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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
1997년03월06일 제 1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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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난영 작 `너도 한번 볼래?')
이주헌/ 미술평론가
미술관은 흔히 미술작품의 공동묘지라 불린다. 창작된 작품이 각종 전시 를 통해 대중에게 선보이고 소장가들 사이를 돌아다니다가 종국에 안착하 는 곳이 바로 미술관이기 때문이다. 이 엄숙한 ‘미술품의 공동묘지’에 서 유머를 찾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4월4일까지 열리는 성곡미술관(02 -737-7650)의 ‘미술관에 넘치는 유머’전이 그것이다.
이미지 차이로 빛나는 유머의 생명력
유머는 어디에서 발생하는가? 무엇보다 ‘거리두기’에서 발생한다. 현실 또는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유머가 생겨날 수 없다. 만약 택 시를 탔는데 종착지에 이르러 보니 지갑에 돈이 없다면 그것은 유머일 수 없다. 이런 경우 벌어진 상황과 당사자 사이에는 아무런 간격이 없다. 난 감함만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같은 경험을 훗날 술자리 같은 데서 화 제삼아 이야기하고 그로 인해 동석자들이 한바탕 웃음을 웃었다면 이는 분명 유머다. 시간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당사자가 당시의 상황으로부터 멀 어져 있기 때문에, 거리가 주어졌기 때문에 비로소 유머가 발생한 것이다 . ‘미술관에 넘치는 유머’전은 바로 이 ‘거리감’에 대한 시각예술적 보고다. 현실의 이미지와 예술의 이미지가 빚은 차이로 인해 관람객이 웃 음을 머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보이려는 전시인 것이다.
이 전시의 출품작가는 김난영, 김용철, 김섭, 김홍주, 안창홍, 안성금, 양진식, 윤동천, 육태진, 이강우, 이완호, 임영재, 지석철, 최석운, 최승 호, 황주리 등 모두 16명. 30, 40대의 소장·중견작가들이다. 이들이 유 머의 대상으로 삼은 소재는 성, 부부생활, 돈, 종교, 교육, 자기 자신, 사회적 사건 등 다양하다. 작가에 따라서는 유머 만들기에 꽤 성공한 경 우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주제전이니만큼 예술적 표현능력 이 외에 주제 소화능력이 요구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만큼 감상과 수용 의 과정도 주어진 주제에 영향받을 수밖에 없다. 감상자는 출품작가에게 무엇보다 ‘웃을 권리’를 요구하게 된다.
김난영의 작품 <너도 한번 볼래?>는 성을 통한 현실풍자 연작이다. 뒤에 서 바라본 여성 엉덩이 이미지의 조형물에 동전 투입구와 ‘엿보기 구멍 ’을 창작했다. 5백원짜리 동전을 넣으면 한쪽 엉덩이에서는 포르노 필름 이 돌아가고 다른 한쪽 엉덩이에서는 홍조를 띤 부처의 얼굴이 나타난다. ‘중인환시리’(衆人環視裡)에 포르노 필름을 보라 하면 얼굴을 붉힐 점 잖은 관객들이 이 작품 앞에서는 줄지어 관람하는 ‘문화적’ 현상도 벌 어진다. 우리 시대의 관음증과 성 상품화를 미술관이라는 제도 속으로 끌 어들여 엇박자로 비튼 작가의 재치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붉은 천이 갈린 테이블 위에 남성 성기 모양을 한 소시지 한 접시와 여성 성기 모양을 한 조개 한 접시가 같이 있는 김난영의 다른 설치작품도 매 우 짓궂은 익살로 관객에게 다가온다. 작가가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라는 점에서 이런 노골적인 성 묘사는 결국 공격적 페미니즘의 성격을 일정 정 도 띠는 것이라 하겠다.
노골적인 성묘사에 뼈가 숨겨져 있다
윤동천의 자화상 시리즈도 ‘뼈가 있는 유머’다. 그는 우선 각종 곤충과 식물의 이미지(흑백도감 형식으로 그려진)를 크게 확대복사했다. 그리고 프레임으로 작품을 고정하기 전에 각 이미지와 관련된 글귀를 그림 아래 집어넣었다. 각각의 곤충과 식물 이미지 아래 쓰여진 글귀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자화상: 거미-와도 같이 탐하는’, ‘자화상: 거머리-보다도 찰거머리 같은’, ‘자화상: 파리-만큼이나 귀찮은’, ‘자화상: 바퀴벌 레-같이 약삭빠른’, ‘자화상: 송충이-보다 흉물스러운’ 등. 곤충의 이 미지를 빌려 스스로를 반성한 그의 자화상들에서 우리는 인간이라면 보편 적으로 느끼는 스스로의 결점에 대한 자괴감을 이심전심 공유하며 조용한 웃음을 머금게 된다.
그런가 하면 이강우의 <취조, 심문 대비 8가지 행동지침>은 최근 한보사 태의 주역인 정태수씨를 연상시키며 냉정한 현실비판으로 이어진 작품이 다. 작품은 검은 마스크를 쓴 인물이 클로즈업된 사진 8개로 구성돼 있다 . 여기에 일련 번호를 매기고 그 번호마다 설명을 달아놓았다. 캡션 몇 가지를 보면 다음과 같다. ‘묵비권을 굳게 행사한다’ ‘위압적인 태도 를 취하며 한마디 한다’ ‘내가 입을 열면 여럿 다친다’ ‘일단 횡설수 설하며 물타기를 시도해 본다’ ‘그다음 적당히 내놓을 만한 것을 정리 해둔다’ ‘위기에 몰릴 땐 끝까지 버티어라. 다른 무엇보다 신용이 가장 중요하다’.
그 밖에 안중근 의사 사진과 일본돈 1천엔권의 이토 히로부미 모습을 함 께 전시한 안성금의 <관점의 차이???>에서는 한-일간 민족감정에 기반한 블랙유머가, 고상한 서예 형식에 대변의 이미지를 중첩시킨 김홍주의 작 품에서는 물신주의적인 현실에 대한 비꼼이 각각 엿보인다.
개그로 이어받은 대항의 전통
미술사에서 유머러스한 그림을 대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16 세기 플랑드르의 대가 브뤼겔이나 네덜란드의 ‘어글리 리얼리즘’에서 서양미술의 유머를 진하게 맛볼 수 있다면, 단원 등의 풍속화에서 우리 특유의 유머와 해학을 또 진하게 만끽할 수 있다. 둘 다 민중적 시각이 큰 바탕이 됐다는 점에서 역시 유머는 현실에 대한 비판, 거리두기에 그 젖줄을 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대미술에서는 유머와 깊은 관련을 맺 고 있는 다다, 초현실주의, 플럭서스 등의 흐름이 백남준이 “예술은 사 기다”와 같은 개그를 무척이나 애용했다는 점, 그리고 이런 흐름이 이른 바 ‘반예술’의 전통에 속해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미술 속의 유머가 ‘안티’, 곧 대항의 전통에 서 있음을 본다. ‘미술관에 넘치는 유머’전은 그러므로 요즘 우리 작가들이 현실에 대해 느끼는 부정의 정 도 또한 웬만큼 나타내주는 전시다. 물론 그 비판의 거리는 작가마다 제 각각 다르지만.
© 한겨레신문사 1997년03월0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