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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
1997년03월06일 제 1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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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선거운동원과 현수막만이 선거가 있음을 알리고 있는 수원시 장안구. 주민들의 관심은 냉담하기만 하다.)
“노력해서 열심히 하는데도 우리 마음대로 잘 안 되는가 하는 생각이 들 때면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입니다.”
보궐선거를 1주일쯤 앞둔 경기 수원시 장안구. 이곳 서문로터리 옆 서문 시장 골목통에서 8년째 ‘서문순대국밥 전문집’을 해온 충청도 출신 주 인 아주머니(41)는 “선거요?”라며 질문에 고개를 가로 저었다.
탁자래야 4개뿐인 비좁은 가게지만 지난해까지는 그래도 손님들이 바글바 글해 자식들 교육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다던 그녀는 “이제는 다달이 가겟세 38만원 내기도 빠듯하다”고 어려움을 털어놨다.
개인연설회 청중 고작 1백명이 최고
지난 30여년간 장안구에서 터줏대감 노릇을 했던 이병희 자민련 의원의 작고에 따라 오는 3월5일 치러지는 보궐선거를 앞둔 장안구는 의외로 썰 렁했다. 출근시간이면 후보들의 명함을 돌리는 어깨띠 두룬 선거운동원들 과 거리 곳곳에 나붙은 후보들의 현수막을 빼면 아직까지 적어도 표면상 으로는 행인들과 주민들의 모습은 무관심하리만치 냉담하다.
22일 내내 장안구 화서동 화서시장과 아파트단지 입구에서 열린 개인연설 회에도 적게는 10여명에서 많아야 1백여명 정도가 모일 뿐, 이나마 대개 는 운동원들로 채워져 있다. 선거 열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 경기불황과 고물가, 거액의 뇌물수수로 얼룩진 정치판에 대한 회의 속으로 최근에 불 기 시작한 ‘북풍’까지 슬며시 끼어들고 있다.
장안구에서는 가장 큰 대규모 아파트단지로, 4천가구 1만6천여명의 주민 들이 사는 정자동 동신아파트단지에서 2월23일 만난 주부들도 “이 정부 가 뭐하나 제대로 똑바로 하는 게 있느냐”며 물가고와 한보부도, 정부· 여당의 뇌물 구속사태에 대한 따가운 질책들을 쏟아냈다.
동신아파트 상가1호 동신약국의 김아무개(52·여)씨는 “주부들이야 뉴스 를 자세히 보는 것도 아니어서 한보사태가 뭔지 잘 알겠느냐”면서도 “ 물가는 오르는데 청와대와 장관, 국회의원들이 수억원의 뇌물 먹고 줄줄 이 구속돼서야 나라꼴이 어찌 되겠느냐”고 혀를 찼다.
김씨는 “경기가 안 좋으니 웬만한 병은 참는지 손님이 뚝 끊겼다”며 “ 목욕탕에 가면 우리 살기도 어려운데 왜 자꾸 북쪽에서는 내려오는지 모 르겠다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많다”며 웃었다.
그러나 단지내 주부들이 선거에 무관심한 듯했지만 찍을 후보(?)를 정한 경우도 꽤 있었고, 최근의 황장엽 비서 망명과 탈북자 이한영씨의 피격사 건 뒤 불어온 ‘북풍’이 낮은 투표율이 예상되는 이번 선거에서 유력한 투표권을 가진 주부들 사이에서 만만치 않게 퍼져 나가고 있다.
두 아이들을 데리고 가던 한 30대 주부는 “투표에는 꼭 참여할 것”이라 면서도 “아직 누구를 찍을지는 결정을 못했다”고 말했다. 이 주부는 “ 지난번 선거에도 야당을 찍었는데 떨어졌다”며 “이번에는 야당이 단일 후보라고 해서 보았더니 각각 나왔더라…”며 말끝을 흐렸다.
단지내 은행 자동금고에서 만난 201동에 산다는 주부 김아무개(33)씨는 일찌감치 후보를 정한 경우이다. 김씨는 “북한의 황장엽씨가 귀순하고 이한영씨가 간첩한테 보복당하는 모습에 걱정이 앞섰다”며 “시국의 우 선 안정을 후보 기준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경제망친 정치 투표로 혼내야지
주부들만큼이나 경기에 민감한 것은 상가 주민들. 이들의 목소리는 경기 불황과 고물가에 따른 깊은 신음에서 한발 더 나아가 국정을 책임진 정부 에 대한 성토와 투표로 혼(?)을 내겠다는 뜻도 내비친다.
화서동 화서시장에서 시장 상인들을 대상으로 ‘청솔숯불돼지갈비 주물럭 ’을 열고 있는 사장 배태순(39)씨는 “시장 상인들이 모여 앉으면 그래 도 일국의 대통령인데 아예 욕부터 해대니 이거 원 뜯어 말릴 수도 없고 …”라며 씁쓸해 했다. “정치도 경험있는 사람이 해야 되는 것 아니냐” 며 “경제를 다 망쳐놨으니 민심이 분노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정자동 430-6에서 4년째 그린동물병원을 운영하는 김수영(32) 원장도 “ 새벽에 노동법을 날치기하고 많은 한보비자금이 대통령쪽으로 들어간 것 으로 국민들이 믿는데도 수사를 덮어둔데서야 이 정부를 국민이 곧이 믿 겠느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그러나 “경기가 이처럼 좋지 않은 상황에서 선거는 남의 일”이라는 분 위가 또한 적지 않아 투표 참가율이 낮을 것이라는 예측이어서, 조직력이 약한 야당 후보들은 투표율 높이기에 고심하고 있다.
그렇다고 물가고와 정부 정책에 배신당한 이들이 희망을 버린 것일까.
배사장과 김 원장 같은 유권자들은 “젊고 부패에 물들지 않은 참신한 사 람들이 새로운 정치를 열어가야 한다”는 말로 새로운 정치에 대한 갈증 을 표시하고 있었다.
수원=홍용덕 기자/한겨레 사회2부
© 한겨레신문사 1997년03월0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