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1997년03월06일 제 147호 한겨레21

중원의 붉은별 지다

(사진/덩샤오핑의 사망을 일제히 1면 머릿기사로 올린 일본의 신문들. 중국의 권력투쟁이 전개되면 중-일관계는 심각한 영향을 받게 될 전망이다.

‘덩샤오핑 사후의 중국’은 국제사회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지난 1월20일 새벽 중국 <신화통신>이 중국 지도자 덩샤오핑의 사망을 공 식보도한 이후 세계 각국의 관심은 단연 중국에 쏠리고 있다. 덩샤오핑 사망 발표 직후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은 특별성명을 통해 장쩌민 국가 주석과 중국 인민들에게 심심한 애도의 뜻을 전했다. 또 영국·프랑스 등 주요 서방국가와 남북한·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 러시아 등 옛 사회 주의권 국가 등 전세계 주요국들도 일제히 덩의 죽음에 조의를 표했다. 그러나 이런 표면적인 애도표시와는 달리 각국은 ‘덩 사후 중국’이 어 떤 방향으로 나아갈지에 대해 촉각을 한껏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에 맞 서 유일하게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중국이 덩샤오핑 사망과 함께 큰 혼란을 겪는다면 그것은 곧바로 동북아, 나아가서는 세계평화에 큰 위협 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78년 개혁·개방정책으로 전환한 중국은 현재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 체(APEC) 회원으로 있으며,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위해 노력하는 등 국제사회에서 계속 참여의 폭을 넓혀오고 있다. 또 중국은 연 10%가 넘는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2000년대 중반에는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경제대 국으로 떠오를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반개혁 무마하던 카리스마 사라져

국제사회는 이런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이 총지휘자였던 덩샤오핑의 사망 과 함께 후퇴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해 중국 당국의 공식반응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지난 1월20일 중국 국무부는 “덩샤오핑 동지가 서거했지만 중국은 안정된 정치환경과 신속한 경제 성 장, 사회안전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혀 중국 당국의 입장을 대변했다. 또 차오스 전국인민대표대회(우리의 국회에 해당) 위원장도 지난 1월21일 “덩샤오핑 동지는 중국인민의 해방이라는 위대한 사업뿐 아니라 세계 평 화·안정에 역사적 공헌을 했다”면서 “중국은 앞으로도 세계 모든 국가 와의 우호협력을 더욱 강화할 것”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그동안 중국 내 개혁·개방 반대세력, 군부 등 불안요인을 무마하 는 데 덩의 카리스마가 크게 작용해왔었다는 점에서 세계의 ‘불안감’은 쉬 가시지 않고 있다. 더욱이 ‘후견인’ 없는 장쩌민 체제의 공고성이 아직은 가변적이고, 이후 권력향방을 좌우할 제15차 공산당 전당대회가 올 가을로 예정된 점도 이런 불안을 가중시키는 한 요인이다.

덩샤오핑 이후의 중국에 대한 시나리오는 이미 미국과 중국·대만 등 여 러 학자들에 의해 제시돼왔다. 이 시나리오들이 제시하는 전망은 중국이 체제안정을 이룬다는 견해에서 국토 분열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분석기 사 참고).

이들 시나리오 중 만일 중국 체제가 불안정한 상태로 나아간다면 동북아 에 커다란 불안요소가 될 것임은 물론 옛 소련 붕괴 이상의 커다란 파급 효과를 끼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중국은 지난해 2월에도 대만총통선 거와 관련해 대만 인근 해역에 미사일 공격을 감행하고, 일본과 센카쿠열 도를 둘러싼 영토분쟁을 일으키는 등 동북아 긴장관계의 한축을 형성해오 고 있다.

중국전문가들은 ‘덩 이후 중국’ 외교관계의 안정성 여부가 무엇보다 대 만과의 관계에서 표출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대만과의 통일은 덩샤오 핑이 경제건설, 사회안정과 함께 ‘3대 과제’로 삼은 사안이었다. 그러 나 앞의 두 목표와는 달리 덩샤오핑이 조금도 진전시키지 못한 내용이다. 이에 따라 중국전문가들은 이런 대만문제가 중국 내부불안정 해소방안으 로 이용될 가능성에 주목한다.


후계싸움이 대만과의 전쟁 부를 수도

(사진/화장터로 향하는 덩의 유해.)

