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
1997년03월06일 제 147호 한겨레21

재탕 앨범의 재탕 히트!

(사진/과거 히트곡들을 골라 재편집한 편집앨범들이 음반시장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The Power Of Love'(워너, 소니)가 음반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1월23일 발매돼 한달 만에 벌써 20만장을 돌파해 음반사의 효녀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발매하자마자 팝음반 판매순위 1위로 올라서더니 `샤 인' `에비타' 등 영화 사운드트랙 앨범의 거센 도전에도 현재까지 몇주째 수위를 고수하고 있다. 사실 이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편의점까지 진출 인기몰이

기본적으로 발라드에 약한 국내 팝팬들을 염두에 두고 편의점 진열대에까 지 진입하는 등 철저한 상업성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이 음반엔 에릭 클랩 튼, 셀린 디온, 머라이어 캐리, 마이클 볼튼 등 90년대 최고의 팝가수에 필 콜린스, 시카고, 보니 타일러, 조지 마이클, 포리너에 이르기까지 80 년대 국내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이들까지 총망라했다. 당연히 곡도 타이틀곡인 `The Power Of Love'를 비롯해 `Without You' `Hard To Say I ’m Sorry' `Total Eclipse Of The Heart' `Careless Whisper' 등 이미 국내외에서 대히트를 기록한 곡들로 빼곡이 채워져 있다. 재탕 히트를 단 단히 벼른 두 음반사는 텔레비전, 라디오 광고를 마구 퍼부은 것은 물론 온갖 이벤트까지 마련하는 등 2월 내내 시끌법적했다. 워너쪽은 “동남아 시장을 염두에 두고 본사에서 기획한 음반”이라면서 “같은 앨범명으로 2, 3집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EMI가 발매한 `메가히트 8'도 역시 요즘 음반시장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 다. 마이클 런스 투 록, 조지 마이클, 스파이스 걸즈, 바네사 메이 등의 대표 히트곡을 한 앨범에 담았기에 ‘메가톤’급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 히트’는 당연할 것이다. 여기에 얼마 전 록레코드가 `in Love with Blue s, vol.1'을 펴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블루스 발라드 컬렉션’ 이라는 부제를 단 채. `When A Man Loves A Woman' `Tears In Heaven '에 `Love Me Tender' `Let It Be Me' 같은 골동품까지 먼지를 털어내 끄집어 냈다. 1집부터 ‘vol.1’이라는 타이틀을 달아 음반사의 의지를 잘 나타 내주고 있다. 워너뮤직은 또 국내기획으로 오는 3월 국내 음악전문가 14 명의 추천곡을 모은 또다른 컴필레이션 음반 `Critics Choice'를 펴낸다.

이처럼 현재 음반시장의 주류는 컴필레이션(편집) 음반이다. 팝, 재즈, 크로스오버, 클래식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불문하고 컴필레이션 앨범이 계 속 쏟아지고 있다.

특히 메이저 음반사의 합종연횡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95년 7월 아시아 전역에서 출반된 폴리그램과 EMI의 연합앨범 `NOW'가 2백만장(국내 63만 장)이 팔리면서 아시아 지역에서 편집음반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 되고 있다. 길거리에서 팔리는 ‘신세대 최신가요’ 불법테이프의 합법적 인 팝 버전이다.

컴필레이션 음반이 음반시장을 휘어잡는 이유는 간단하다. 앨범 하나로 이미 잘 알고 있는 유명한 곡들을 들을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지 리 스닝 뮤직을 원하는 사람들에겐 경제적 이유만으로도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한장의 앨범에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등장하는 것까진 좋 으나 팬들을 과거 히트곡에만 머물게 한다는 것은 결국 근시안적인 제살 깎아먹기라는 지적이 많다.

편집앨범 결국은 제살깎기

앨범은 한 음악가가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 만든 하나의 완결된 작품 이어야 한다. 컴필레이션 음반의 활황은 음반기획자들로 하여금 독집 음 반(창작곡)의 마케팅 분야를 도외시하는 결과를 초래해 해가 갈수록 컴필 레이션 음반의 밑천이 달릴 것은 뻔한 일이다. 결국 불황 타개의 첨병이 또다른 불황을 낳을 복병이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이런 음반시장의 왜곡현상을 타개하고 팬들의 구미도 만족시키기 위한 방 편으로 싱글음반 도입을 요청하는 이들이 많다. 최근 ‘삐삐 롱 스타킹’ 과 ‘넥스트’가 싱글음반을 내놓았고 지난해 강수지가 2곡을 담은 싱글 앨범으로 18만장의 판매고를 올린 사실을 보더라도 국내 싱글음반 시장의 잠재력은 상당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제작자 입장에서는 제작비는 비슷하 게 들어가고 CD가격은 절반밖에 받지 못하는 싱글음반은 지금까지 기피대 상 1호였다. 외국과는 달리 국내 음반 제작비의 상당부분이 마케팅 비용 으로 쓰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음반사를 욕할 순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딱히 대안도 없는 음반시장의 컴필레이션 음반 범람에 대해 그저 수수방관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이런 행태가 장기화될 경우 음악은 ‘ 예술’이 아닌 ‘상업’의 장르로 추락할 수밖에 없다(또하나의 ‘타락천 사’). 그래서 ‘Power of Lo~ve’를 열창하는 셀린 디온의 목소리에 우 리 국내 음반시장의 미성숙과 왜곡이 함께 묻어나와 우울해진다.

권태호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3월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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