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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
1997년03월06일 제 1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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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홍구 대표는 국회연설을 통해 가신정치와 붕당정치를 매섭게 비판함으로써 대권경쟁에서 마음을 비웠다는 것을 표시했다.)
노동법파동과 한보사태를 거치면서 여권의 대선구도가 크게 변하고 있다. 9룡으로 표현돼온 여권 대선주자들의 단순한 수적 압축이 아니라 대선주 자들간의 내부 역관계에서 새로운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안팎의 여러 가지 요인들로 인해 낙오자가 생긴 반면에 새로 급격히 부상되는 인 물도 나오고 있는 등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는 셈이다.
마음 비운 이 대표, 가시박힌 국회연설
지난 연말 노동법 날치기처리 이후 두달 동안에 일어난 가장 두드러진 현 상 중의 하나는 이홍구 대표의 추락이라고 볼 수 있다. 지난 96년 5월 대 표에 취임한 이후 이 대표는 사고의 합리성과 원만한 대인관계, 부드러운 성격 등으로 집권세력인 민주계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대안’으 로 부상했다. 여론 지지도면에서는 비록 뒤떨어졌지만 김 대통령과의 돈 독한 신뢰관계 등으로 인해 다른 주자들을 위협했다.
그러나 이 대표는 자신의 책임 여부와 관계없이 여권이 맞고 있는 현재의 총체적인 위기상황에 따라 대표직에서 물러나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부딪 혔다. 이 대표는 지난 1월에 두 차례 대표직 사임 의사를 김 대통령에게 밝히는 등 이미 마음을 비운 것으로 보인다. 이런 징후는 지난 2월19일 국회 대표연설에서도 나타났다. 그는 “정당의 운영이 오로지 총재 일인 과 몇몇 측근들에게 집중된 한국정당의 운영행태는 우리 정치의 선진화를 위해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라며 가신정치와 붕당정치를 매섭게 비판 했다. 이 대표는 애초‘3김정치 청산’이라는 단어까지 연설문에 넣었다 가 막판 조정과정에서 뺏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당에게도 해당되는 아픈 문제들을 여당 대표가 직접적으로 공격한 것은 이례적인 일인데, 대표연설 뒤 청와대의 한 고위당국자는 즉각 “이 대표 역시 붕당정치의 소산이자, 반민주적인 방식으로 선출된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불쾌감이 그대로 묻어나는 말이다. 이 대표의 한 측근은 “이 대 표가 이번 연설을 마지막 국회연설이라고 생각한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 다.
그가 대표직을 물러날 경우 대선주자로서 본격적으로 뛸 가능성은 많아 보이지 않는다. 일단 이 대표의 스타일이 ‘야전지휘관 스타일’이 아닌 데다가 노동법처리 과정 등에서 입은 대국민 이미지 등으로 인해 백의종 군을 하더라도 실점을 만회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대표의 측근도 이와 관련해 “이 대표의 대표직 퇴임을 대선주자로 뛰기 위해서라고 설 명하더라도 국민들이 그렇게 믿어주겠느냐”고 반문했다.
민주계 신실세의 선택, 이수성?
(사진/이홍구 대표의 대안? "이 대표 지원 그룹이 노동법과 한보사태 이후 이수성 총리를 새로운 지원자로 결정했다"는 얘기들이 나돌고 있다.)
이 대표의 도중 낙마는 9명의 주자 가운데 한 사람의 탈락이라는 단순한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그동안 민주계의 신실세로 일컬어지는 청와 대의 주요 인사들과 김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와 가까운 인사들이 지원해 온 유력한 ‘`차기 카드’였던 셈이다. 대세몰이를 하는 이회창 고문이나 여론 인기도에서 앞서가던 박찬종 고문, 그리고 민주계 내부 주자인 최형 우 고문과 김덕룡 의원을 견제하던 중심축에 해당됐던 것이다.
이 대표의 퇴진이 확실시될 경우 상대적으로 유리하게 되는 것은 물론 그 동안 여론의 지지도에서 우위에 있던 이회창, 박찬종 고문 등과 같은 영 입파이다. 확률적인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대선 게임은 확률만으로 결정되지 않는 복잡미묘한 변수가 많다. 우선 민주계의 신실세가 이 대표 카드를 대신할 새로운 대선 카드를 만드 느냐 하는 문제이다.
정치권에서는 “이 대표를 지원하는 그룹이 노동법과 한보사태 이후 이수 성 총리를 새로운 지원자로 결정했다”는 얘기들이 나돌았다. 이러한 맥 락에서 이 총리의 당 대표나 고문 추대설이 힘을 얻고 있다. 대선 구도를 막판까지 안개로 끌고가 소위 ‘`김심’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서도 이 총리 카드를 유효하게 살려놓아야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대선주자 그룹인 당 고문에 일단 진입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민주계 일각에서 이 총리의 당 진입을 반대하는 등 반론이 적지 않아 실현가능성은 아직 반반이며 당내에서는 “이 총리가 대선주자로 뛰 기에는 너무 늦었다”라고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민주계의 한 다선 의원 은 “지금 이 총리가 당에 들어와서 주자로 뛰어봐야 무엇을 어떻게 하겠 느냐”며 “쓸데없는 혼선을 갖고 오는 일은 지양해야 할 것”이라고 말 했다.