미국 시카고대학의 중국전문가인 게일 존슨 교수는 이와 관련해 “덩 사 후 전개될 후계싸움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중 하나는 대만해협 미사일 공격 등 외부로 눈을 돌리게 될 가능성”이라고 강조한다. 즉 덩 을 이어 정국의 주도권을 쥐려는 정치세력들이 덩과 같은 민족주의자로서 의 신망을 얻기 위한 방편으로 대만 강경카드를 사용할지 모른다는 우려 이다.

이런 전망은 현재 중국을 지탱하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가 개혁·개방 과 정에서 통합력을 잃고 있다는 분석에 의해 뒷받침된다. 특히 선전·상하 이 등 개방지역 주민과 젊은층일수록 ‘평등’을 강조하는 사회주의 이념 에 대한 ‘충성도’가 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또 공산당 1당체 제에도 상당히 비판적이다. ‘사회주의’가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 는 개방시대의 중국을 통합하기에는 부적합할 수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중국전문가들은 중국 지도부가 ‘덩 이후 중국’을 묶을 새로운 이데올로 기로 ‘대중화주의’를 강조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이때 핵심이 되는 것이 대만이다.

이에 대한 대만의 반응은 매우 신중하다. 리덩후이 대만 총통의 비서관인 황쿤휘는 “우리는 앞으로도 양안이 평화·협력·번영이라는 새로운 환경 을 조성하기 위해 안정된 상황에서 교류와 협력을 계속 강화하기를 바란 다”고 협력 유지를 강조했다. 또 대만의 <중국시보>와 <연합보>가 지난 1월21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만 국민의 60.2%가 덩의 죽음이 양 안 관계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으로 답했다. 그러나 대만 국방부는 덩 사 후 본토에서의 군병력 이동을 면밀히 조사하는 등 경계태세를 늦추지 않 고 있다. 이는 덩 사후 중국군 내부에 권력투쟁이 벌어질 수도 있고, 이 들 중에서는 대만 침공을 강력히 선호하는 이도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덩샤오핑의 사망은 오는 7월1일 반환될 홍콩문제에도 파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홍콩 민주당 리주밍 당수는 지난 1월20일 “덩샤오핑의 사망은 홍콩의 민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중국의 기존 접근방식을 재고할 수 있는 ‘기회의 창’이 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리 당수는 이날 영국 국제전 략문제연구소(IISS)에서 행한 연설에서 “중국이 홍콩을 반환받은 뒤 의 회인 입법국을 해체하고 일방적으로 임명한 입법회의로 대체하려는 움직 임을 보이고 있다”면서 “이를 막기 위해 국제사회가 중국에 압력을 행 사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런 홍콩의 마지막 몸부림이 결실을 볼지는 불확실하다. 홍콩문제도 중 국의 ‘대중화주의’와 밀접히 연관돼 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중국 정 부는 지난 1월24일 화장된 덩의 유골 중 일부를 “오는 7월1일 이후 홍콩 주변 바다에 나눠 뿌리는 문제를 고려중”이라고 밝힐 정도로 홍콩문제에 집착하고 있다.


CIA , “장쩌민 권력 공고화는 실패”

일본과의 관계는 좀더 복잡한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하시모토 류타로 일본 총리는 지난 1월20일 덩샤오핑의 부음이 전해지자 즉각 담화를 내고 “우호적인 일-중관계는 아시아태평양지역 평화와 안정에 갈수록 더 중요 하다”면서 “일-중 우호관계를 장기적이고 안정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한층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시모토 총리는 또 이날 도쿄의 중국대 사관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아 덩샤오핑의 죽음에 대해 조문했다.

덩 이후 중-일관계가 이런 하시모토 총리의 바람과 같이 움직일지는 아직 미지수다. 일본과 중국은 지난 72년 국교를 수립했으나, 지난해 센카쿠열 도를 둘러싼 갈등 등 여전히 갈등 요소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또 과거 중국을 침략해 만주국을 세우는 등 중국을 반식민지화했던 장본인이 라는 점에서, 역시 사회주의 이데올로기가 약화되거나 내부 권력투쟁이 심화될 경우 ‘내부통합용’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이 밖에 일본이 ‘중국을 포위하는’ 미국 대중정책의 핵심이라는 점도 중-일관계를 ‘꼬 이게’ 만들 변수 중 하나다. 일본으로서는 이런 변수들을 경제개발에 박 차를 가하고 있는 중국에 필수적인 일본 자금을 활용해 풀어갈 것으로 보 인다.

