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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1997년03월06일 제 1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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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대니 보일/주연 이안 맥그리거,유원 브레넘
김정룡/영화론론가
감동적이라고 말할 순 없어도 `트레인스포팅'이 새로운 영화인 것은 확실 하다. 이 새로움이란 흔히 90년대 영화 혹은 대중의 감성을 대변한다는 쿠엔틴 타란티노, 마티외 카소비츠, 왕가위 영화를 말할 때의 그것과 아 주 비슷하다. 꼼꼼히 따져보면 내용이나 형식면에서 차이점이 공통점보다 더 많이 드러나지만, 그래도 흘낏 보기에 이들의 영화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특징을 공유한다. 우선 복잡하게 얽히거나 해체된 내러티브, 현기증 이 일 만큼 분절적이고도 현란한 시각 이미지의 활보, 욕설, 폭력, 방황, 마약, 죽음 등 선정적인 소재와 가벼운(가벼워보이는) 주제 의식, 이들의 경쾌하고 경박한 난무. 이런 면면들은 기존 영화의 관습을 깬다기보다 영 화에 관한 태도의 전환을 보여준다. 전통적인 이분법, 즉 상업적인 대중 영화와 예술 영화 사이에 서서 분류의 기준을 애매하게 일그러뜨리며, 총 체성 대신 다의성을, 정체성·동일체성 대신 분열성을, 실존에 대한 고통 스런 모색 대신 현상의 표면을 유쾌하게 유랑하는 쪽을 택하되 그렇다고 오락영화처럼은 아니고, 유희의 진정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적극적이고 진 지한 그런 태도. 그 태도는 ‘중심의 혼돈, 중심의 상실’이라는 90년대 의 현실에 근거한다. 위에 열거한 감독의 영화가 뛰어나다는 것에 동의하 지 않는 이일지라도, 이들이 시대의 정신을 적극 반영하고 있는 ‘다른’ 영화라는 점에는 수긍할 것이다.
대니 보일 감독의 데뷔작 `쉘로우 그레이브'는 유쾌하면서도 진지하다. 감독은 인간의 본성, 본능을 폭로하기로 작정하고 돈을 둘러싼 우스꽝스 러운 소동극을 벌였다. `트레인스포팅'은 그 유쾌한 진지함의 연장선 위 에 있다. 여기서 마약은 청춘의 절망을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소재일 뿐 이다. 감독은 `이지라이더' 이래로 청춘 영화가 많이 써먹은 이 낡은 도 구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영화는 무엇보다도 청춘의 행동거지에 주목한다 . 특히 움직임. 뛰고, 앉고, 눕고, 걷는 주인공들의 행위는 영화의 주제 를 함축하는 모티브다. 이는 각각 거리의 질주, 식당의 대화, 빈방의 고 독, 돈을 갖고 튀는 배신의 에피소드를 이끄는 동작이다. 어떤 동작을 취 해도 그들은 막막하기만 한 인생이다. 출구가 없다. 토미는 기차가 끊어 진 허허들판에서 산으로 가자고 말하지만 지금은 60년대가 아니다. 대자 연을 희구한 히피들과 달리 90년대의 젊은이들은 도시를 떠나지 못한다. 그러나 우울한 도시의 뒷거리를 배회할 수도 없다. 지금은 70~80년대가 아니니까. 그저 도시의 빈방에서 빈방을 오갈 따름이다. 질풍노도와 지리 멸렬 사이에서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랜튼 패거리의 일상은 사실 따분하 기 그지없다. 가장 역동감 넘치는 현장은 오프닝 시퀀스 이래로 자주 삽 입되는 골목길의 질주 장면이다. 하나 알고 보면 별일 아니다. 식료품 따 위를 좀스럽게 털고 튀는 좀도둑질인 것이다. 그들은 암살자와 반항아의 포즈를 즐거이 취하지만, 기껏해야 풀밭에 엎드려 말못하는 강아지에게 ‘똥침’을 놓거나 좌약식 마약을 끼운 다음 괄약근을 오무린 채 낑낑거 리는 게 고작일 뿐이다. 화목한 아침 식탁에서, 그것도 여자 친구 집에서 온 식구들에게 분뇨를 세례한 것은 반항인가? 아니다. 정말 죄송하지만, 나로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는 게 스퍼드의 쩔쩔매는 모습에서 드러난다. 반항적 태도의 시대적 전환. 90년대라는 왜소한 시대에 걸맞은. ‘스코틀 랜드에서 가장 더러운 화장실’장면에서 감독은 애시당초 이 영화를 사실 주의적 리포트 대신 시대 상징에 대한 스케치로 나가려는 의도를 밝힌 것 이다. 더러운 마약을 끊고 더러운 친구 관계를 끊어버려도 전망이 없는 청춘, 나의 길을 가련다고 외치지만 갈 길이 없는 인생, TV, 깡통 따개, 마약, 친구 등 원하지 않는 품목만 전시되어 있는 세계를 영화는 경쾌하 면서도 을씨년스럽게 그렸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3월0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