남은 변수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민주계 주자의 정리문제이다. 한보 사태로 민주계 주자인 최형우 고문과 김덕룡 의원이 많은 상처를 입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은 여전히 실권자들이다. 이들이 단일한 목소 리를 낼 경우 그 파괴력은 무시하기 힘들다.
이런 가운데 ‘민주계 후보단일화’가 추진되고 있는 점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최형우 고문과 김덕룡 의원의 역할분담론이 이미 나오고 있다. 즉, 최 고문이 당 대표를 맡고 김 의원은 대선주자로서 뛴다는 역할분담 론이 내부적으로 마련됐다는 얘기도 들린다.
특히 김 의원의 대선주자에 대한 집념과 의지가 확고한 것으로 알려져 앞 으로 디알(DR: 덕룡의 영문 머릿글자에서 따온 김 의원의 별칭) 변수가 신한국당 대선 경쟁에서 주요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디알은 지난 2월16일 서초동의 한 예식장에서 전국의 주요 지지자 4백여 명을 소집해 대선 경쟁에 나설 뜻을 단호하게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 자리에서 “당내 경쟁에 끝까지 남는다. 흔들리지 마라”고 말했 다는 것이다. 그의 한 측근은 “우리는 설령 김 대통령이 말린다고 하더 라도 경선에는 참가한다는 각오”라고 밝혔다.
그러나 민주계 일각에서는 “민주계 주자들은 대중성에서 도저히 안 되는 것 아니냐. 이제는 경쟁에서 아예 배제시켜야 한다”는 얘기를 공공연하 게 제기하고 있다. 디알의 대선전선에 최대 걸림돌은 바로 민주계 내부에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주가상승 이한동도 “불러만 달라”
(사진/이홍구 대표의 추락으로 대권고지에 한발 더 다가선 이회창 고문(사진 왼쪽)과 박찬종 고문. 세몰이와 여론을 바탕으로 전력질주를 다하고 있다.)
대선주자 정리에서 마지막 남은 문제는 최근 총리나 대표 물망에 오르내 리는 등 주가가 올라가고 있는 이한동 고문이다. 이 고문은 대선주자에 강한 집착을 보이면서도 총리나 대표 기용설에 전혀 거부감을 보이지 않 고 있다. 즉 제의가 있다면 기꺼이 당정의 주요 포스트를 수용하겠다는 태도이다. 이 고문쪽에서는 물론 총리나 대표를 맡는다고 해서 반드시 대 선주자에서 배제되는 것이 아니라 상황 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주자로 복 귀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이 고문에 대한 김 대통령의 신뢰감 때문에 이 고문이 한 자리 맡을 가능성은 상당한 것으로 보이며, 이 경우 이 고문쪽의 희망과는 상관없이 대선경쟁에서는 한발 비켜서는 것으로 해 석될 것이다.
따라서 이제 여권의 대선주자는 이회창, 박찬종 고문 등 2명의 확고부동 한 주자에다가 이한동 고문과 김덕룡 의원, 이수성 총리 등 당정개편에 따라 주자 여부가 판가름나는 가변적인 주자 3명으로 구분할 수 있다. ` 가변 주자 3명 중 1, 2명이 주자로서 계속 남는다고 할 때 신한국당의 대 선주자는 3명에서 4명으로 압축되는 것이다.
얼마 전 청와대와 신한국당에서 나온 `미국식 예비선거제 도입 검토는 3 월 초께 대대적인 당정개편을 통해 압축된 주자에 대한 관리 방식의 일단 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식 예비선거제를 그대로 도입하는 것은 물론 실현가능성이 별로 없다 는 데 대부분의 여권 인사들의 견해가 일치한다. 이들은 “예비선거의 정 신이나 내용의 일부를 도입해 당내경선에서 자유경선 요소를 늘리는 방향 으로 될 것”이라고 말한다. 시도별로 후보초청 토론회를 열어 경선 분위 기를 고조시키는 등 3, 4명의 후보간 공정 경쟁의 틀을 마련한다는 것이 다.
이 경우 형식적인 불공정 시비도 줄이면서도 김 대통령으로서는 대의원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 차기 후보를 사실상 `낙점하겠다고 공언해온 김심의 표출이 직접적 으로 이뤄질지 간접적으로 은밀하게 작용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마지 막 남은 3, 4명 주자 가운데 `정치적 협상이 이뤄진 사람을 어떤 식으로 든지 밀려고 할 것은 분명하다.
김종철 기자/ 한겨레 정치부
© 한겨레신문사 1997년03월0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