를 결정한 세력은 지난 청와대 비서진 개편 때 실각한 특정고교 출신 집단이라는 설도 나돌고 있다. 정태수씨가 구속되기 직전 ‘음모설’을 거론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같은 관측들은 정씨일가와 현철씨를 비롯 한 배후세력간에 심각한 갈등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정씨일가는 앞으로 그동안 있었던 검은 유착관계의 ‘폭로카드’를 무기로 삼아 한보철강의 소유권 보전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는 시나리오도 예상할 수 있다. 이것 이 사실이라면 한보의혹은 김 대통령의 퇴임 뒤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핵폭탄일지도 모른다.
장정수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3월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