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경제
1997년03월06일 제 147호 한겨레21

무한경쟁시대, 전문화가 살길이다

서상록/ 중소기업연구원 부원장

H그룹 총수의 낚싯대 경영론이 우리 재계에 묵직한 반향을 일으켰으면 얼 마나 좋을까? J회장은 본인의 사업철학을 이렇게 술회했다. “낚싯대 열 개를 걸쳐 놓는다고 고기가 다 물리는 게 아닙니다. 사업도 분수를 지키 며 전문성을 가져야 합니다.”

그룹의 전체사업 중 약 70%(매출액 기준)를 운송·여행관련업이란 핵심사 업에 집중시키고 있는 그였기에 이러한 낚싯대 경영론을 거리낌없이 펼 수 있었으리라. ‘백화점’식 비관련 사업다각화를 경영의 다반사로 여기 면서 당국이나 언론으로부터 문어발식 경영을 하고 있다는 질타를 받으면 서도 부동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다른 재벌 총수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발군의 담론이 아닌가? 반세기 이상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그의 노숙한 낚 싯대 경영론에 전업화의 경영이론이란 해설을 붙일 수밖에 없는 것이 경 영평론가의 구실일 듯싶다.

전문화로 이룩한 GE의 기록적 성장

1981년 이래 미국의 GE에서 새로운 경영신화를 창조하고 있는 세기의 경 영 탤런트, 잭 웰치가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하고 제일 먼저 착수한 작 업이 GE의 사업분야를 철저한 전업화의 방향으로 재편성하는 일이었다. 그는 업계의 넘버원이거나 넘버원이 될 수 있는 전문분야를 3개의 원으로 ‘그룹화’하고, 3개의 원 안에 들지 못하는 사업은 과감히 정리하였다. 이른바 전업화로의 리스트럭처링(기업 재구축)을, 그는 이루어낸 것이다. 지금까지도 진행하고 있는 GE의 기록적인 성장은 이러한 전업화적 리스트 럭처링의 반석 위에서 이루어진 성과이다.

세계적인 경영학자들도, 지구촌이란 거대한 시장에서 무한경쟁의 적자(適 者)가 되기 위해서는 넘버원 사업부문을 구축하고 이에 전업해야 한다는 공통된 논리를 펴고 있다. 예를 들면 C. K. 프라하라드는 어떤 기업이 가 장 잘하는 총체적 역량을 핵심역량이라고 정의하고, 각 기업이 핵심역량 부문에 자원을 집중하는 것이 글로벌경영의 기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강연료를 받는 경영경제학자의 한 사람인 M. E. 포터 는 글로벌경영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각화전략 대신에 전업화전략을 펴 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이는 보통 ‘포터의 법칙’으로 통한다. 그는 한국재벌의 ‘문어발식’ 복합기업 경영에 대해서 공개적인 충고를 보내 고 있는 학자이기도 하다.

필자가 아는 한 낚싯대 경영론을 편 총수가 이끄는 H그룹의 전업화 비율 이 10대그룹 중 가장 높으며, 다른 그룹은 아직도 비관련다각화의 사업 포진을 고수하고 있다.

재벌그룹의 중소기업 고유업종 침해에 대한 변(辯)은 다음과 같다. “세 계무역기구(WTO)체제 가동 및 경제개발협력기구(OECD)가입으로 중소기업 영역에도 외국의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이 밀어닥칠 터이다. 국내의 연 약한 중소기업들은 이들을 맞상대할 역량이 없으므로 우리가 나서야 한다 .”

개방체제 적응토록 중소기업 육성해야

한국의 재벌들이 외국의 중소기업에 대항하여 ‘헤비급 대 플라이급의 경 쟁’을 하겠다는 논리에 필자는 쓴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다. 올바른 대 응논리는 이렇다. “우리의 중소기업을 하루빨리 육성하여 경쟁력을 키워 줌으로써 개방체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들로 하 여금 외국의 중소기업과 경쟁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중소기업에 대한 ‘적응조성정책’ 기본이다.” 정책 당국이 지혜를 짜내어 WTO체제 의 개방화논리와 양립할 수 있는 중소기업 육성정책을 개발해낼 것을 촉 구하는 논리이다.

잔잔한 목소리로 재계에 자성을 촉구하고 있는 J회장의 낚싯대 경영론이 대기업의 본격적인 리스트럭처링에 시동을 걸어 주기를 강력히 희망한다. 그리고 대기업의 리스트럭처링이 바로 중소기업 고유영역으로부터의 철수 로 이어질 것을 촉구해 마지않는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3월06일


커버스토리 포커스 문화시대 특집 지난호 전체보기 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