덩샤오핑 사망은 멀리 바다 건너 미국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예 상된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의 주요 언론은 덩 사망 직후 “덩샤오핑의 사망으로 미국의 대중국 대처에 크고 작은 일련 의 불확실성이 대두됐다”고 보도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지난 1월 20일 보도에서 “덩이 마오쩌둥이 선택한 후계자로부터 권력을 빼앗는 데 성공한 것처럼 누군가가 덩의 후계자 장쩌민 주석에게 도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런 미국의 시각은 지난해 미 중앙정보국 (CIA)이 작성한 비밀보고서에서도 확인된다. 지난 1월21일 <워싱턴포스트 >는 CIA 극비보고서를 인용해 “장쩌민 중국 국가 주석이 권력기반을 공 고히 하는 데 실패했으며, 당내 좌우 양쪽 진영 모두로부터 협공을 당하 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덩 이후 중국 체제의 불안정요소의 하나로 지난 89년 천안문사태 의 재해석문제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당시 중국 정부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시민 시위대를 유혈진압해 수백명의 사상자를 냈었다. 미 국의 상당수 중국 전문가들은 덩이 ‘반혁명 시위’로 공식비난한 천안문 사태에 대한 재심요구로 내분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은 지난 76년 ‘민주의 벽’ 등 민주화운동에 대해서도 뒷날 공식적인 비판을 철회한 바 있다. 이때 지난 89년 발포책임자로 지목되고 있는 리펑 총리가 실각하거나, 역으로 리 총리가 주도권 장악을 위해 강 경책을 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의 대중정책은 오히려 당분간 조금더 관망세를 나타낼 수 도 있다. 물론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은 지난 1월20일 덩샤오핑의 사망과 관계없이 미-중관계의 근간이 계속될 것이며, 중국에 대한 미국의 ‘건설 적 개입’ 정책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윈스턴 로드 전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국무차관보는 “현 상황에서 중국인사 누군가에 친 미 딱지를 붙이면 오히려 역효과를 낼 것”이라고 발언해 돌발변수가 많 은 중국 장래에 조심성있게 접근할 것을 강조했다.

그러나 미국의 중국 정책은 장기적으로는 변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개혁·개방을 철회하지 않는 한 여전히 중국은 미국에 맞설 유일국가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미국의 대중정책은 바로 중국의 한 반도 정책에도 상당한 영향을 줄 것이다.


한반도 정책 실리중심으로 변한다

우선 덩샤오핑의 사망만을 놓고 본다면 북한과 중국 관계가 예전같지는 않을 것으로 진단할 수 있다. 지난 94년 김일성 주석 사망에 이어 이번에 덩이 사망함으로써 두 나라에 혁명1세대가 모두 퇴진했기 때문이다. 장쩌 민 체제와 김정일 체제로 대표되는 북한-중국의 ‘2세대 정권’은 혁명1 세대간의 혈맹적 관계가 많이 약화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따라서 덩 의 사망은 중국에 실리의 측면에서 한국에 대한 접근을 강화시킬 가능성 도 큰 셈이다.

그러나 미국의 중국 정책이라는 좀더 거대한 틀 속에서 이를 보면, 덩의 사망에도 중국이 북한에 대한 ‘집착’을 강화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북 한과의 관계를 소홀히 하면 “한국-미국-일본으로 중국을 포위하고, 북- 미수교로 북한에 대한 영향력도 일정 정도 확보하려는” 미국의 전략에 ‘말려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덩 사후 중국’이 국제사회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의 핵은 역 시 중국 내부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주변국과의 관계는 중국이 장쩌민 체제의 안정, 경제의 성공적 성장세 지속, 소수민족 문제 해결 등 내부문 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할 때 불거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런 점 에서 덩 사후 리펑 총리의 타도를 요구하는 포스터가 중국 남부 경제 중 심지 광저우 시내 중심가에서 발견됐다는 소식은 앞으로 중국의 내부 통 합과정과 국제관계가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지도 모른다.

김보근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3월06일


커버스토리 포커스 문화시대 특집 지난호 전체보기 처음